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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적폐청산 ‘내로남불’

넘버원 北전문가에서 ‘종북으로 몰렸다, 적폐로 구속’ | “정권 바뀌니 ‘경상도 수용소’로” “정권 실세에 5000만원 줬더라도…”

유성옥 前 국정원 심리전단장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 | 행시 출신 국정원 엘리트가 문화재 수리공 된 까닭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aom

넘버원 北전문가에서 ‘종북으로 몰렸다, 적폐로 구속’ | “정권 바뀌니 ‘경상도 수용소’로” “정권 실세에 5000만원 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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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옥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박해윤 기자]

유성옥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박해윤 기자]

채갑주 전 국정원 감사팀장 [박해윤 팀장]

채갑주 전 국정원 감사팀장 [박해윤 팀장]

국가정보원이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의 산파 구실을 했다. 김보현 3차장-서영교 대북전략국장-서훈 대북전략조정단장이 주역이다. 10월 21일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된 유성옥(60)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1차 남북정상회담 때 서훈 현 국정원장 밑에서 실무를 맡았다. 

유 전 단장은 국정원에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은 김만복(국정원장)-서훈(3차장)-유성옥 라인이 조율했다. 2차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작성한 게 유 전 단장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2차 정상회담 때 김만복-서훈 간 경쟁 심리로 서훈 3차장보다 유성옥 전 단장의 역할이 더 컸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으니 유 전 단장의 공로를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10월 21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로 유 전 단장을 구속했다. 심리전단장 재직 시 온라인 게시글·관제 시위 등에 10억 원을 사용한 게 구속 사유다.

“원세훈에 휩쓸려…”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 핵심 역할을 한 인사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온라인 게시글 및 댓글 여론 조작과 관제 시위를 수행한 것이다. 유 전 단장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선 햇볕론자로,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선 종북세력으로 몰려 수난을 당했다. 이번 정권에서는 적폐 행위를 한 것으로 지목돼 구속됐다. 지난 20여 년간 5개 정권에서 북한 전문가→햇볕론자→종북 세력→적폐 세력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산 것이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유능한 데다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전형적인 관료형 인물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무리한 행태에 휩쓸려 범죄 혐의자가 됐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유 전 단장은 진주고,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정치학)를 받았다. 1986년 국정원 공채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까지 북한 관련 분야에서만 일했다. 북한 담당 부서는 직원들이 기피하던 곳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유 전 단장은 국정원에서 넘버원으로 꼽히는 북한 전문가”라면서 “남북 장관급회담, 북핵 6자회담도 유 전 단장의 손을 거쳤다”고 말했다. 북한에도 8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단장이 2차 남북정상회담이 마무리된 뒤 맡은 직책이 심리전단장(2급)이다. 심리전단은 북한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거나 북한의 심리전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이 운영하는 온라인 대남 매체가 80여 개에 달한다. 통일전선부가 SNS 등을 통해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유포하는 온라인 심리전 전담 조직을 운영한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심리전이 남북 간 비대칭 전력으로서 유용하다고 판단해 대남 공작기구에 사이버 선전·선동을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해왔다.

노동당 225국, 통일전선부, 정찰총국 등이 한국인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 정책을 비방하는 심리전 공격을 전개했다. 국내외 일부 세력도 프락시 서버를 통해 IP를 제3국으로 변경해 북한 매체에 접속한 후 북측 주장을 실시간으로 국내에 유포했다. 

“MB 정부 때 면직”

전직 국정원 인사는 “북한 공작기관이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글에 필명을 대거 동원해 댓글달기를 조직적으로 실시하는 등 여론몰이를 통해 민심조작, 국론 분열을 획책했다”고 전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국정원이 대응할 필요는 있다. 심리전단은 이명박 정부 말기로 가면서 악성으로 변질됐다. 여론 조작, 국내 정치 및 대통령선거 개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정원은 당시 야권을 종북 세력으로 모는 정치 공작까지 벌였다. 

국정원 여론 조작 및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서울고법은 8월 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은 9월 11일 파기환송심에 불복해 상고했다. 

그가 국정원 심리전단장을 맡은 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다. ‘심리전총국’으로 1급이 맡는 자리였으나 김대중 정부 때 ‘국’에서 ‘단’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심리전단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활동도 했다. 

심리전단 사이버팀은 노무현 정부 때 신설돼 대북 정책과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홍보하는 등의 일을 했다. 홍보와 여론 조작은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 첫 국정원장인 김성호 전 원장 후임으로 원 전 원장이 부임하면서 사달이 났다. 

원 전 원장은 당시 야권 정치인을 상대로 ‘종북 몰이’를 하려고 했다. 유 전 단장은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야당 인사 공격 등 무리한 요구는 수행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이 똑바로 일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유 전 단장은 2010년 충북지부장으로 밀려났다. 

