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스트레스, 가짜뉴스
우리는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서 학생들에게 SNS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주르르 달렸는데, 부정적 내용이 훨씬 많았다. 20대 학생들은 대체로 SNS를 가까이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이것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표현했다.“SNS요? 그거 S(시간) N(낭비) S(서비스) 아닌가요?”
“‘입은 무거울수록 좋다’의 현대판 버전이죠. SNS에 입 잘못 털었다가 한 방에 훅 가는 게 비일비재하니까.”
“남 시선에 목숨을 거는 느낌이에요.”
“제가 마음에 품고 사는 말 두 개가 있는데 하난 역지사지고. 다른 하난 스인낭(SNS는 인생의 낭비다)입니다.”
우리 언론도 ‘중독’ ‘남용’ ‘스트레스’ ‘모욕’ ‘가짜뉴스’ ‘피로감’ ‘주객전도’ ‘사생활 침해’ 같은 용어로 SNS를 비판한다. 그러나 대학생들과 언론의 이러한 표면적 평가대로라면 SNS는 한국 젊은이들의 일상을 사로잡으면서 맹위를 떨칠 리 없다. 우리가 SNS를 자주 이용하는 20대 5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대체로 이들은 SNS를 ‘나를 위로하는 말벗’으로, ‘내게 고급 정보를 주는 스승’으로, 혹은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경찰’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를 두고 ‘N포 세대’를 넘어 ‘픽미(pick me·나를 뽑아줘)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이들은 선택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또한 연애나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자연히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을 위로하는 말벗으로 SNS를 택한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생 A씨(여·23)는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자친구 이름만 들어도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수업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늘도 A씨는 수업 내내 멍하니 있다 귀가했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준 존재는 스마트폰 기반의 SNS 애플리케이션인 ‘어라운드’다. 이곳에서 ‘익명’을 보장받는 개인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최고의 소주 한 잔”
“괜찮아요. 저도 1학년 때 같은 과 남자친구랑 헤어졌었어요. 그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시간이 해결해줘요. 파이팅 *^^*”,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산책도 해요! 힘들다고 혼자 있지 말구요 ㅠㅠ 잘 될 거예요.”
A씨는 이런 응원 글 덕분에 세상 혼자인 줄 알았는데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A씨는 “SNS는 이 땅의 누군가와 나누는 최고의 소주 한 잔”이라고 말한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인 B(여·22) 씨도 SNS를 자신의 따뜻한 말벗으로 여긴다. B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이나 감정을 이곳에서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 악플이 적은 SNS 커뮤니티에선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많은 20대 대학생과 직장인은 ‘단톡방(단체카카오톡방)’을 최고의 말벗으로 여긴다. 이들은 마음이 통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이런 단톡방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서울 상암동의 한 미디어 분야 회사에 근무하는 C(29) 씨는 “직장 상사가 업무지시 용도로 개설한 단톡방은 ‘가급적 보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개설한 단톡방은 ‘늘 보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의 금융기관에 다니는 D(28) 씨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여러 소셜미디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서적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을 두고 있다. 악플이 SNS의 대표 속성인 것 같지만, 언론에 잘 부각이 안 되어서 그렇지, SNS의 선플(선한 내용의 댓글) 효과는 매우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SNS는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적지 않은 대학생은 ‘나 자신과 소통하는 곳’으로 SNS를 활용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같은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나만 보기’ ‘나에게 쓰기’와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덕택이다.
“일기장이자 사진첩이자 서재”
중앙대 통계학과 재학생 E(28) 씨는 페이스북의 ‘나만 보기’ 기능을 개인적 추억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또한 여기에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유용한 정보를 콕 집어 저장해두기도 한다. E씨는 “여긴 나의 일기장이자 사진첩이자 서재”라고 말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 F(여·24) 씨는 “지금 보면 좀 창피하지만 지우고 싶지 않은 게시물들을 나만 보기 기능이나 내게 쓰기 기능에 주로 보관해둔다”고 했다. G(여·22·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씨도 ‘나와의 소통’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는 “항상 쓰는 카톡에 할 일, 발표 자료, 링크 같은 것들을 저장해놓고 지하철을 오가며 자주 꺼내본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여행 때 가야 할 곳들을 페이스북 나만 보기에 저장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윤근 카카오 커뮤니케이션팀 파트장은 “나와의 채팅은 이용자들이 먼저 제안한 기능이다. 자신의 기록을 저장하거나 메모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그것을 적극 반영해 만들었다. 특히 대학생들이 자신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글꼴이 뭐죠?” “산돌 에피소드”
SNS는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는 공자의 말을 그대로 증명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그룹’에 ‘좋아요’를 눌러두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스승’과 상호 소통할 수 있다.디자인 회사에 재직 중인 H(여·29) 씨는 “작업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찾기보다 페이스북 그룹에 바로 물어본다. 마치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고 정확한 답을 해준다. 전문성 측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H씨는 한 가지 실험을 해 보였다. 옆에 있던 어떤 포스터를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뒤 “이 포스터에 쓰인 글꼴이 뭐죠?”라고 물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아 그거요~”로 운을 떼는 ‘친절한 과외’가 올라왔다. 이어 해당 글씨체에 대해 “산돌 에피소드”라고 정확히 알려줬다. 나아가 이보다 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을 때는 ‘산돌 시네마극장’ 폰트가 좋다는 보충과외까지 올라왔다.
