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차례 통화 시도 끝에 어렵사리 연결된 이성태(70) 전 한국은행 총재의 첫 반응은 싸늘했다. 수화기를 통해 조금은 화가 난, 조금은 불만스러운 감정이 전달됐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펴낸 책 때문에 요즘 심기가 편치 않을 법도 하다. 기자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쇄도하고, 불편했던 과거사가 여러 언론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으니 말이다.
▼ 강만수 전 장관이 쓴 책은 읽어봤습니까.
“아니, 읽어보지 않았고요. (…)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없다니까요. 괜히 책 선전만 해주는 거지.”
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강 전 장관의 비망록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 실록’에는 이 전 총재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한국은행에 대해 “외환시장의 절대군주 ‘차르’가 됐다”고 비꼬거나 이 전 총재에 대해 “현실과 맞지 않는 실질실효환율을 고집했다”고 비판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이 총재가 이런 내용을 모를 리 없다. 몇몇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미 들었을 테고,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전 총재는 강 전 장관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도 굉장한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에요. 강 전 장관이 그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크게 잘못했으니까, 그걸 희석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 전 총재는 강 전 장관이 책을 낸 의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2008년 당시 강 전 장관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환율과 금리 문제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
▼ 2008년 경제위기 때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을 올리자고 했는데 이 총재께서 반대하면서 마찰을 빚었다는데, 왜 그랬던 건가요.
“누가 환율을 올려요? 강 전 장관을 비롯해 다들 환율을 올리고 내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니까요. 실물, 자본 이동, 금리 등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로 환율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거지. 누가 환율을 일부러 올리고 싶어 올리고, 내리고 싶어 내립니까.”
▼ 그럼 그때 환율이 오른 게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건가요.
“근본적으로 (강 전 장관의) 발상 자체가 마음에 안 듭니다. 외환당국은 환율 변동이 너무 심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조정하려고 해선 안돼요. 당시 IMF(국제통화기금)라든지, 외부에다 항상 주장하고 설명해온 게 뭡니까. ‘우리가 의도적으로 환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게 아니고, 외환시장에서 여러 이상현상이 나타날 때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애를 쓴다’고 늘 설명해왔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놓고 왜 딴소리를 해요? 나는 그것 자체가 이상해요.”
이 전 총재는, 환율은 시장의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환율시장론자다. 환율주권론자인 강 전 장관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강 전 장관의 시각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이 전 총재 스스로도 “나는 강 전 장관과 환율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고 말한다. 혹여 정부가 환율을 조정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투다.
“‘외국환평형기금’을 왜 만들었어요? 정부에서 많은 돈을 들여 그걸 만든 것은 (환율조절) 그럴 필요가 있을 때 쓰려고 만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금은 정부가 가진 것인데, 왜 자꾸 한국은행에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