‘넘버원 북한 전문가’가 1급(국·실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한직으로 쫓기듯 떠난 것이다. 국정원 지부장 중 강원, 충북 등은 2급이 가는 자리다. 유 전 단장은 충북지부장을 끝으로 면직돼 국정원을 떠났다. 

‘남재준 국정원’에 종북으로 몰려

유 전 단장은 2012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이 자리는 국정원 국·실장(1급) 출신 인사가 퇴직 후 가는 자리였으나 유 전 단장의 전임인 남성욱 전 원장 때 내부 문제가 발생해 2급 출신을 배려하는 자리로 격하됐다. 유 전 단장은 국정원에서 면직된 후 “연금을 포함해 수억 원을 손해 보게 됐다”면서 씁쓸해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바뀌면서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국정원장으로 부임했다. ‘남재준 국정원’에서 유 전 단장은 1, 2차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다는 이유 등으로 ‘종북 세력’이라는 모함을 받았다. 

2013년 5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우리와 안 맞는 사람은 내보내라”면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유 전 단장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노무현 정부) 측근인 A연구원과 B연구원, C연구원과 함께 정리 대상이 됐다. 

‘남재준 국정원’은 유 전 단장과 A, B, C연구원을 한 묶음으로 종북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연구원들이 “박근혜 정부와 철학이 다르면 나가라는 거냐”고 맞섰으며 법률 검토 결과 법적으로 해임이 어려워 구조조정은 무산됐다. 

유 전 단장은 당시 국정원 고위직 인사의 도움으로 자리를 보전했다. 이 인사가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 종북 세력이 아니라고 변론해준 것이다. 유 전 단장은 이 인사에게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흥미롭게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남재준 국정원’이 종북으로 지목한 A연구원은 해외정보 분석을 총괄하는 국정원 핵심 직책(1급)으로 옮겨갔다. 국정원 바깥 인사가 1급 국·실장은 맡은 것은 파견 검사 등을 제외하면 국정원 역사상 처음이다. 

행시 출신 엘리트가 문화재 보수 기술자로

채갑주(62) 전 국정원 감사팀장은 유성옥 전 단장의 고등학교(진주고) 2년 선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도 각각 원장과 연구원으로 함께 일했다. 

“여론 조작은 국정원이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 역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정보기관은 합법과 비법, 때로는 불법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일합니다. 현미경을 들이대 불법을 찾으면 한둘이 아니죠. 8~9년 전 일로 구속된 유 전 단장은 보수정권에서는 친북, 진보정권에서는 적폐로 몰렸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국정원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11월 9일 그는 경북 김천시 계림사 응향각을 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올해 7월부터 문화재 보수 기술자로 일한다. 행정고시 출신이며 박사학위를 가진 엘리트 국정원 간부가 문화재 보수 기술자가 된 까닭은 뭘까. 

그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7회. 국정원 재직 중 국비 유학을 떠나 영국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찰 출신으로 국비 유학을 온 표창원 의원과 엑시터대 대학원에서 함께 수학했다. 

그는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국정원을 지망했다. 고시 출신으로 국정원에 들어간 2기다. 행시 27회는 100명을 선발했는데, 동기 중 장·차관도 여럿 나왔다. 

“북한 전문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국정원 경쟁률이 3대 1가량 됐어요. 사시 2명, 행시 3명이 뽑혔고요. 7급으로 들어온 이들과 1년간 교육을 함께 받았습니다. 특전사 낙하 훈련도 받았고요. 당시 북한 담당 부서는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북한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였기에 망설임 없이 북한국을 지원했죠. 공대 출신이란 이유로 정치과, 사회과가 아닌 과학과로 보내더군요. 북한국 일이 고됩니다. 업무도 생각한 것과 달랐고요. 기획조정실 감사관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와 그쪽으로 옮겼습니다.” 

“정치권에 줄 대는 게 중요”

1995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삶은 순탄한 듯 보였다. 행정고시 출신인 터라 1, 2급까지는 무난하게 승진할 것이라고 여겼다. 

“YS 정권 때 국정원 4급 중 부산 정치권 실세의 선배가 있었습니다. 서울 출신 4급과 승진 경쟁이 붙었습니다. 서울 출신은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다 능력까지 있었습니다. 부산 출신은 대충대충 일하는 스타일이었고요. 누가 승진했을까요? 부산 출신이 했습니다. 국정원 인사가 그렇습니다. 고향이 어느 곳인지와 정치권에 줄 대는 게 중요해요.”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한국 내 지역 갈등이다. 

“남북 분단 탓에 정책이 왜곡되는 사례를 논문으로 쓰려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지도교수가 남북 문제도 지역 갈등의 하나로 볼 수 있으니 영·호남 지역 갈등 위주로 서술하면서 남북 문제를 넣으라고 조언하더군요. 호남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습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뭔가 미안한 감정이 들었거든요.” 

