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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분분초초 다툰다” 성명 내고 평양선 ‘잔디 심기’ 전투

김정은의 좌충우돌 정신세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전쟁 분분초초 다툰다” 성명 내고 평양선 ‘잔디 심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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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곡물도 모자라는데 “생땅 안 보이게 잔디 심으라”
  • ● 고기 생산 늘려라, 스키장 지어라…비현실적 지시 남발
  • ● ‘사무원병’ 예방할 수 있다며 청소년, 근로자에게 승마 장려
  • ● 기관, 기업소 잔디 씨 구하느라 곡소리
“전쟁 분분초초 다툰다” 성명 내고 평양선 ‘잔디 심기’ 전투

2월 28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미국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농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2월 28일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왕년의 NBA 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함께 미국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와 조선체육대학 ‘횃불농구팀’의 경기를 관람했다. 로드먼 옆에는 자본주의의 상징 격인 코카콜라가 놓여 있었고, 김정은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탁자를 두드리기도 했다. 김정은이 농구 경기를 즐기는 사진은 ‘노동신문’ 1면에 실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3차 핵실험(2월 12일)에 대한 제재를 논의할 때의 일이다.

김정은은 일주일 후(3월 7일) 2010년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무도영웅방어대와 장재도방어대를 ‘현지지도’했다. 나흘 후엔 백령도 타격임무를 부여받은 월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고 지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원수님이 백령도에 주둔한 적군을 소멸하기 위한 타격 순서를 정해줬다”고 전했다.

도대체 이게 뭔가. 북한 주민들도 헛갈리지 않을까. 이 변화무쌍한 지도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싸늘하다. 좌충우돌하는 철부지 이미지도 갖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4월 11일로 1년을 맞았다. 김정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4개월 상(喪)을 치르고 지난해 4월 11일 노동당 제1비서에 추대됐다. 이틀 후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노동신문은 4월 11일 “김정은 동지께서만이 안아올 수 있는 통쾌한 승리요, 우리 민족을 핵보유국에 올린 대경사”라면서 지난해 1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올해 2월 핵실험을 김정은 체제 1년의 치적으로 꼽았다. 세계는 제동장치 없이 속도를 내는 ‘김정은호(號)’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봄맞이 준비”



“전쟁 분분초초 다툰다” 성명 내고 평양선 ‘잔디 심기’ 전투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은에게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실망감, 좌절감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는 소식은 평양 얘기일 뿐 지방의 사정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한 북한군 간부는 “경제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잔디 심기 사업에 재원을 낭비하는 등 비현실적 명령이 남발되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잔디 심기 사업과 관련해 간부들에게 지시한 내용을 이 소식통에게 제보했다.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잔디를 평지에도 심고, 산지에도 심어야 한다. 생땅이 드러난 부분이 없도록 끝장을 볼 때까지 힘 있게 진행해야 한다. 유럽 나라에서 심은 잔디를 보면 심술이 날 정도다. 노동당 제1비서로서 직접 잔디 연구 사업을 맡아 해보려고 한다. 나는 화분에 꽃을 심어 가꾸듯 집에 잔디밭을 만들어 잔디를 키우고 있다. 간부들도 재배해보면 좋을 것이다.”

북한이 대남 협박과 도발에 나선 후 외신들이 평양발 르포를 타전하고 있다. 외신이 전한 평양 분위기는 전쟁 위협과는 딴판이다. AP는 “전쟁 준비보다 도시 치장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평양에는 혼란의 기미가 전혀 없다. 총을 내려놓은 군인이 잔디를 심고, 삽을 든 학생은 나무를 심고 있다”고 4월 11일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파종을 위한 땅 고르기가 한창”이라면서 “전쟁이 아니라 봄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4월 6일 전했다.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남조선을 벌초해버리겠다”고 겁박하면서 평양에서는 잔디를 심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3차 핵실험 열흘 뒤인 2월 22일 평양에 건설 중인 전쟁승리기념관 건설장을 방문해 “무슨 종류의 잔디와 어떤 꽃을 심으려고 하는가?”라고 질문했다.(2월 22일자 노동신문) “적들을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고 지시한 3월 11일 월내도방어대 방문 때도 “나무들과 지피식물(잔디)을 더 많이 심어 섬을 푸른 숲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3월 12일자 노동신문)

소식통은 “잔디에 대한 김정은의 애정은 스위스 유학 경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은 지난해 과학원 산하에 잔디연구소를 설치했으며 현재 연구소 확장공사를 벌이고 있다. 사철 푸른 잔디 품종을 만들어내라는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외국에서 30여 종에 달하는 종자를 들여와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옥수수 심어도 모자랄 판에…”

노동당의 한 간부는 소식통에게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전국적으로 잔디와 꽃을 심으라고 닦달하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지시를 했다고 전했다.

“나라를 백화만발하는 지상낙원으로 만드는 것은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다. 우리는 이 유훈을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 우리가 녹화를 못하고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다양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꽃 종류가 다양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꽃을 심고 가꾸는 방법을 인민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화초연구소에서 우수한 품종의 꽃을 많이 키워내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평양뿐 아니라 전국에 화초공원을 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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