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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경북 의성군 양지리 일대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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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폐교가 된 의성중학교 사곡분교. 운동장에 마늘이 가득하다.

의성군의 대부분 동네가 그렇듯이 사곡면도 예부터 마늘로, 그것도 육쪽마늘로 유명했다. 그 틈새를 뚫고 지금은 작약 재배가 조금씩 늘고 있다. 마늘 농사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하다.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조그만 밭뙈기에도 마늘이 빼곡히 심겨져 있다. 마늘이 지천이다. 마늘은 폐분교의 운동장에도 둥지를 틀었다. 폐허가 된 의성중학교 사곡분교다.

집에서 만들어 온 손걸레로 초칠을 하며 윤을 내던 복도 마룻바닥은 윤기를 잃었다. 한겨울 조회시간, 끝없이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 발을 동동 구르던 운동장, 피구를 하다가 벗겨진 무릎에 ‘아까징기’라는 빨간 약을 바르고 놀던 운동장은 이제 마늘의 바다다.

그 초록의 마늘밭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보기에도 섬뜩한 날선 면도칼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 마늘종을 자르는 작업이다. 도회에서 찬거리로 유용한 마늘종이지만 정작 마늘밭에서는 잘라내야 할 군더더기다. 단단한 육쪽마늘에 필요한 가지치기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늘 재배를 위해 분교를 빌리는 데 드는 임차료는 연 170만 원, 군 교육청에 매년 이 돈을 내고 마늘을 키워온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다고 밭주인 오유희(58) 씨가 말한다. 연간 300접 정도를 한다니 꽤 목돈을 만지는 것 같지만 인건비에 농약에 거름값을 제하고 나면 큰돈은 못 건진다고 한다. 자식 둘을 서울 소재 대학까지 보냈다는 말에 묻혀 그리 믿기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마늘은 돈 힘이 센가보다.

마늘을 일컬어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한다.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마늘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웰빙 식품의 대명사쯤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인 마늘은 백합과 중 가장 매운 식물로, 2002년 ‘타임’은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최근 들어 서양에서도 단연 인기다. 마늘이 강장제라는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알려져 있다. 기원전 2500년 무렵 만들어진 이집트 쿠프 왕의 피라미드 벽면 상형문자에도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한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먹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왕의 무덤에 마늘을 넣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두고 맹세하는 것처럼 마늘에 대고 맹세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죽하면 마늘빵에다, 마늘치킨에다, ‘매드 포 갈릭 (mad for garlic)’이라는 황당한 이름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까지 나왔겠는가. 그래서 마늘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하고, 그 무시무시한 드라큘라도 마늘냄새에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지 않았던가.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아주머니가 새참을 준비하고 있다. 모내기하는 할아버지가 새참을 들면서 술을 권한다.

흥겨운 새참, 다시 적막강산

할머니들을 도와 마늘종을 잘라내느라 한나절을 보내니 점심때다. 마늘밭 주인 양반의 부인이 플라스틱 광주리에 점심을 챙겨 오셨다. 얼마 만에 보는 그리운 시절의 풍경이던가. 염치 불고하고 한자리 끼어들어 식은 밥을 한술 뜨니 완전히 유년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땐 그랬다. 대나무 광주리에 담겨 온 보리밥에 풋고추에, 생된장에, 모두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오뉴월 뙤약볕 아래 논밭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으로 서울로 떠나는 아들의 팬티에 달린 조그만 돈주머니에 용돈을 챙겨주던 이 땅의 어머니들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의 점심은 풍성하다. 풀밭 위에 놓인 아이스박스에는 우선 지난가을에 담근 김장 김치가 있었다. 단연 인기였다. 쇠고기를 적당히 다져 넣은 미역국에다 멸치조림에 고추장에 버무린 가죽나무 새순이 눈길을 끈다. 식사가 끝나니 곧바로 과일 후식에 커피까지. 그 옛날의 새참, 중참과는 아예 비교가 되질 않는다.

짧은 식사는 끝나고 사람들은 저마다 밭으로 돌아간다. 잠시의 부산함에 이어 마을은 다시 적막강산이다. 부지깽이도 움직인다는 농촌의 바쁜 오뉴월이지만 사곡마을 골짜기에는 젊은이는 물론이고 아이들 흔적조차 없다.

무심한 작약꽃은 지평선에 닿아 있고 시골 노인들의 한숨소리는 먼 산 뻐꾸기 울음소리에 묻혀 아득하다. ‘꽃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한순간’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많던 젊음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사곡 골짜기에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신동아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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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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