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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카리스마’ ‘신의 세 수’ 불멸의 기록 쓰다

파이널 시리즈 11전11승 타이거즈의 힘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kisports@naver.com

‘코끼리 카리스마’ ‘신의 세 수’ 불멸의 기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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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는 10월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을 7-6으로 꺾고 4승 1패로 
통산 11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뉴시스]

KIA는 10월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을 7-6으로 꺾고 4승 1패로 통산 11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뉴시스]

KIA 타이거즈가 2017년 시즌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해태가 9번, KIA가 이번 우승까지 포함해 2번. 도합 11번째다. 한국시리즈 11회 우승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2위 삼성 라이온즈(8회, 1985년 통합우승 포함)를 3회나 앞선 우승 횟수다. 

역사가 긴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우승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해 전 세계 프로야구 팀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했다. 22번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V9’이라는 기적 같은 기록을 갖고 있다.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1973년 퍼시픽리그 1위 팀을 제압하고 세계 프로야구 사상 유례없는 ‘9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7회 우승한 뉴욕 양키스에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로저 매리스, 마리아노 리베라, 레지 잭슨,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 등 쟁쟁한 선수가 영구 결번이 되면서 전설로 남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V9’을 실현할 때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 콤비 왕정치-나가시마 시게오의 ‘ON’포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타이거즈도 뉴욕 양키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못지않은 전설을 쌓아가고 있다. 양키스나 자이언츠보다 우승 횟수는 적지만 KIA는 11번 한국시리즈에 올라 11번 모두 우승, ‘파이널 시리즈 100퍼센트 승률’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갖고 있다. 

타이거즈는 1983년 MBC 청룡(현 LG 트윈스)을 4승 1무로 제압하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86~1989년 4연패 때는 삼성 라이온즈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이겼고, 1991년(빙그레), 1993년(삼성) 1996(현대 유니콘스), 1997년(LG 트윈스) 역시 파이널 시리즈 상대를 물리쳤다. 그 후 12년 동안 한국시리즈와 멀어졌다가 2009년 KIA 타이거즈 조범현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를 4승 3패로 꺾고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10월 30일 김기태 감독이 3연패를 노리던 김태형 감독의 두산 베어스를 7대 6으로 물리치고 시리즈 성적 4승1패로 KIA 타이거즈로는 2번째, 타이거즈로는 통산 11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이 선수에게 90도로 인사

KIA의 우승은 선수들에게도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김기태 감독 특유의 친화력과 형님 리더십, 올해를 우승의 적기로 정한 후 지원을 쏟아부은 구단의 합작품이다. 

KIA의 한국시리즈 11전 전승은 전 세계 프로야구에서 당분간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타이거즈는 왜 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 강한 것일까. 

타이거즈, 즉 호랑이는 태어난다고 해서 다 호랑이가 되지 않는다. 동료들과의 서열 경쟁에서 승리해야 진짜 호랑이가 된다. 타이거즈는 프로야구 출범 때 선수 12명으로 시작했다. 특유의 끈기와 용맹성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1983년 첫 우승에 도전할 때 거의 모든 야구 전문가는 MBC 청룡이 해태 타이거즈를 4승 2패로 물리치고 우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청룡은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을 후기리그에 영입했다. 김 감독이 별명대로 마술을 부렸는지 12경기 차까지 벌어진 승차를 좁혀 후기리그 1위를 차지한 후 전기리그 1위 팀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 맞상대가 됐다. 

