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하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도 암묵적 차별이 존재하는 것일까? 서울 시내 일부 명문대 일반대학원의 경우, 같은 대학원생이라도 해당 학과의 본교 학부 출신은 성골로, 타 대학 학부 출신은 6두품으로 알게 모르게 차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 시내 S대학 일반대학원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대학원생인 김모(여·25) 씨는 3개월 전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원에 입학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로 많이 지쳤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자대생’ ‘타대생’ 레테르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13화.
타대생 배척 현상은 두어 차례 논란이 됐다. 2013년 이화여대 커뮤니티(‘이화이언’)는 타대생도 이용할 수 있었으나 구성원들의 반발로 이화여대 학부 재학생과 졸업생만 이용할 수 있게끔 제한했다. 2014년 서울대학교 커뮤니티(스누라이프)에서는 ‘순수 서울대 출신’들이 타대생을 서울대 구성원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순혈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현재 서울대 커뮤니티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구분돼 이용하는 전용 게시판 이외에 서울대 학부 졸업생만 이용할 수 있는 ‘졸업생라운지’가 운영되고 있다.
취재 결과, 지금도 타교 출신 대학원생 중 적지 않은 사람은 대학원 진입과 동시에 크고 작은 형태로 배제되고 차별받는 것처럼 보였다. 취재는 일부 대학원총학생회가 발표한 대학원생 실태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온라인 자료도 별도로 취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학원의 폐쇄적 특성상 대학원생들은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온라인 자료 취재는 필수였다. ‘우골탑 옆 대나무숲’ 트위터 계정과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커뮤니티’도 취재 대상이었다. 우골탑 옆 대나무숲 계정은 7만 개 이상의 트윗과 15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면서 주로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의 소통창구로 활용된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커뮤니티에서 내부 정보를 공유한다. 또한 우리는 대학원생들을 직접 접촉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부 대학원생들에 따르면, 서울시내 선호 대학의 경우 대학원 입학 과정에서부터 타대생과 자대생 간 차이가 있다. A대학 인문사회계열의 타교 출신 대학원생 최모(28) 씨는 “지명도가 낮은 대학 학부 출신은 실적이 있어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탈락한다. 그보다 매력이 덜한 본교 학부 출신이 합격한다”고 말했다. 몇몇 대학원생에 따르면 지도교수가 자신의 연구실로 데려올 본교 학부생을 내정하고 입시에 임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학교는 좋은 데야?”
조교로 대학원생 입시 과정을 보조한 최씨는 “교수들이 자대생을 맨 앞으로 따로 뽑아놓은 다음 다른 지원서는 학교 서열대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당시 교수들은 최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학교는 좋은 데야?”라고 말하면서 서류를 훑었다고 한다. ‘좋은 학교’ 출신이 아닌 최씨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일단 들어와선 실적 위주일 수 있지만 시작부터 차별이 있는 것이다. 등록금 장사를 위해 타대생을 뽑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본교 출신 대학원생들도 이런 차별이 존재함을 일부 인정한다. B대학 인문사회계열 이모(28) 씨는 두 번의 대학원 입시 실패 후 어렵게 학부 연구생 자리를 얻었다. 이씨는 그제야 그동안의 입시 과정에서 합격생이 미리 정해져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하다. 이후 이씨는 담당교수의 학부 수업을 청강하며 눈도장을 찍었고 그해 ‘프리패스’를 받았다.
이씨는 “대학원 입시 면접장엔 사전 접촉한 교수님이 앉아 있었다. 공정성을 위해 똑같은 질문을 하긴 했지만 내겐 합격을 전제한 뉘앙스의 구체적인 연구계획 질문이 주가 됐다”고 말했다.
타대생은 대학원에 발을 들인 뒤 인간관계에서 쉽게 배제된다고 호소한다. C대학 이공계열의 타교 출신 대학원생 이모(29) 씨는 “학과 행사에 타대생은 끼기 어렵다. 대학원 생활의 첫 단추 격인 신입생 환영회에서부터 자대생이 부각된다. 차후 연구실 모임에 참여하기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공부하는 회사’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13화.
인간관계를 형성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한 대학원생은 “자대생들끼리 스터디를 하면서 타대생과는 기출문제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타대생들은 좁은 사회에서 갑갑하게 경쟁하는 것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타교 출신 대학원생이던 신모(27) 씨는 “버티지 못하면 낙오자로 낙인찍힌다. 좁은 학계에서 타교 출신 대학원생은 고립되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타대생을 배척하는 연구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타대생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자대생은 “특별한 차별의식 없이 학부 때부터 아낀 후배를 챙겨줄 뿐이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김상봉 전 학벌없는사회 이사장은 “학연과 학벌은 구분해야 한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학벌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대생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관계로서의 학연은 대학원 공간에서 학벌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대생의 목소리는 삭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몇몇 자대생은 “타대 타과생에 비해 아무래도 자대 자과생이 기본이 조금 더 탄탄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넌 한계가 있다”
한 대학원생의 트위터 개인계정
일부 교수는 타대생에게 가해지는 배제나 차별을 방관한다. 때로는 교수가 노골적으로 그 배제와 차별에 앞장서기도 한다. 타교 출신 이공계열 석사라고 밝힌 익명의 네티즌은 “타대생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취급을 받는다.
