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호

국정원 적폐청산 ‘내로남불’

“DJ정부 국정원 직원 대량 해직은 국가와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

〈단독 입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양심고백 진술서

  • 입력2017-11-1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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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전 원장, 7월 강제퇴직자 보상 2심 판결 앞서 진술서 제출

    • “김홍일 주도로 특정지역(호남) 출신 간부들과 대상자 선별 소문”

    • 소송자료 변조, 허위답변 고영구·김만복이 지시, 현 여당 의원 연루

    • 국정원 보고서, ‘영남 제거 목적의 인사질서 문란행위’로 규정

    • 1·2심, “자유의사 배제된 강제퇴직 아니었다” 판결…불복 상고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현행법에 한계가 있다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당연히 그 대상이 어느 특정 시기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20여 년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김대중 정부 초인 1998~1999년에 대량 해직당한 국정원(구 안전기획부) 직원들이다. 사실 이들은 2000년대 초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최근에도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올해 9월 15일 열린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이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승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동아’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2심 판결을 앞두고 법원에 접수된 한 통의 진술서 때문이다. 김만복(71) 전 국정원장이 직접 작성한 진술서다. 김 전 원장은 진술서에서 국정원 최고 책임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정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한 그동안 추측으로만 떠돌던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 강제퇴직 사건의 진실을 담았다. 보기에 따라 그동안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에 입사한 김만복 전 원장은 국정원 강제퇴직 사건이 있던 1998년부터 1999년 사이 해외차장실 산하 부서에 근무했다. 2004년 기획조정실장, 2006년 1차장을 역임했으며, 2006년 11월 국정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정원장에 올랐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지지모임인 ‘담쟁이포럼’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김 전 원장은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진술서는 자발적으로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다. 또한 “내용은 모두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의 진술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재판 기록, 국정원 문서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되짚어보았다.



    직위해임 대기발령

    1998년 5월 12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이종찬 안기부장과 함께 원훈석을 바꾸고 제막식을 하고 있다.[동아DB]

    1998년 5월 12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이종찬 안기부장과 함께 원훈석을 바꾸고 제막식을 하고 있다.[동아DB]


    1997년 겨울,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직전에 닥친 IMF 외환위기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국정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국정원은 대선 당시 북풍을 조작하고 오익제 편지 사건을 만들어내는 등 ‘김대중 죽이기’에 앞장섰기에 강력한 개혁을 요구받았다. 대대적인 조직개편 및 인사개편은 필수적이었다. 

    1998년 3월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향후 3년간 정원(TO) 786명을 감축하고, ‘정치관여 인사문란 직원들을 대기발령 후 전원 면직하겠다’는 취지의 ‘부 조직개편 방안 복명보고’를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당시 안기부의 TO는 420명의 여유가 있었고, 2년 이내 정년 도래자가 446명에 달해 자연 감소 요인이 866명에 달했다. 따라서 정원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은 따로 필요 없는 상태였다. 


    허위 인지 증거 없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게 ‘당시 고영구 국정원장과 김만복 기조실장이 2005년 국강투 소송에서 서류를 위조해 법원에 제출하고, 명예퇴직 강압사실을 부인하는 등 위증을 하게 했다’는 부분이다. 국정원도 2009년 이를 확인하고 관련자 2명을 형사고발한 바 있다. 국정원은 당시 국강투 회원들에게 “이들 직원에 대한 법원 판결에 따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퇴직 직원들의 권리구제나 명예회복 등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확인 결과 당시 국정원이 고발한 직원은 현 더불어민주당 A의원과 호남지역 B시장이었다. A의원은 당시 총무국장 명의의 ‘간부인사 추진계획’ 제하 문건에 대상자 분류기준이 기재된 바 없었는데,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총무관리국장 지시에 따라 국정원 간부인사의 분류기준을 새로이 추가하고, 작성 시점도 1998년 3월로 소급해 기재하는 등 새로운 ‘간부인사 추진계획’ 제하 문건을 재작성하는 데 관여하고, 이 위조된 문서를 재판에 제출해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혐의였다. 

    법원은 1심에서 두 사람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B시장은 “내가 한 증언이 허위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항변이 받아들여졌고, A의원은 “법원에 제출한 문서를 공문서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설령 공문서라 하더라도 위조에 관여한 증거가 없고, 위조 사실을 알고 법원에 제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시 말해 이들이 허위사실을 인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지 증언과 문서 내용 자체가 진실이라는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해 A의원실의 해명을 듣기위해 공식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무산된 국정원의 약속

    하지만 이들이 무죄 판결을 받자 국정원은 강제퇴직자 권리구제와 명예회복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에 강제퇴직자들은 2012년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부는 판결문에서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정식 결재를 받지 않고 이뤄진 면직처분은 위법하지만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과 “국정원 측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할 정도로 강박행위를 하였다거나 그로 인해 자유의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신청서 또는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것을 원고 패소 이유로 들었다. 

    또한 의원면직 처분에 관한 위법성에 대해서도 “1998년 3월경 작성된 ‘부 업무조기 정상화 추진계획(안)’ 등에 무보직자 선정 기준(2급 이하 직원들은 현 계급에서 승진이 불가능한 자, 안보전략연구소 2년 이상 경과자, 근무성적 극히 불량자 및 동료직원들의 지탄대상자, 재산과다보유 등 하자가 있는 자 등)이 제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정지역 출신은 기준으로 되어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춰보면 특정지역 출신을 배제하려는 의도로 원고들을 무보직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일부 문건을 위조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위증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설령 일부 위법행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것과 원고들에 대한 면직처분의 위법성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전 원장은 진술서에서 “본인이 국정원장 재직 당시인 2007년 10월 초 강제퇴직자들의 복직문제를 논의한 바 있으나 기간이 너무 경과했고 보직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없던 일로 처리한 바 있다”고 진술했다.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국정원에서 대량 강제퇴직 조치가 부당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증거다. 

    김 전 원장은 심지어 “국정원의 1998~1999년 강제퇴직 조치는 국가와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위법한 것이기에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직까지 국정원에서 약속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들의 한에 맺힌 억울함을 꼭 풀어줄 수 있도록 현명한 판결을 탄원한다”고까지 진술서에 기술했다.


    항거불능상태 

    법원이 ‘명예퇴직을 하는 과정이 항거불능상태까지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국강투 소송에 참가한 한 강제퇴직자는 “끝까지 거부해 면직처분당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라는 법원의 논리는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혀를 깨무는 등 끝까지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항변했다. 

    김 전 원장은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진술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국강투가 2심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당시 나도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분들은 내 동료이자 억울한 피해자다. 명예회복이라도 이뤄져 그 억울함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신동아’가 보낸 공식 질의에 대해 국정원 측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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