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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신화를 만화로 옮길 때 유쾌한 트릭 즐기는 법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와 닐 게이먼의 ‘북유럽신화’

  •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신화를 만화로 옮길 때 유쾌한 트릭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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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월드 속 슈퍼히어로 세계

마블은 이런 신화를 어떻게 대중적 슈퍼히어로 이야기로 변용했을까. 우선 등장인물을 단순화했다. 바니르 계열 신들은 다 제거하고 에시르 계열 신만 남겨뒀다. 그중에서도 오딘(영화 속 앤서니 홉킨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로키(톰 히들스턴) 셋을 중심인물로 설정했다. 원래 북유럽신화의 3대 신은 오딘 토르 프레이르였는데 말썽쟁이 로키가 프레이르 자리를 치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본디 오딘과 의형제인 로키를 토르의 의형제로 바꿔친다. 토르와 로키의 라이벌 구도를 공고히 하면서 오딘에겐 심판 내지 중재자의 역할만 부여한 것이다. 이와 함께 다른 신들은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빌런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두 번째로는 주무대를 우주 공간으로 옮겼다. 북유럽신화 속 세계는 앞에서 소개한 이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세계수를 중심으로 9개로 나뉜다. 핵심만 소개하자면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 인간 세계인 미드가르드, 서리거인이 사는 요툰헤임 등이다. 마블은 미드가르드를 지구로 설정하고 아스가르드와 요툰헤임을 별개의 행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난관을 돌파한다. 대신 이들 세계를 넘나들 때 오직 신들에게만 허용되는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일종의 차원이동기로 변형시킨다. 그래서 신화 속에선 신들만 가능했던 차원 이동이 인간과 빌런에게도 가능해진다. 또 신화에서 아스가르드의 파수꾼으로 세계의 종말(라그나로크)이 올 때 나팔을 불어 이를 알리는 임무가 부여된 헤임달(이드리스 엘바)을 비프로스트의 관리자로 변형한다. 

세 번째는 신화 속에선 유부남인 토르와 로키를 모두 총각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야 인간 여성과 ‘썸’ 타는 관계 설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토르 시리즈 1, 2편에 등장하는 지구 여성 제인 포스터(내털리 포트먼)와 토르의 러브스토리가 가능해지는 것도 이런 설정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 속 토르에게는 시프라는 아내가 있다. 토르의 무기인 ‘묠니르’라는 망치와 오딘의 무기인 ‘궁니르’라는 창이 생기게 된 것은 로키가 시프의 풍성한 금발을 다 밀어버린 사건에서 비롯했다. 신화 속에선 양성애 성향의 로키 역시 아내가 있다. 그것도 둘이다. 아스가르드에 사는 조강지처 시긴과 요툰헤임에 사는 여자 거인 앙그르보다다. 둘은 각각 3명의 자식을 낳는데 앙그르보다가 낳은 3명의 자식이 바로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라그나로크를 몰고 오게 된다. 


잿빛 묵시록 vs 장밋빛 영웅담

영화 속 최강의 빌런 헬라(케이트 블란쳇)는 북유럽신화 속에서 로키의 사생아 3남매 중 막내딸 헬을 변형시킨 캐터릭다.[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속 최강의 빌런 헬라(케이트 블란쳇)는 북유럽신화 속에서 로키의 사생아 3남매 중 막내딸 헬을 변형시킨 캐터릭다.[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10월 25일 국내 개봉해 400만 넘는 관객몰이에 성공한 ‘토르 라그나로크’는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라그나로크를 주제로 내걸었다. 라그나로크는 한편이 된 오딘과 토르, 프레이르 같은 신들과 주화입마(走火入魔)한 로키와 세 자식, 그들이 이끄는 서리거인들이 전쟁을 벌여 모두 죽음을 맞고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가 모두 파멸하는 끔직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독일 가극의 아버지 바그너가 ‘신들의 황혼’이라고 명명한 종말론적 사건도 이 라그나로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라그나로크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세 괴물이 있다. 로키와 앙그르보다 사이에서 태어난 3남매다. 첫째는 세계를 물어뜯는 거대한 늑대 펜리르, 둘째는 바닷속 모든 생물을 독살하고 육지까지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바다뱀 요르문간드, 막내인 셋째는 불명예스럽게 죽은 망자의 왕국을 다스리는 여왕 헬이다. 여기에 천지창조 이전부터 불타는 칼을 휘두르며 화염의 세계 무스펠(9개 세계 중 하나)을 지켜온 불의 거인 수르트가 가미한다. 오딘은 펜리르, 토르는 요르문간드, 프레이르는 수르트에게 각각 목숨을 잃는다. 발할라 궁전에 머물던 고귀한 영혼의 부대 에인헤랴르는 헬이 이끄는 망자의 부대와 더불어 궤멸한다. 로키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헤임달을 죽이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고 죽는다. 



