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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엔 대형 호재 한반도 군사충돌 위험 고조

‘유가(油價) 전쟁’의 정치·경제학

  • 윤성학 |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dima7@naver.com

한국 경제엔 대형 호재 한반도 군사충돌 위험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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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까지 가보자

지난 20년 동안 고유가는 세계경제를 유가절약형 체질로 바꿔놓았다. 자동차 연비는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전기를 훨씬 적게 쓰는 LED 조명도 보편화했다. 선진국에선 고령화가 진행 중인데, 나이가 들면 에너지를 적게 쓴다. 컴퓨터 산업의 발전도 에너지 소비량을 줄인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하면서 석유화학산업의 원료인 석유도 천연가스로 대체된다. 석유 수요가 증대할 만한 곳은 아프리카, 인도 같은 곳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이 유가 하락을 즐긴다면 사우디는 전략적으로 유가 하락을 유도한다. 사우디는 셰일가스, 셰일석유 등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이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미국의 산유량은 사우디와 거의 같은 수준이 됐다. 사우디는 미국으로의 원유 수출도 막혔다. 아시아 시장마저 미국에 의해 잠식당할 위협에 처했다.

사우디는 ‘국가적 주적’으로 떠오르는 셰일원유를 무너뜨리려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셰일원유의 생산단가가 자국산 원유보다 높다는 게 사우디가 믿는 구석이다. 반도체 전쟁과 마찬가지로 손해를 무릅쓰고 상대방을 몰락시키려는 것이다. 석유패권 전쟁의 부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저유가가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북한, 한국에 각각 어떤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러시아의 경우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2차 석유전쟁으로 소련이 붕괴된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차 석유전쟁에서 링에 오른 선수는 사우디와 미국인데, 직격탄을 맞은 나라는 러시아다. 사우디는 아마 미국의 셰일회사들이 망할 때까지 저유가 정책을 지속할지 모른다. 실제로 일부 셰일회사가 도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망하는 곳은 러시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의 위기

사우디는 유가가 20달러 미만으로 떨어져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이미 감가상각이 끝난 유전들을 보유한 데다 70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산유국은 버텨내기 힘들다. 이미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라크, 멕시코, 앙골라 같은 산유국은 재정위기에 직면해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이들 국가는 원유생산 감축을 주장하며 사우디와는 다른 길을 가려 한다. 그러나 생산 규모가 작고 시장지배력이 없기 때문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지난해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마저 넘보자 미국은 석유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했다. 미국은 경제제재 대상에 러시아 에너지 기업을 포함시켰다. 서방 에너지 기업의 러시아 유전 개발 참여 및 석유기술 이전을 금지했다. 그래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자 미국은 저유가라는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던 러시아도 저유가 앞에서는 비틀거렸다. 환율이 폭락했고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러시아는 자국민이 일정액 이상의 루블화를 달러로 바꾸지 못하도록 했다. 러시아 경제는 이미 패닉 상태다. 저유가는 핵무기보다 더 강력하게 러시아를 파멸로 몰아갈지 모른다. 미국은 일부 자국 에너지 기업을 희생시키더라도 저유가를 지속할 충분한 이유를 찾은 것이다.

러시아에는 소련이 저유가로 망한 트라우마가 있다. 러시아는 세계 4위 규모인 419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부펀드를 만들어 산업 현대화를 추진하고 지역개발을 가속화했다. 저유가 폭탄은 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저유가 초기 국면에서 이미 140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 루블화 평가절하와 이자율 상승으로 경제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

국가예산의 약 60%를 원료 수출로 충당하는 경제 체질상 위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유가가 95달러일 것으로 예상하고 2015년 예산을 책정했다. 그런데 유가는 60달러가 됐다. 2015년 예산에 구멍이 생겼고 성장률은 마이너스 5%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유가가 50달러, 40달러로 떨어지면 디폴트 상태로 갈 수도 있다.

고유가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실효가 없지만, 저유가 상황에서 경제제재는 러시아의 목을 조를 것이다. 러시아의 금융기관들은 이제 정부의 보증 없이는 서방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다. 금융기관의 연쇄 부도 사태가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에 항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의 중산층이 어느 날 갑자기 극빈층으로 전락하든 말든 푸틴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푸틴은 “이 모든 불행은 오직 미국 탓”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선전은 러시아 국민에게 먹혀든다. 슬라브 민족은 고난의 행군에 익숙한 편이다. 더욱이 지금 러시아엔 푸틴을 대체할 만한 정치세력이 없으므로 그는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죽어나는 건 러시아 국민이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돌려주지도 않을 것이다. 푸틴은 2015년 연두교서에서 크림 반도에 대해 “주권을 지키거나 세상에서 사라지거나”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동부의 합병을 추진하는 데선 한발 물러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치 않다. 러시아는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버텨보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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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 |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dim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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