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구상하는 대북정책을 총정리해 그 완결판을 처음 선보인 2011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의 도입부다. 박 대통령에게 북한은 어머니를 앗아가고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던 원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명인 ‘통일’의 대상이자 파트너이기도 하다. 김대중식 ‘햇볕정책’도, 이명박식 ‘상호주의’도 아닌 박근혜식 제3의 길 ‘균형정책’을 펼친 2013년 한 해,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통일과 관련된 얘기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으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그의 입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대통령 취임 이후다. 4대 국정기조에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담은 것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기조를 ‘한반도 평화통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어 통일 기반 구축으로 바꾼 것일 뿐 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단골 의제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찍은 기념사진.
박 대통령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밝혀왔다. 12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탈북자 지원 강화를 지시하면서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과 이웃에게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탈북자의 정착이 통일 이후 남북한 통합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통일 기반 구축의 핵심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감대 확산이다. 이는 정상들 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강하다.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작심하고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의제로 꺼냈다.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때도 통일 문제가 거론됐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길어진 것도 통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통일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요지로 설득했다.
시 주석에게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 접경지역인 동북 3성의 개발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낙후된 동북 3성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것. 푸틴 대통령에게도 ‘러시아의 숙원사업인 극동지역 개발에 한반도 통일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때 공약(空約)이 되어버린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 박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에서는 사실상 북한에 가스관을 매설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대신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이 러시아 지분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통일 이후 극동지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 정상과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는 급변사태까지 가정해 통일 논의를 깊이 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 중국이 북한을 동북 4성으로 편입할 것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상이 미국 중국 러시아 정상들과 한반도 통일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박 대통령은 전임 이명박 정부가 통일 비용을 비축하겠다며 추진하던 ‘통일항아리’ 식의 통일 준비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돈을 축적하면 불용 예산만 커진다고 보고, 통일 비용은 통일 이후 북한의 땅이나 자원을 개발하면서 국내외 기업과 국제기관 등의 투자와 지원을 받는 식으로 마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