마블 히어로 영화가 과연 이런 대재앙을 비극적으로 그려낼까. 당연히 아니다. 결과적으로 ‘마블판 토르’의 주요 3신(神) 중에서 최후를 맞는 이는 가장 나이 많은 오딘뿐이다. 그것도 자연사에 가깝다. 신화상의 라그나로크에서 맞수로 싸우게 되는 토르와 로키는 오히려 한편이 되어 아스가르드에 파멸을 가져올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운다. 

그렇다면 그 악의 무리를 이끌게 될 최강의 빌런은 어떤 캐릭터가 맞을까. 늑대 펜리르? 뱀 요르문가드? 불의 거인 수르트? 마블 제작진의 선택은 팜 파탈이다. 신화 속 헬을 변형시킨 헬라(케이트 블란쳇)다. 헬은 신화상으론 로키의 세 사생아 중 막내딸이다. 마블 제작진은 이를 토르와 로키의 배다른 누나로 변형한 뒤 토르의 절대망치 묠니르까지 파괴하는 초절정의 파워를 부여한다. 심지어 헬라가 이끄는 군대는 지옥에서 살아나는 망자들이 아니라 발할라 궁에 잠든 명예로운 전쟁영웅 에인헤랴르로 바꿔놓았으니 ‘마블판 동방불패’라 할만하다. 

그럼 과연 토르와 로키는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할까. 오딘의 여전사 중 ‘타락천사’라 할 발키리(테사 톰슨)를 토르의 파트너로 삼아 투입한다. 하지만 여전히 난공불락. 그래서 마블 히어로 중 최강의 파워를 지닌 헐크(마크 러팔로)까지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다. 잠깐 북유럽신화를 다루는데 갑자기 헐크라니? 바로 그 순간 손가락을 튕기듯 해법이 도출된다. 

어떤 체계든 그 내부 모순으로 발생하는 붕괴와 파국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체계가 닫힌 세계가 아니라 열린 세계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북유럽신화 속 세계는 9개 종족으로 이뤄진 폐쇄된 세계다. 하지만 마블월드에서 아스가르드는 신화와 전혀 무관한 헐크도 방문할 수 있는 행성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게 영화는 아스가르드의 파멸이란 신화의 형식은 그대로 빌려오면서 주인공들의 생명은 연장시키는 묘수를 찾아낸다. 그와 더불어 토르와 로키는 영생불사의 신적인 존재를 벗어나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잿빛 묵시록을 장밋빛 영웅담으로 바꿨다고 화를 내야 할까. 북유럽신화에서도 라그나로크는 최종적 파멸만 뜻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오딘과 토르의 아들로 이뤄진 6명의 신이 아스가르드가 사라진 폐허 위에 이디볼이란 새로운 세계를 세우고 ‘생명’과 ‘생명에 대한 갈망’이라는 여자와 남자가 새롭게 태어난다. ‘토르-라그나로크’는 그렇게 신화와 만화를 모두 이해할 때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상상의 유희를 가르쳐준다.




신동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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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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