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취재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 졸기만 했어요”

탈북자 교육기관 하나원에선 무슨 일이?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지은 객원기자 | likepoolggot@empal.com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 졸기만 했어요”

2/5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례로 여겼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잘 적응해 살아가는 예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하게 내가 노력해서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각자가 각자를 책임지는 곳이죠. 그런데 탈북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격리해놓고 판에 박힌 교육을 하는 게 그들을 지켜주는 방편일까요?”

그가 생각하는 하나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격리 수용, 그리고 탈북자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 내용이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회와 분리해놓고 탈북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교육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강원 원주시에서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셋넷학교를 운영하는 박상영 교장은 하나원 교육은 탈북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참을 굶은 사람에게 산해진미가 펼쳐진 밥상을 들이미는 것은 그냥 먹고 죽으란 얘기와 비슷합니다. 북한 아이들은 남한 청소년처럼 십수 년 동안 피 터지게 공부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산에서 나무하고 토끼 잡으며 살던 아이들입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좋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해도 한국에서 사용하는 언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알아들을 리 만무해요.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미음’입니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 졸기만 했어요”

경기 안성시 하나원 재봉실습실(왼쪽). 하나원 유아방에서 탈북 어린이들이 장난감차를 타며 놀고 있다.

직업교육은 빛 좋은 개살구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서 보낸 최초의 3개월, 그것은 첫사랑과 같습니다. 강렬하고 애틋하죠. 그런데 하나원의 커리큘럼을 교육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정합니다. 외부 자문도 전무한 상태예요. 모든 것이 세분화, 전문화하는데 하나원 교육만 제자리걸음이어서야 되겠습니까. 평생을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이들을 교육하려면 공무원이 아니라 교육 전문가, 북한 전문가가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원은 전문가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면서 공무원이 전문가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해요.”

하나원 교육을 두고 탈북자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한 게 아니라 상부에 보여주려는 보고용 수준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된 탈북자뿐 아니라 박 교장이 만난 탈북 청소년 대부분이 하나원에서 가르친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실생활에 적용한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예요. 북한 주민과 우리가 거의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탈북민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외래어에 가깝습니다. 영어 등 외래어 사용이 많은 우리의 언어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같은 단어도 사용하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해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조차 서로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업기술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언어교육을 강화해야 해요.”

박 교장이 말한 언어교육은 영어와 같은 외국어가 아닌 한국인이 사용하는 말을 가리킨다. 남북 간 언어 간극이 상당하다는 게 탈북 청소년을 가르쳐온 그의 경험이다.

“하나원 처지에서 보면, 3개월 동안 기술교육을 제공해 사회에 내보냈는데 저 사람들은 왜 그런 걸 하나도 못 써먹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한자와 영어가 난무하는 전문용어에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까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으니 시간만 때우려고 꾸벅꾸벅 졸았다는 겁니다. 하나원이 초빙한 강사는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일지 모르겠으나 탈북자의 지식 수준이나 언어 표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그 대목에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겉보기엔 번듯하고 훌륭한 강사진이 이제 갓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에겐 그저 부담스럽고 소화하기 힘든 잘 차려진 밥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직업교육은 실습보다 ‘견학’에 가깝다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은다. 유명무실한 직업교육 180시간만으로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여성 탈북자는 “하나원을 수료해 사회에 나가면 특별한 재주가 없는 사람은 일할 곳이 식당밖에 없을 수도 있다고 가르쳐주는 게 오히려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5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 졸기만 했어요”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