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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슈

“그땐 희망이라도 있었지…” 저성장 세대의 우울한 항변

영화 ‘국제시장’과 세대갈등

  • 강유정 | 영화평론가,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noxkang@daum.net

“그땐 희망이라도 있었지…” 저성장 세대의 우울한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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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대의 희생

‘씨네21’의 황정민 인터뷰를 보면 12세에 피란길에 올랐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나이 셈 법칙을 따르자면 덕수는 1939년생 아니면 1940년생이 될 것이다. 흥남철수 시절 12세인 덕수는 45년생 여동생 윤막순을 업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르려다 동생을 놓치고 만다. 이에 이미 배에 올랐던 아버지는 막내를 찾기 위해 다시 하선한다. 배에서 내리기 전 아버지는 아직은 어린 덕수에게 자신의 두루마기를 벗어주며 “내가 없으면, 네가 이 집안의 가장이다. 넌 이 집의 장남이다”라며 어깨를 두드린다. 평생 ‘가장’이라는 이름이 따라붙은 덕수의 고달픈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행히 덕수에게는 먼저 부산으로 피란 와 ‘꽃분이네’라는 가게를 차린 고모가 있다. 고모가 미리 터를 잡아놨기에, 덕수 가족은 부산에 내려와 아사하거나 동사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일궈나간다. 잃어버린 여동생이나 소식이 불분명한 아버지보다 더 급한 것은 남은 자식들의 생계다. 그래서 장남 덕수는 초등학생인 10대 초반부터 생계를 꾸려나간다. 슈샤인보이로 구두를 닦고, 뭇매를 견디며 사수한 초콜릿을 동생들의 입에 넣어 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덕수의 삶은 1970, 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경유한다. 26세의 덕수는 광부로 서독에 가고, 70년대 베트남전 때는 상사 직원으로 근무한다. 그리고 80년대, 피란민으로서 이산가족 찾기의 주인공으로 막내 여동생 막순과 재회한다.

덕수가 살아온 60여 년의 삶은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흥남철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14년 현재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서 끝난다. 흥남철수, 독일, 베트남, 이산가족 찾기라는 네 가지 서사적 매듭을 골간으로 그 사이의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괄호에 넣어진다. 가난한 피란 가족의 장남으로서 가계를 꾸려나가는 경제 이야기가 전경이 될 뿐 이면에 감춰진 다른 이야기는 다룰 겨를이 없다. 아니,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국제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 세대의 희생’이며, 그 희생을 바탕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경제적 윤택함이다.



자식들에 대한 무관심

“그땐  희망이라도 있었지…” 저성장  세대의  우울한  항변

베트남전에 돈 벌러 뛰어든 덕수(맨 앞).

아버지 덕수는 “이 고생을 우리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라고 말한다. 1966년 덕수가 서독 광부 계약기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 곧 아버지가 됐으니 그 자식 세대는 우리가 ‘386’세대라고 부르는 67년생쯤 될 것이다. 결국 67년 이후 태어난 우리는 폐허 위에서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 부의 기반을 마련한 부모 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덕수는 우리가 흔히 근대화 세대라고 부르는 1940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군사정권 아래에서 한일국교 정상화 과정도 보았고,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출산 억제정책, 반공의식 함양을 거쳤고, 학력 수준도 과거에 비해 높아진 세대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덕수는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왔던 근대화 세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장면도 없고, 5·16이나 4·19와 같은 정치적 연대기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온 과거의 인물들이 대개 정치사와 관련된 인물이었다면 덕수는 거의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적 면모를 빼고 묘사된 인물이다.

대신 그 부재를 채우는 것이 바로 경제적 희생의 면모다. 덕수는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의 희망을 건사하기 위해 돈을 벌어온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포기한 선장의 꿈은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국제시장’에서 세대 갈등과 세대격차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도 사실 이 경제적인 부분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자식들에 대한 덕수의 무관심이다. 영화에서 아들, 며느리, 딸은 거의 액세서리나 다름없다. 이름도 불리지 않은 채 몇 장면에서만 등장하는데,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손자손녀를 맡기러 오는 장면에서다. 자식들은 여행에 부모를 모시고 가지 않는다. 빈손으로 찾아와 아이들을 봐달라고 떠맡기곤 자기들끼리 훌쩍 떠나버린다.

이 장면만 보자면, 386세대 자식들은 염치도 없을 뿐 아니라 이기적이다. 아버지 속도 모르고 가게를 팔라고 짜증 내는 아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반면 아버지 덕수는 투덜거리지만 관대하고 너그럽다. 이미 자신이 할아버지가 됐음에도 아버지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만큼 효자이기도 하다. 가게 안 판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도 결국 아버지에 대한 기다림과 효 때문인 것을 보면, 덕수는 지금의 노인 세대 혹은 장년 세대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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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영화평론가,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noxka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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