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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무함마드의 낙원’에서 ‘분칠한 창부(娼婦)’까지

  • 김윤경|대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ykyungkim@gmail.com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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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인(匠人) 댈럼은 선입관에 따라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고, 상류층 지식인 샌디스는 지식을 총동원해 터키의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보려 했다. 자의식이 강한 리스고는 기독교인의 자존심 때문에 터키를 경직된 태도로 대했다.
  • 몬태규 부인은 여성의 처지에서 터키를 바라보며 이국적 면모를 자신감 있게 ‘소비’했다.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샌디스의 여행기 속표지(왼쪽)와 여행기의 앞부분에 실린 지도.

과거에는 물론이고 현재도 터키는 동서양이 역동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과거의 흔적이 복합적으로 충적돼 있는 데다 풍광도 다채로워 관광객들은 경탄해 마지않는다. 지금도 매력적인 터키가 근대 유럽 여행객들에게는 어떤 곳으로 보였을까.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답을 말해보기로 하자.

그때의 유럽 여행객들은 십자군전쟁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문주의 전통이 강해 그리스 로마 고전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터키 지역을 익숙해하면서도 낯설어했다. 기이하게 보면서도 혐오했다. 17, 18세기 터키 지역을 여행한 영국인들의 기록을 통해 근대 유럽인의 눈에 비친 터키를 살펴보자.

근대에 열린 ‘적대지역’ 여행

사전 작업으로 근대의 여행과 여행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해 알아본다. 중세 사람들에게 가장 먼 여행은 성지 순례였다. 이 때문에 13세기의 마르코 폴로나 중세 최고의 여행기 작가인 존 맨드빌이 실제로 여행을 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항해기술이 급작스럽게 발전한 덕분에 근대 유럽인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세계 각지를 여행하게 됐다.

근대 초 적지 않은 유럽인이 미 대륙과 인도, 중국을 가볼 수 있었다. 상업적, 정치적, 외교적 목적의 여행도 있었지만 견문을 넓히고 즐기기 위한 여행도 있었다. 그들은 목격한 경치와 인종적, 문화적 차이에 대해 다양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에 따라 여행기를 출판하고 출판된 여행기를 번역하는 사업이 성황을 이뤘다. 이에 대해 어느 학자는 “근대 유럽의 여행기는 가장 인기 좋고 융통성 있는 장르였다. 다양한 형식으로 독자층을 교육시키고 즐겁게 해줬으며 국가적 자존심과 상업투자를 고취했다”고 평가했다.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슐레이만 1세 삽화(리처드 놀스의 ‘터키사 개론’ 중).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16세기 정점에 올랐던 오스만 제국은 근대 유럽인이 무시할 수 없었던 세계의 패자(覇者)였다. 유럽인은 이슬람에 대해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감을 지녔지만그들을 백안시하기 어려웠다. 16세기 전반 슐레이만 1세가 빈을 포위하고 베네치아와 전쟁을 치렀을 때, 유럽은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그 후 유럽의 여러 나라가 오스만 제국과 통상조약을 맺어 문물을 교류하며 내왕하게 됐다. 덕분에 터키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뤄졌다. 영국도 그러했다.

영국인들은 중세 이래 이슬람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했다. 동양 세계(이슬람권)에서는 폭정이 빚어지고 무절제한 욕망과 관능이 가득 차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유럽 국가보다 늦지 않은 시기에 오스만 투르크와 통상조약을 맺었다.

오스만 제국 처지에선 영국이 유럽의 서쪽 끝에 있고 유럽 대륙에 있는 나라들과는 경쟁관계에 있으니, 오스만 제국과 가까워 오스만을 위협할 수 있는 유럽 가톨릭 국가를 견제해줄 유익한 이웃이라고 봤을 수도 있다. 1592년 영국에서 레반트 상사가 수립된 후, 레반트(아나톨리아 지방을 가리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수가 대폭 늘어났다. 영국인들이 보는 연극에 터키의 술탄이 등장했다. 터키 역사를 소개한 책이나 쿠란의 번역본도 활발하게 출판됐다.

영국에서는 여러 편의 여행기가 출판됐는데, 터키 지역 여행기도 상당수 있었다. 토머스 댈럼(Thomas Dallam)과 조지 샌디스(George Sandys), 윌리엄 리스고(William Lithgow), 몬태규 부인(Lady Wortley Montague) 등 4명의 영국인이 쓴 터키 지역 여행기를 보자. 댈럼, 샌디스, 리스고는 사회적 신분과 관심사는 각기 달랐어도 1600년대 초 터키 지역을 여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몬태규 부인은 1700년대 터키를 방문했으므로 시기상 세 사람과의 차이점과 함께 여성 여행자의 시각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몰랐던 만큼 느낀 여행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방문지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 여행은 분명 달라진다. 보잘것없는 돌덩어리조차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발자취임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를 방문한 댈럼과 샌디스는 신분과 터키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극명하게 달랐다. 그런 만큼 그들이 기록한 터키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랭커셔 출신의 시계 오르간 제작공인 댈럼은 4명 가운데 신분이 가장 미천했다. 그는 일지(journal)의 형태로 자신의 여행을 기록했을 뿐 출판은 하지 않았다.

여행이 급격히 활발해진 시기라 해도 터키까지 가는 장거리 여행은 아무래도 상인이나 선원 혹은 상류층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댈럼은 그런 계층에 속한 이가 아니었다. 그는 영국의 군주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오스만의 메흐메트 3세 즉위 선물로 보내는 시계 오르간을 재조립하라는 명을 받아 1598년 터키를 여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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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대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y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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