이런 맞춤형 정보는 생판 남에 의해 제공된다. 단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족집게 과외가 이뤄지는 것이다. 여행에서도 SNS는 ‘폭풍활약’을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학연수다 교환학생이다 해서 해외여행을 자주 한다. 이런 낯선 여행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SNS 덕분에 점차 옛말이 되고 있다. 혼자 세계 어디를 가건 옆에는 SNS라는 친절한 ‘자비스(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조수)’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I(24)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책을 통해서도 여행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는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다. 만약 내가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고 있다면 해시태그는 ‘지금, 거기’를 바로 보여준다. 해시태그에서 ‘OSAKA’를 검색하면 지금 그곳의 날씨가 어떤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실시간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불가리아 기차 안에서 겪은 일
J(21·고려대 사회학과)씨는 2016년 여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의 불가리아어 방송을 들었다. J씨는 방송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고 한다.“내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거기는 목적지인 소피아에서 수백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결국 기차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다 내렸어요. 승무원이 내게도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이 해프닝은 페이스북 덕분에 말끔히 해결됐다. J씨는 기차 안에서 만났다 헤어진 불가리아인과 페이스북 친구가 됐는데, 이 불가리아인에게 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연락을 받은 이 불가리아인은 J씨에게 페이스 톡을 걸더니 “다음 기차역이 공사 중이어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다른 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방송”이라고 알려줬다. SNS가 J씨의 당면 현안을 말끔히 해결해준 것이다.
20대 중 상당수는 SNS를 통해 언제나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배움의 장이 열린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한다. 중앙대 식물시스템과학과 재학생 K(여·23) 씨는 어떤 분야에서도 SNS로부터 맞춤형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K씨의 설명이다.
“새롭게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면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부터 눌러라.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대답을 듣다가 인근 분야로 가지치기를 하기도 한다. SNS가 없던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훨씬 신속하고 정확하게 얻는다.”
사람들은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기 마련인데, 이와 관련해 20대 중 상당수는 SNS를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해결사로 여긴다. 서강대 경영학부 재학생인 L(23) 씨는 최근 도서관 열람실에서 중간고사 준비에 열중했다. 이런 그에게 열람실 노트북 소음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마우스의 딸각대는 소리나 키보드의 타이핑 소리는 L씨의 신경을 더 곤두서게 했다.
‘노트북 소음’ 공론화
L씨는 “SNS가 내 피해를 공론화했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대안을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극소수는 일반 좌석에서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그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SNS는 공론을 형성함으로써 법과 행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개인적 사연이나 아픔을 치유한다. 대학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페이스북 ‘대나무숲’은 이런 효과를 톡톡히 보여준다. 해당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러놓으면 이후 굳이 그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페이지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물이 타임라인에 뜬다. 각 대학에 대나무숲이 있는 가운데 서울대 대나무숲, 고려대 대나무숲, 연세대 대나무숲은 각각 28만2415개, 17만591개, 10만8075개의 ‘좋아요’를 갖고 있다. 한번 대나무숲에 오르면 이렇게 많은 사람 사이에서 공론화되니 파급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SNS 잘 알면 삶 바뀌어
5월 24일부터 6월 7일까지 고려대 대나무숲엔 총 356건의 사연이 게재됐는데 이 중 신문고 성격의 사연으로는 성희롱 관련 사연이 10건, 가정폭력 관련 사연이 4건, 학교·학과·수업 관련 사연이 22건 등이었다. 익명성으로 인해 대나무숲엔 제보가 활발한 편이다.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재학생인 M(여·21) 씨는 “대나무숲에 오른 제보를 보면서 대학 내에서 부당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논의들은 고려대 안암역 몰카 사건, 동국대 단톡방 성추문 사건에서 보듯 당사자들의 사과와 후속 조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SNS에 대해 잘 알면 그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글쓰기’ 과목 수강생들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