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나온다…잠깐만요, 이 장면 좀 보고요….”
이 전 수석이 리모컨으로 벽걸이TV의 볼륨을 높였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2월 이 대학 연기예술과를 졸업하는 가수 강원래의 사연이 소개됐다. “인생, 한번 넘어져도 괜찮아요. 나는 계속 꿈을 꿉니다.” TV 화면 속 강원래의 말에 이 전 수석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최근 정국 현안에 대해 이 전 수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세 수석’을 지내 지금의 청와대발(發) 파문에 대해 잘 알 것 같았고, 이 전 대통령 측근이라 자원외교 국정조사(국조) 같은 ‘여의도 핫이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비서실 內 비서실”
▼ 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보셨나요.
“일하면서 대충….”
▼ 총평을 한다면.
“성의 있게 다가가는 모습이었어요. 유머도 섞어서. 진일보한 소통의 노력? 그러나 상황 인식이 국민 생각과 조금 거리가 있어요. 결국 상황 인식이 문제인 것 같아요. 경제와 통일에 대해서도 원론을 되풀이하는 듯했고. 세월호 겪고 국가안전처 만든 뒤 환풍구 사고, 의정부 화재사건 났죠. ‘안전한 나라 만들겠다’는 다짐이 없었던 것도 좀 아쉬워요. 국민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 ‘안전한가’ ‘먹고살 만한가’인데….”
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와 관련, 박 대통령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지금까지 했던 대면보고를 조금 더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마는”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배석한 장관들을 뒤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했다. 이어 질문한 기자에게 “청와대 출입하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요”라고 했다. ‘대면보고를 늘릴 필요가 별로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옛날에는 대면보고만 해야 됐지 않습니까? 전화도 없고, e-메일도 없고. 지금은 여러 가지 그런 것이 있어서 어떤 때는 대면보고보다도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하는 게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
이른바 ‘문고리 권력’ 세 비서관 외에 수석비서관들이나 장관들이 박 대통령 대면보고를 거의 못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와 관련된 이 전 수석과의 대화다.
▼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과 수석들 간 커뮤니케이션은 어땠습니까.
“이 대통령 앞에서 자주 수석들끼리 갑론을박했죠. 대통령은 그냥 놔두고.”
▼ 이 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대면보고를 자주 받았나요.
“수시로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엔 아침저녁으로. 마음대로 했는데….”
▼ 실세셨으니까(웃음). 다른 수석들은….
“다른 수석들도 얼마든지. 총리, 장관도요. 엊그제 정운찬 전 총리를 만났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분은 주례보고를 했다니까요. 지금 대통령은 관저에 오래 계신다고 그러는데, 이 전 대통령은 오전 7시 40분이면 집무실에 와요. 이후 계속 만나요. 인사 문제 같은 거 건의할 때 두세 명이 우르르 갑니다. 그러면 ‘또 뭔 이야기하려고 몰려오는 거야?’ 하시죠. 지금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는 (대통령 말씀) 받아 적기만 한다면서요? 우리 회의는 서로 남의 말에 코멘트하고…오죽하면 ‘봉숭아학당’이라고 했다니까.”
▼ 하지만 그때도 ‘소통이 안 된다’고 언론이 떠들었는데….
“우리도 한다고는 했지만 야당과의 소통, 반대 진영과의 소통, 국민과의 소통이 미흡하다고 했죠. 그러나 대통령과 수석·총리·장관 간 소통은 잘됐어요.”
▼ 그때도 부속실이 셌나요.
“김희중 씨가 부속실을 맡았는데, (지금의 세 비서관처럼) 김씨는 의원 시절부터 이 전 대통령을 모셨어요. ‘절대로 문고리 권력 행세하지 말라’ ‘누구는 오고 누구는 오지 말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루에도 두세 번씩 대통령에게 깨졌다고 해요. 나쁘게 표현해서 쥐 잡듯 했어요. 문고리가 없었어요. 다들 하도 밀고 들어오니 대통령이 피곤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