대구서 불에 탄 ‘해태 버스’

해태가 불리했던 것은 홈런왕 김봉연 선수가 교통사고를 당해 2개월 여간 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김봉연은 교통사고로 다친 코밑 상처를 감추고자 콧수염을 기른 요상한 모습으로 출전해 4할대 타율을 보이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해태는 김봉연의 초인적 활약에 힘입어 MBC에 한 번도 패하지 않고 4승 1무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86~1989년 4연패를 하기까지 해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6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는 구단 버스가 불타 전소되는 횡액을 겪으면서 치렀다. 당시만 해도 프로야구를 스포츠가 아니라 영·호남 지역감정을 앞세운 대결로 여긴 극성 팬이 대구구장에 서 있던 타이거즈 구단 버스에 불을 질렀다. 광주 경기에서 해태 팬이 삼성 선수를 돌로 맞힌 것에 대한 보복으로 방화한 것이다. 불탄 버스가 해태 선수들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다. 타이거즈는 삼성을 4승 1패로 가볍게 제압하고 두 번째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87년 삼성 전력은 막강했다. 장효조 이만수를 앞세운 팀 타율이 3할에 달했다. 해태는 영원한 에이스 선동열이 허리부상으로 빠져야 했다. 호랑이는 위기에 더 강해지는 법. 왼손 선동열로 불리던 김정수가 ‘선동열급’으로 던져주는 바람에 해태는 삼성을 4승 무패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해태에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해였다. 미래 에이스로 키우던 김대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팀 타선 핵심 김성한이 리그 후반에 빙그레 이글스 장종훈과 부딪쳐 왼쪽 팔목이 부러졌다. 설상가상으로 선동열이 1차전을 던진 후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더 이상 던질 수 없었다. 김응용 감독에게는 손과 발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게 또한 호랑이였다. 이번에는 문희수가 ‘선동열급’ 활약을 해서 도전자 빙그레를 4승 2패로 떨쳐버렸다. 김응용 감독은 ‘선동열 울렁증’을 가진 이글스 김영덕 감독을 속였다. 선동열이 1차전 막판에 손가락 물집이 생겨 자진 강판했고, 이후 던질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선수단에 선동열이 부상한 것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고 ‘2경기에 1번 구원 또는 선발로 나갈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김영덕 감독은 김응용 감독의 위장 전술에 속아 선동열이 선발 또는 구원으로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전을 짰다가 당하고 말았다. 

1989년에 다시 맞붙은 빙그레는 훨씬 강해져 있었다. 1차전에서 이강돈이 포스트시즌에만 들어가면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선동열을 홈런으로 두들겨 1승을 먼저 가져갔다. 그날 김응용 감독이 모친상을 당해 타이거즈의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줄초상집’이었다. 빙그레는 2차전에서도 1회에 먼저 4득점을 올리면서 2승 조짐을 보였다. 호랑이는 구석으로 몰릴수록 더욱 용맹스러워지는 법. 한국시리즈 MVP가 된 중견 호랑이 박철우가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타이거즈는 2차전에서 초반에 내준 4점 차를 극복하고 역전승을 올린 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4연속 우승 신화를 완성했다. 

김응용의 역대급 카리스마

해태를 9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은 김응용 감독의 카리스마는 지금껏 야구계에 회자된다. 코끼리라는 별명답게 김 감독은 체격 조건(185㎝, 110㎏)도 역대급이다. 눈살을 찌푸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지도자들의 천 마디, 만 마디보다 무게가 있었다. 

해태 고참 선수들이 아마추어 시절 김응용 감독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볼따구니를 맞아 나뒹군 기억을 가진 터라 ‘호랑이 감독’으로 통했다. 고참들이 얻어맞은 얘기를 들은 나이 어린 선수들은 “나 같은 놈은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리겠구나” 하고 겁먹게 마련이다. 

김응용 감독이 월례행사처럼 한 게 ‘방망이 투척’이다. 선수들을 모아 놓고 얘기하면서 이것저것 트집 잡다가 갑자기 불특정 선수를 향해 방망이를 내던진다. 그러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가버린다. 이 같은 분위기가 시즌 내내 계속되면서 선수들 사이에는 ‘우리가 알아서 잘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다고 무력시위만 하는 게 아니다. 팀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선)동열이나 (김)성한이가 없으니까 오히려 잘됐다. 동열(성한)이 위주로 투수 로테이션(또는 타선)을 짜야만 했는데, 이제 정상적으로 돌린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게 마련이다.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200만 달러의 사나이’ 김민식

2017년 10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7대 0으로 앞서다 6점을 내주며 쫓긴 김기태 KIA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6, 7차전까지 가면 우승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오늘 끝내야 한다고 판단해 2차전에서 눈부신 투구를 하면서 완봉승을 거둔 양현종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당시 KIA는 선발 헥터 노에시에 이어 심동섭 김세현 김윤동 등 승리조 불펜을 소모한 상태였다. 

