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호

영화로 읽는 세상

공상과학(SF)영화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메시아주의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

  • 노광우|영화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7-11-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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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레플리컨트 제조사인 타이렐의 거대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왼쪽).[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레플리컨트 제조사인 타이렐의 거대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왼쪽).[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아온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개봉됐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1982년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으로 제작됐다. 요즘 우리 극장가에서는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밀려 슈퍼 히어로물을 제외한 다른 미국 작품들은 성수기 상영이 줄어들고 있다. 전에 없던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작품마저 극장에 오래 걸려 있는 경우가 드물다. 세계적인 작품들을 동시대에 보고 향유하고 고민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블레이드 러너’ 원작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77년 ‘듀얼리스트’로 데뷔한 이래 매 작품에서 독특한 영상미를 선보여 비주얼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1979년 두 번째 작품 ‘에일리언’을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에일리언’은 이후 4편까지 속편이 제작됐고, ‘프로메테우스’(2012)와 올해 개봉한 ‘에일리언: 커버넌트’라는 프리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세 번째 작품 ‘블레이드 러너’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후의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줬음에도 같은 해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성공에 가려 흥행에 실패했고 속편도 제작되지 못했다. 1992년 리들리 스콧이 원래 자기 연출 의도에 맞게 재편집해서 ‘디렉터스 컷’으로 내놓아 영화광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은 게 전부다. 그러다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마침내 이번에 개봉한 것. 원작과 속편을 비교해보면 속편의 스토리 속에 기독교적 사고가 내재함을 알 수 있다. 

    원작의 혼종과 혼돈

    원작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이자 그 30년 뒤 이야기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데커드로 출연하는 해리슨 포드.[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원작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이자 그 30년 뒤 이야기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데커드로 출연하는 해리슨 포드.[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속편에 붙은 2049라는 숫자는 2049년을 의미한다. 전작의 시간적 배경인 2019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전작의 이야기는 타이렐이라는 발명가와 그의 회사가 우주 공간의 척박한 환경에서 일할 4년 수명의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한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들을 색출해서 은퇴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설 경찰이다. 

    어느 날 지구로 잠입한 6명의 레플리컨트는 타이렐을 만나 4년 수명을 더 연장하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LA)경찰국은 데커드(해리슨 포드)라는 블레이드 러너를 기용해 이들의 뒤를 쫓는다. 이 작품에서 이들 레플리컨트의 기본적 관심사는 수명 연장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별하기 위해 레플리컨트로 의심되는 인물에게 어린 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추궁한다. 레플리컨트는 어린 시절이 없이 처음부터 어른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착안한 것. 그런데 데커드는 타이렐 본사에서 신형 레플리컨트 레이첼(숀 영)을 조우한 후 어린 시절 기억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데커드가 레플리컨트 반란 세력의 리더인 로이(루트거 하우어)의 죽음을 목격한 뒤 레이첼을 데리고 몰래 LA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수명 연장이라는 인간들의 관심사와 어린 시절 기억이 있는 레플리컨트, 그리고 동료가 하나씩 은퇴당할 때마다 남은 레플리컨트가 느끼는 슬픔과 분노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논점을 제기한다. 원본(인간)과 복제품(레플리컨트)의 구별 불가능성은 장 보드리야르가 설파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인 시뮬라시옹의 특징을 담아낸다. 또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뒤섞여서 드러나는 LA 밤거리, 최신식 기술, 고대의 피라미드나 신전을 닮은 타이렐 본사 건물을 보여줌으로써 시공간의 응축을 설파한 인문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 이론의 본보기로 언급된다. 

    속편의 메시아주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가 유일하게 교감을 나누는 홀로그램 캐릭터 
조이(아나 드 아마스).[사진제공·소니 픽처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가 유일하게 교감을 나누는 홀로그램 캐릭터 조이(아나 드 아마스).[사진제공·소니 픽처스]

    그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시청각적으로 전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타이렐은 이미 파산해 업계에서 사라졌고 대신 IT 거물인 월레스(자레드 레토)가 등장한다. 타이렐을 인수한 월레스는 타이렐의 레플리컨트 복제 기술을 하나하나 복원, 발전시키려 한다. 전작과 달리, 2049년에는 레플리컨트가 지구에서 살 수 있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는데 이는 월레스가 개량한 레플리컨트를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탈주한 레플리컨트가 존재한다.(이후 스포일러 포함) 

    K(라이언 고슬링 분)는 LA경찰국에서 근무하는 블레이드 러너다. K는 시골의 한 농장에서 도망간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땅에 묻힌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유골을 수습한다. 이 유골의 주인은 전작에 나온 레이첼로 판명되고, 유골에서 제왕절개수술을 한 흔적이 발견된다. 경찰 당국은 레플리컨트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비밀을 은폐하려 한다. 하지만 월레스는 레플리컨트의 임신과 출산이 타이렐이 만든 레플리컨트 제작 기술의 마지막 퍼즐임을 알고 K를 이용해 그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 

    영화는 K가 죽은 레이첼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추리소설 구조로 돼있다. 여기서 K는 인간과 레플리컨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인간은 그가 레플리컨트라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멸시하고 차별하며 레플리컨트는 그를 배신자 취급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일과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고독한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K를 반겨주는 이는 숙소를 지키는 홀로그램 캐릭터인 조이(아나 드 아마스)뿐이다.
     
    K는 폐허가 된 라스베이거스에서 오랫동안 숨어 지내던 데커드를 찾아내지만 그 뒤를 따라온 월레스의 부하들은 데커드를 납치한다. 남겨진 K를 찾아낸 것은 레플리컨트 반군 세력이다. 이들은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그들의 지도자로 옹립하려 한다.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재생산 능력이 없는 레플리컨트에겐 기적이며 메시아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K는 데커드와 데커드의 아이를 보호하느라 분투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K의 희생은 구약성경의 모세나 신약성경의 바울을 떠오르게 한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왔지만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바울은 한때 로마의 편에서 예수 추종자를 색출하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기독교 신자로 죽음을 맞는다. 

    레플리컨트를 억압하고 그들의 창조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타이렐이나 월레스는 신 또는 신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이 파라오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거주지이자 근무처인 타이렐과 월레스 본사 건물이 이집트의 신전이나 피라미드를 닮았다는 점에서 암시된다. 원작처럼 일본을 필두로 한 아시아계열 다국적기업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속편은 원작의 포스트모던한 분위기를 담뿍 담아낸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와 캐릭터는 서양의 기독교적 메시아론으로 귀결된다.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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