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글 쓰는 데 쓸란다. 한번 입원하면, 다시 책을 쓰기는 어려울 거다. 암 치료 받기 시작한 작가들 결국 소설다운 소설 못 쓰고서….”
“그래도 아빠, 일단 살아야 하잖아? 그럼 우린 어떡해. 아빠가 치료도 안 받고 그냥….”
복씨가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나오는 부녀(父女)의 대화다. 실제 얘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2012년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건강해 보였다. 치료 대신 글쓰기에 몰두한다. 그를 두고 말과 행동, 겉과 속이 같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다. 2014년 자유인상, 시장경제대상을 수상했다. 글자 그대로 자유주의 전도사다.
인터뷰 내내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질문마다 강렬하면서도 담백하게 답했다. 그는 민족사회주의가 자유주의의 적(敵)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유주의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외의 다른 길은 옳지 않다는 신념을 가진 자유주의 이데올로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을 들었다.
‘태백산맥’의 부정적 측면
▼ 소설가이신 만큼 소설과 관련한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8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입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결합하면서 이른바 486세대가 좌파적 역사·사회 인식을 공고화하는 데 적지 않은 구실을 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작품의 영향력이 큰 것만은 분명합니다. 문학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은 없으나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까지 좌파의 행위를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좌파는 온갖 모략으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습니다. 전쟁 때는 대한민국을 침략한 북한을 도왔고요. 좌파가 한 일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루면 문제 될 게 없으나 대한민국에 살면서 글 쓰는 작가가 좌파의 잘못된 행동을 미화해선 안 됩니다. 조정래 씨는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좌파를 미화했습니다. 편향이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드러나면 괜찮지만 ‘태백산맥’은 그렇지 않다고 봐요.
‘태백산맥’을 보면 좌파는 하나같이 사려 깊고 인정 많은 데다 꿈을 가졌습니다. 반면 우파는 이익만 따지고, 지조가 없으며, 무자비합니다. 좌파를 미화하기만 한 게 아니라 우파를 폄하한 것이지요. 요컨대 ‘태백산맥’은 소설문학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관련해 ‘양(量)’은 많지만 ‘대본’이 되기엔 약합니다. 조정래 씨가 초기에는 좌파적 작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좌파에서 작품에 열광하니 점점 끌려들어가 우파를 비난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는 최근 첫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100만 부 넘게 팔려나갔습니다. 중국을 기회의 땅,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묘사합니다. ‘지금 당신은 미래와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는 광고 문구가 붙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작품이 중국에 대한 환상을 확산하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미를 강조해온 일부 486세대가 최근 중국에 경도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그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내용이 담겼다면 경계해야 할 겁니다. 전체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좌파 지식인이 지닌 치명적 결함이 경직성입니다. 삶을 절충적으로 보지 못해요. 대한민국 건국을 폄하하고 미국을 싫어하다보니 중국에 지나친 호의를 보이는 관념적 문제가 조정래 씨 등에게서 나오는 것 같은데, 중국은 우리를 참으로 곤혹스럽게 하는 존재입니다.
이웃이 강해지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개인은 이사를 가면 되지만 나라는 그러지 못합니다. 이웃 나라가 강해지면 예전에는 침략이 일어났습니다. 현재도 어떤 형식으로든 압박받을 수밖에 없어요. 지정학적 조건은 잘 안 바뀝니다. 변화한 것 같아도 한국과 중국 사이의 근본적 문제, 한쪽은 크고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간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큰 나라는 지배하려 하고 작은 나라는 살아남으려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게 본질적 상황인 것입니다.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주장은 한쪽 면만 본 것입니다. 물론 기회일 수 있죠. 그러나 기회로 만들 때 우리가 치를 대가도 큽니다. ‘정글만리’는 한국인의 활동무대가 넓어진다는 점을 강조해 접근한 것 같은데, 중국의 부상(浮上) 탓에 압박받는 상황도 드러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