양현종은 몸이 풀리지 않았는지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을 맞아 초구는 스트라이크를 던졌으나 볼넷을 허용했다. 이때 포수 김민식이 마운드를 찾아갔다. “대(大)투수가 왜 쫄아요.” 양현종은 이후 1사 만루 위기를 맞았으나 박세혁과 김재호를 잡아내 타이거즈의 11번째 우승을 견인했다. 새카만 후배 김민식의 “왜 쪼느냐”는 한마디가 양현종의 투지를 불러일으킨 격이다. 

김민식은 선동열, 김성한, 양현종 같은 순종 호랑이가 아니라 트레이드해온 선수다. SK 와이번스에서 백업 포수로 뛰다가 4월 7일 KIA로 이적하면서 안방자리를 꿰찼다. 타이거즈의 11번째 우승은 한국시리즈에서 1승 1세이브를 올려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양현종, 0.526의 고타율을 기록한 외국인 선수 로저 버나디나 등이 크게 기여했지만 김민식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수 있다. 김민식은 한국시리즈에서 타율(0.167)은 낮지만 강한 어깨로 상대 도루를 저지하면서 투수 리드를 잘했다. 경험이 적어 단기전에 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안정된 인사이드 워크와 몸을 아끼지 않는 블로킹으로 타이거즈의 안방을 책임졌다. 구단에서는 벌써부터 김민식을 ‘200만 달러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타이거즈가 ‘11회 우승 왕국’을 건설하기까지 김민식 같은 이적생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 1호는 서정환이다. 1982년 12월 7일 서정환은 1600만 원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서정환은 국가대표 출신 유격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삼성의 두터운 선수층, 즉 천보성·배대웅·오대석의 그늘에 가려 난생처음 벤치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 해태는 1루 김봉연, 2루 차영화, 3루 김성한 등 막강 내야진을 구축했으나 유격수가 아쉬웠다. 

화룡점정, 한대화

1987년 한국시리즈를 마친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이 광주구장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맨 앞이 선동열 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1987년 한국시리즈를 마친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이 광주구장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맨 앞이 선동열 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김응용 감독은 서영무 삼성 감독에게 서정환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서 감독은 선수의 활로를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트레이드에 동의했다. 서정환의 가세는 수비 쪽에서 특히 천군만마였다. 공격진은 김일권, 김성한, 김봉연, 김준환, 김종모 등 ‘김씨들’로 막강 전력을 갖췄으나 수비에서 구멍이나 마찬가지였던 유격수 자리를 서정환이 메워줌으로써 전력이 완성된 것이다. 

서정환의 트레이드가 타이거즈 초창기 전력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한대화의 트레이드는 타이거즈 왕조 구축의 화룡점정이었다. 한대화는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실질적 결승전이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결승 3점 홈런을 터뜨려 주가를 올린 선수다. 한대화는 그해 동국대를 졸업하고 계약금 1800만 원, 연봉 1200만 원에 OB(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한대화는 1983년 OB 베어스와 MBC 청룡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4회 초 좌완 유종겸으로부터 3점 홈런을 터뜨려 ‘3점 홈런의 사나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나 시즌을 거치면서 별 볼일 없는 타자로 전락했다. 첫해 기록은 타율 0.272에 홈런도 5개뿐이었다. 1984년에는 74게임에 출전해 0.238, 1985년에는 38경기에 나와 0.226을 기록했다. 젓가락 타율로 떨어지기 일보직전까지 간 것이다. 