영국에서 논문을 쓰고 있을 때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다. 1998년 8월 영국에서 돌아와 국정원에 복귀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발령이 났다. 국정원 정보대학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정보대학원은 당시 ‘경상도 수용소’로 일컬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국정원 내 영남 출신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직됐다. 

“정보대학원에서 영어 교수를 하라는 겁니다. 정보대학원은 7급 입사자, 승진자, 대공 업무 경찰 등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7급 입사자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라는 것이었는데 피교육생 중에 영어 전공자도 섞여 있었죠. 비(非)전공자가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어 선생이 된 겁니다.” 

국정원은 일반 부처보다 승진이 빠른 편이다. 그도 4급을 일찍 달았다. 4급 직원 계급 정년이 13년인데 5급 임용 연도를 기준으로 정규 과정 15기와 동기로 취급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5급으로 시작해 4급으로 승진한 터라 계급 정년이 얼마 안 남게 된 것이다. 40대 후반에 옷 벗을 처지가 됐다. 

“영어 가르치는 것에 감지덕지해라”

“내가 4급일 때 7급이던 후배가 3급으로 승진해 정보대학원에 교육받으러 왔더군요. 정보대학원에서라도 승진하면 더 일할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하면 40대 후반에 실직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경상도 놈이 정보대학원에서 영어 가르치는 것도 감지덕지하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승진 연한 막판에 몰렸을 때 후배 하나가 DJ 정부 실세 A씨에게 5000만 원만 갖다 주면 다 잘될 것이라고 제안하더군요. 그 짓을 못 했습니다.” 

그는 2004년 계급 정년으로 국정원을 나왔다. 행정고시 출신 영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49세에 면직된 것이다. 

“고향에 현수막이 두 번이나 내걸렸습니다. 고시 합격과 영국 박사학위 취득 때는 고향의 자랑이었죠. 고시 출신 중 승진(5급→4급)을 딱 한 번만 해보고 옷 벗은 공직자가 또 있을까요. 고향에 안 내려간 지 오래됐습니다.사람들이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고 물으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겠거니 오해할 것 아닙니까.”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정권이 바뀐 후 고영구 국정원장이 부임했다. 서동만 당시 기조실장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서동만 기조실장이 지금은 정치권에 있는 B씨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여주더군요. 내용이 기가 찼습니다. ‘영국 유학은 특혜다’ ‘4급으로 퇴직한 고시 출신 전례가 있다’ ‘7번의 기회를 줬는데 승진을 못한 것이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실질적으로 저에게는 승진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퇴직한 고시 출신 선배는 승진도 싫다 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입니다. 서 실장이 정년이 보장되는 정보대학원 학술교수(국정원 직원이 아닌 교육법 적용을 받는 교수)직을 제안했는데 기조실장이 김만복 전 국정원장으로 바뀝니다.” 

그는 2004년 6월 30일 국정원을 나왔다.

“국정원은 제 억울한 상황과 관련해 두 차례 약속을 했습니다. 정보대학원 학술교수를 약속한 게 한 번, 퇴직 때 3급 특채를 약속한 게 또 한 번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으로 가 있으면 특채하겠다고 했는데, 그곳에 안 가고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척하고 나와 돌아다녔습니다. 두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는데 충격을 받을까봐 출근하는 척했죠. ‘가슴병’이 생기기더군요.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는데 10초마다 죽을 만큼 가슴이 아픈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기다리니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일단 가 있으라더군요. 1년을 출근하는 척하느라 심신이 지쳐 국가안보전략연구원으로 갔습니다. 50세 때부터 2015년까지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지역 안배 인사 원칙 세워야”

그는 올해 6월 문화재 보수 기술자 시험에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동기들과 비교해 연금이 절반가량입니다. 연금만 갖고는 못 살잖아요.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합니다. 문화재 수리 기술자로서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북한 문화재 수리 복원을 통한 문화재 분야 남북교류가 통일에 기여하는 것과 통일 후 북한 문화재 수리 복원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그는 국정원 개혁 과정에서 인사 문제와 관련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인사 시스템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를 청산한 쪽이 적폐가 되는 일이 재현될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정부 때는 TK(대구·경북)가 국정원 요직을 독점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죠. 외부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내부 통제로라도 지역 안배 인사 원칙을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정권 교체 때마다 국정원은 몸살을 앓는다. 인적 쇄신을 명분 삼은 물갈이가 거칠게 이뤄진다. 인사에서 소외된 이들이 야권에 줄을 대는가 하면 정권의 시녀를 자임해 잘나가는 이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권의 수족 노릇을 하던 이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弊端)을 일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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