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8월 13일 2014고단444 판결 중
‘범죄사실’ 요약
지난해 여름 이른바 도둑뇌사 사건의 1심 판결을 맡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청이 ‘가해자’ 최모 씨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이후 정당방위 인정 범위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낯선 침입자를 행여나 중태에 빠뜨리진 않을지 계산하며 제압해야 하나” “다른 식구에게 강도나 강간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먼저 물었어야 하나” 등 법원의 상황 판단이 부족했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1월 14일로 예정된 항소심 판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새벽, 9개월 넘게 뇌사 상태에 있던 도둑 김모 씨가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검찰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서 상해치사죄로 공소장을 변경했고,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가 바뀌면서 재판 기일도 늦춰졌다. 여전히 정당방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최씨의 형량은 1심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형법 제259조 1항).
4~5년에 한 번꼴 인정
최근 미국에선 비무장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판결이 반복되자 정당방위 논쟁이 인종갈등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해 문제가 되는 미국 등 서구 사회와 반대로 한국은 정당방위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해 국민과 법원 간 인식의 괴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 형법도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21조 1항)고 명시했다. 그러나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지난 60여 년 동안 14건밖에 없다. 김 교수는 “형법이 1953년 제정됐으니, 정당방위 인정은 4~5년에 한 번 나오는 희귀한 판례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왜 정당방위 인정에 인색할까. 법심리학자인 박광배 충북대 교수는 논문 ‘일반인의 정당방위 판단에 대한 법문화의 영향’(사회와 성격, 2013년)에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법원이 ‘상황’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둘째 한국의 법문화가 유교의 영향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경우에 정당방위로 인정받고 어떤 경우에는 그러지 못할까. 정당방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처남이 술에 취해 자신의 아내를 때리자 화가 나서 처남과 싸움. 그 과정에서 몸무게가 85kg이 넘는 처남이 62kg인 매형을 넘어뜨리고 가슴 위에 올라타 목을 눌러 호흡이 곤란해짐. 매형은 안간힘을 쓰며 허둥대다 근처에 놓여 있던 과도로 처남에게 상해를 가함. (대법원 2000.3.28 선고, 2000도228 판결)
술에 취한 환자 보호자가 “우리 형을 살려내라”고 고함지르며 칼을 들고 병원 직원들을 위협하며 난동. 이 보호자는 ‘칼을 버리고 나오라’고 명령하는 순경에게 칼을 들고 다가옴. 순경은 11m가량 뒤로 밀리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총구 부분으로 보호자의 가슴 부분을 밀어냈으나 그럼에도 계속 다가옴. 순경은 방아쇠를 당겼고, 보호자는 상해를 입어 그 후 사망함. (대법원 1991.9.10, 91다19913)
건설회사 간부가 공사 하자를 보도하려는 방송기자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하자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툼. 주위 사람들은 이를 보고 말렸음. 기자가 간부에게 대항하기 위해 깨진 병으로 찌를 것처럼 겨누어 협박함. (대법원 1991.5.28, 91도80)
‘가슴 말고 하체 쐈어야…’
위의 세 가지 사례 중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건 없다.
대법원은 에 대해 애초에 정당방위 가능성을 배제했다. 처남이나 매형이나 서로 공격할 의사가 있는 ‘싸움’ 중에 벌어진 일로 본 것이다. 사실 ‘무조건 맞는 게 남는 장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쌍방폭행에선 아무리 상대가 위협적인 도발을 했더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렵다.
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고 봤다. ‘11m나 뒤로 밀리는 동안 공포(空包)를 발사하거나 가스총과 경찰봉을 사용해 항거를 억제할 시간적 여유나 보충적 수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득이 총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다면 가슴 부위가 아닌 하체 부위를 향해 발사’할 수 있다고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