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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노력의 사회에서 포기의 사회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노력의 사회에서 포기의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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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면 된다’와 ‘너는 노력해도 안 돼’ 중에 어느 말이 보통사람들에게 더 잔인하게 들릴까.
  • ‘하면 된다’처럼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과연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노력의 사회에서 포기의 사회로
나는 강의하면서 듣는 이들을 종종 불편하게 만든다. 내 강의는 평범하고 착한 보통사람들이 대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현실에 근거해 ‘불가능한 꿈은 버리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소박하게 살라’고 얘기한다. 이런 강의는 ‘하면 된다’라든지 심지어 ‘될 때까지 하라’ 같은 매우 이상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에겐 무척 불쾌한 궤변으로 들리고, 때로는 상처가 된다.

하지만 과연 ‘너는 노력해도 안 돼’와 ‘하면 된다’ 중에 어떤 것이 보통사람들에게 더 잔인한 말일까. ‘하면 된다’와 같이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성취의 歸因 원리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를 받아온 자녀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대부분의 부모는 이렇게 얘기한다. “너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많이 안 해. 하면 잘할 텐데 안 하는 이유가 뭐니?” 이 말은 대부분의 자녀에게 진실일까. 물론 어떤 분야에서든 노력하지 않는 경우보다 노력하는 경우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부모의 그런 말이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노력하는 학생 모두가 원하는 성적을 거두진 못한다. 대부분은 기대와 먼 성적을 받고 기대와 먼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왜 우리 부모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강조할까. 부모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성공과 실패를 한결같이 노력의 결과로 해석한다. 공부, 사업, 취업, 심지어 결혼에 이르기까지 인생사에서 거둔 성공은 힘든 역경을 부단한 노력으로 이겨낸 결과이고 실패는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원래 능력이 뛰어나서…나는 원래 타고나서…별로 노력하지도 않았는데…그냥 어찌하다보니 성공했어요’와 같은 말은 거의 들어볼 수 없다. ‘재수 없어’ 보이고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겸손한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겸손한 모습이 사회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평가되니까. 왜 애초에 우리 사회는 그런 겸손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됐을까.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사건의 인과관계나, 자신과 타인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는 심리적 기제를 귀인(歸因)과정이라고 일컫는다. 귀인과정은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호기심 자체도 어떤 사건, 성공 또는 실패의 원인을 파악해서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 원치 않는 결과를 막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인과관계를 밝히는 심리적 귀인과정은 인간의 환경에 대한 통제욕구(need for control)와 직결된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을 어디로 귀인하는지는 자녀의 미래 행동, 궁극적으로 자녀의 성적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같은 논리로 한국 사회가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노력하게끔 채찍질하는 거시적 사회 시스템의 본질로 이해하면 된다.

웨그너라는 심리학자는 성취에 관한 인간의 귀인원리, 즉 뭔가를 성취하고자 할 때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아가는 심리적 원리를 체계화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능력’ ‘노력’ ‘운’ ‘과제의 특성’ 등으로 결론짓는다. 이런 원인들은 내 탓이냐 아니냐, 변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 어찌해볼 수 있느냐 아니냐의 측면에서 미래의 행동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닥치고 노력해?

성공이나 실패를 노력에 귀인하는 것은 그게 내 탓인데, 쉽게 변할 수 있고(노력은 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나의 통제 아래 있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실패를 노력에 귀인한다면 결국 미래의 성공을 위한 결론은 하나다. 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 반대로 똑같은 결과를 능력에 귀인할 경우 내 탓이기는 한데, 지능이나 재능과 같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이고, 내가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이 실패의 원인을 능력에 귀인하면 별로 해볼 것이 없다고 느껴 미래에도 그냥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실패를 운에 귀인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패가 내 탓도 아니고, 내가 어찌해 볼 수도 없고, 운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미래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전혀 예상이 안 된다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가위바위보에서 졌을 때 보통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당장 “삼세판”을 외친다. 왜? 그냥 계속 해보는 거다. 새롭게 노력할 것도 없고 바꿀 것도 없다. 언제까지? 그냥 이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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