1985년에는 대전에서 홀로 동계훈련을 하다가 간염에 걸렸는데, OB 베어스는 치료비를 대주기는커녕 개인적 질병에 의한 부상이라는 이유로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그에게 연봉 지급을 중단했다. 당시 OB는 한대화 외에 구천서, 이종도, 유지훤 등이 3루수를 봤는데, 박창언이라는 재일동포 선수를 데려와 한대화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해태 타이거즈에는 이순철이라는 걸출한 3루수가 있었다. 이순철은 신인왕에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쥔 최고 유망주였다. 마침 투수가 필요하던 OB는 해태에서 투수 황기선과 3루수 양승호를 받고, 한대화를 보내는 1대 2 트레이드를 했다. 당시 창단을 준비하던 고향팀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하기를 바라던 한대화는 야구를 안 하면 안 했지 해태로는 안 간다고 버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트레이드 거부 의사를 확인하고는 1986년 1월 8일 한대화에 대해 임의탈퇴 공시를 했다. 1984년까지 OB 연고지였다가 1985년 OB가 서울로 옮겨가 프로야구 연고팀이 없어진 대전·충청에서는 한대화를 야속하게 해태로 보낸 OB를 성토하면서 그를 다시 불러오자는 가두서명이 진행됐다. 

한대화는 간염 치료용 약값마저 궁해 우울한 세월을 보냈는데,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 창단을 앞둔 빙그레 이글스와 연습경기를 하고자 대전관광호텔에 묵었고, 김인식 해태 투수코치가 한대화를 불렀다. 김 코치는 한대화에게 “어디 가든 야구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고, 한대화는 자신을 동국대로 스카우트한 은사 김인식의 조언을 받아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1986년 한대화는 간염을 언제 앓았느냐는 듯 타격 5위(0.298), 홈런 5위(14개), 장타율 2위(0.503), 출루율 5위(0.372)를 기록하며 1989년까지 해태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천하의 이순철이 한대화에 3루 자리를 내주고 중견수로 수비 위치를 옮겨야 했다. 

10월 30일 KIA 양현종(가운데)이 한국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한 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동료들과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뉴시스]

10월 30일 KIA 양현종(가운데)이 한국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한 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동료들과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뉴시스]

12승 과제는 백업 기량 상승

그렇다면 KIA 타이거즈의 2018년은 어떨까. 12번째 우승이 가능할까. 

KIA는 김기태 감독 연봉을 두 배 올려줬다. 김 감독은 3년 전 총액 10억 원(계약금 2억5000만 원, 연봉 2억5000만 원)에 KIA와 3년 계약했는데, 2020년까지 3년 동안 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0억 원에 재계약했다. 감독 몸값을 올린 것은 팀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KIA는 투타 밸런스가 잘 맞는 팀이다. 불펜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넥센 히어로즈에서 김세현을 트레이드해 와 어느 정도 보강됐다. 외국인 선수와 FA 선수를 모두 잡는다면 선발은 헥터 노에시, 패트릭 마이클 딘 즉 팻딘, 양현종, 임기영으로 안정돼 있다. 타선도 이명기, 김주찬, 로저 버나디나, 최형우, 나지완, 이범호, 안치홍, 김선빈, 김민식 등으로 리그 최고 수준 공격력을 갖췄다. 어깨 수술을 받아 재활 중인 투수 윤석민이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에 합류하면 천군만마를 얻는다. 

약점은 마운드, 타자 모두 후보 선수들이 약한 것이다. 2017년 시즌 막판 두산에 쫓긴 것도 주전급 선수가 지쳤는데, 이를 대신할 백업 선수의 기량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넥센에서 김세현을 데려올 때 이승호 손동욱 2명의 좌완 투수를 내줬기에 마운드에 유망주가 적은 것도 약점이다. 야수 중에는 서동욱이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감초 역할을 했으나 공격에서 약점을 보였다. 최원준이 유격수 김선빈이 빠질 때 자리를 메웠지만 수비가 미흡했다. 고장혁은 대주자와 대수비로 이따금 출전했을 뿐이다. 

요컨대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 캠프를 통해 투타에서 백업 선수들의 실력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2연패 여부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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