자대생은 자대생이란 이유만으로 교수가 사소한 일까지 챙겨준다”고 주장했다. D대학 이공계열의 타대 출신 대학원생 오모(여·28) 씨는 “직·간접적으로 (타대생을) 무시하거나 아예 기대조차 갖지 않는 교수들도 있다. 일부 교수는 아끼는 자대생에게 연구를 몰아준다. 이런 교수가 생각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다수의 타대생은 “연구실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의욕이 꺾인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적지 않은 대학원생이 조교로 일하며 등록금의 일부를 충당하는데 타대생은 여기서도 배제되기 일쑤라고 한다. 자대생으로 추정되는 한 대학원생은 ‘우골탑 옆 대나무숲’에서 예비 대학원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자대 출신 장학금 제도가 있어서 학비 걱정은 덜었지만 조교 장학금 쟁탈전과 과외 알바, 주말 알바는 기본으로 뛴다”고 말했다. D대학 인문사회계열 타교 출신 대학원생 윤모(여·26) 씨는 “자대생이어야 학과 일을 더 잘 안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막 대학원에 들어와 한 학기 동안 열 차례 이상 원서를 써 지원했지만 한 군데도 뽑히지 못했다. 자대생이 이미 내정돼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연구실에선 선배가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타대생은 상대적으로 배제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공계열의 경우 실험비가 추가되어 등록금 부담이 더 크다. 한 이공계열 네티즌은 “당장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지도교수는) 내가 타대생이기 때문에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한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다른 대학원생들은 “그런 교수들 자주 봤다”라며 공감을 표했다.
‘왜 쟤는 잡무는 안 하지?’
A대학 대학원총학생회 관계자는 조교 선발과 관련해 학과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를 올리면 학생들이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수가 면접을 진행해 뽑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행정조교에게 특수한 능력이 필요하겠는가”라며 “결국 교수의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라고 말했다.일부 타교 출신 대학원생들은 학자로서의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D대학 인문사회계열 김모(여·25) 씨는 “나중에 일이 커지기 전에 빨리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모 씨는 “내가 자대생이라면 교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때가 많다. 명시된 건 아니지만 타대생이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교수’ 꿈은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A대학 이공계열의 타교 출신 대학원생 조모(30) 씨는 “자대생은 외부에 연수를 보내 고급 기술을 배우게 하는데 타대생은 기초 수준 실험만 시키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실험실 잡무를 도맡아 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심각하게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 자대 출신이 들어와도 ‘왜 쟤는 잡무는 안 하고 실험만 하지?’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 날 지도교수가 조씨에게 대놓고 “넌 타대생이라 한계가 있다. 실험도 시키는 것만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매해 석사과정으로 자대생과 타대생이 한 명씩 들어왔던 조씨의 실험실에 지금 자대생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타대 출신 이공계열 박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도 “석사 2년 박사 1년 동안 선배들 실험을 돕거나 실험실 잡무를 하며 보냈는데 특히 박사 1년 동안은 연구 계획서만 썼다”라고 말했다.
“학벌주의와 순혈주의”
타대생은 자대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연구실에서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말에 의해 더 위축된다고 한다. “타대생은 당연히 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오모 씨는 “한편으론 타대생이 차별당했다고 느껴도 자대생이 노골적이지 않게 했다면 말을 꺼내기가 애매해진다”고 설명했다.
사소하면서 일상적인 타대생 차별은 국내 대학 지형상 대체로 ‘지방 대학’ 학부 출신 학생이 서울 소재 명문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에 가장 뚜렷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도권 대학들 사이에서도 입학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 학과 대학원이 낮은 대학 학과 출신을 차별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는 대학 입시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학벌 문화와 대학원 내 순혈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내 동종교배(자대 출신 교수임용) 비율은 서울대가 88%, 연세대가 76%, 고려대가 60%로 나타났다. 미국·유럽 대학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대학 내 순혈주의는 타인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집단화다. ‘타대생을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내 후배가 먼저’와 같은 사고방식이 곧 순혈주의 정서다. 집단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몇몇 타대 출신 대학원생들은 대인기피와 우울증을 호소한다. A대학 이공계열의 타대 출신 대학원생 김모(29) 씨는 “출신이 미천한가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박해지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결국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타대 출신 대학원생 정모 씨도 “주변에서 학벌세탁했냐는 말을 듣고 자격지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몇몇 타대생은 “우리가 차별을 받는다고 알린들 소용 있을까.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속상해한다”고 말한다.
“텃세라 여기면 발전 못 해”
타교 출신 대학원생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김선우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인권센터 등 학교 차원에서 제도는 만들고 있지만 지금까지 센터를 이용한 원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타대생이) 말을 꺼내기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타대생 차별은 현저하게 목격되진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 타교 출신 대학원생들도 “연구실과 교수마다 다르다”라며 일반화를 경계했다. 취재 과정에서 자대생들로부터 “우리 연구실 사람들은 착해서 타대생을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접했다. 한 이공계열 자대생(29)은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걸 탓해야지 텃세라고 생각하면 절대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타교 출신 대학원생 이모 씨는 “일개 대학원생이 관행과 시스템을 바꾸긴 어렵다. 타교 출신 대학원생 차별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글쓰기’ 과목 수강생들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