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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심 동북아時代 개막은 시간문제”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

  • 이문기|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중국 중심 동북아時代 개막은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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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 기자]

[김성남 기자]

한국의 중국통(中國通)들에게 ‘최고의 중국통’을 꼽으라면 다수가 그의 이름을 언급한다. 런민(人民)일보는 ‘한국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제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2007년 4월 10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국에 우호방문을 했다. 방문 기간 동안 바쁜 와중에도 한국의 대(對)중국 우호단체 책임자들을 접견했다. 그중 대표 5명의 발언을 들었다. 몇몇 대표가 순서대로 발언한 후 한 점잖고 품격 있어 보이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창한 중국어로 원 총리에게 얼마 전 있었던 한중 양국 정당 교류에 대해 소개하고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에 경의를 표했다. 이분이 바로 한중친선협회 회장 이세기로 한국 정계에서 공인된 ‘최고의 중국통’이다.” 

이세기(81)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분단의 현장(판문점 인근)에서 태어나 이산의 아픔과 전쟁의 쓰라림을 체험했다. 1959~196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4·19 혁명 도화선이 된 고려대 4·18 의거 때 선봉에 섰다. 국토통일원 장관, 체육부 장관을 지냈다. 11·12·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정계를 떠난 후 한중친선협회를 설립해(2002년) 민간외교 활동을 해왔다. ‘통일’과 ‘중국’이 삶을 관통한 키워드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인 중에는 반기문, 이세기를 잘 안다”고 했을 만큼 중국 인사들과 맺은 ‘관시(關係)’가 두텁다. 11월 7일 한중친선협회(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부와 권력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을 모르고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 중심 동북아시대 개막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으로 단지 시간문제라는 것이 여러 관측자의 일치된 의견”이라면서 “중국의 꿈이 실현되는 것은 미국이 중국에 세계 패권을 내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관심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과연 어떤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여기에는 미중관계와 한미동맹의 변화 같은 전략 상황의 변동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면서 “베이징은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북한 변화 및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미·중 공조는 수행 불가능한 임무라고 단언한다”고 덧붙였다.

한중관계 고비마다 역할

▼ 중국 고위층과 폭넓고 지속적인 교분을 유지하는 ‘최고의 중국통’입니다. 중국과의 교류는 언제 시작했습니까.
“중국에 관심을 가진 원인(遠因)은 6·25전쟁 때 고향집에 주둔한 중공군에 대한 특별한 기억과 인상입니다. 대학 시절 중국 정치를 공부했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저자인 김상협(전 고려대 총장) 교수님에게서 중국정치론을 배웠습니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스탈린·마오쩌둥 간의 갈등과 한국전쟁’입니다. 학우이자 친구인 황정캉(黃正綱)과 맺은 우정도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됐습니다. 

중국인들과 관시(關係)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85년 국토통일원 장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난 우쉐첸(吳學謙) 중국 외교부장과의 친교, 우정이 지금껏 이어지는 중국 관계의 기반이 됐습니다. 우쉐첸을 통해 중국 지도자들을 만났으며 중국 외교부와 공산당 대외연락부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1986년부터 2년간 체육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준비를 위해 만난 장바이파(張百發·당시 베이징시 부시장, 아시아경기대회 중국선수단장)와의 인연도 중국 관계에 폭넓은 영향을 줬습니다. 장바이파는 1980년대부터 한국을 드나들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한국통이죠. 한중관계의 발전, 특히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큰 업적을 남긴 친구예요.” 

▼ 1992년 한중수교를 비롯해 한중관계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0년 넘는 중국 관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중수교 및 동북공정 문제에서 얼마간 역할을 한 것입니다. 1994년 방한한 우쉐첸(외교부장을 지낸 후 부총리를 맡았다)이 김종필 민주자유당 당의장 초청 만찬에서 인사말을 통해 ‘나는 이세기 의원을 알고 난 뒤 한중수교를 생각했고, 결심했다”고 비화를 털어놓습니다.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은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에서 1985년 4월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외교 관료들에게 ‘이제 한국과 수교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지침을 줬다고 적습니다. 그때가 내가 우쉐첸과 친교를 시작했을 때예요.”

막후에서 동북공정 갈등 해결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왼쪽부터) 등 중국 유력 인사들과 관시를 맺은 ‘중국통이 인정하는 중국통’이다.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왼쪽부터) 등 중국 유력 인사들과 관시를 맺은 ‘중국통이 인정하는 중국통’이다.

▼ 동북공정 문제를 봉합할 때도 막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압니다.
“2004년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오랜 관시를 기반으로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만들었습니다. 고구려사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불로 번지면서 한중관계가 1992년 수교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NSC 상임위원장 겸임)이 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을 요청했습니다. 중국을 찾아 공산당 대외연락부 고위 인사들과 밤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당시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한중 양국이 ‘5대 구두 양해사항’에 합의하는 계기가 됐죠.”

▼ 사드 갈등도 봉합 국면에 접어드는 양상입니다.
“사드 갈등 탓에 최근 1년간 한중친선협회 차원의 활동도 크게 위축됐으나 서복 학술회의, 안중근 의사 추모제, 각종 간담회 등 매년 해오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4월 12일과 5월 17일 오랜 친구들인 우다웨이(武大偉·전 국무위원)와 다이빙궈(戴秉国·전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나 사드 문제를 주제로 걱정 섞인 대화를 나눈 게 떠오릅니다.” 

▼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인가요. 풍모나 리더십, 스타일이 어땠습니까.
“G2 중 하나인 중국을 통치하는 최고지도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해야 최고지도자에 오르는지는 이제 세계인의 관심사입니다. 그들의 인생역정은 중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오쩌둥은 ‘건국’, 덩샤오핑은 ‘개혁’, 장쩌민은 ‘발전’, 후진타오는 ‘화해’(和諧·화합과 같은 말), 시진핑은 ‘굴기’가 키워드입니다. 

1~3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이 혁명가, 풍운아, 운동권이라면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착실한 모범생이면서 단련된 지도자라고 하겠습니다.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인생역정을 통해 확인되듯 중국에서 최고지도자에 오르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첫째, 자질 측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엘리트여야 합니다. 둘째, 기질과 성향 측면에서 똑똑함보다는 겸손, 섬김, 봉사가 중요합니다. 셋째, 인화와 같은 덕목을 갖춰 인민대중과 눈높이를 맞춰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은 1인1표 민주주의가 아닌 현능주의(meritocracy)로 국가를 운영한다. 시진핑을 예로 들면 지방 말단 현(縣)급의 초라한 자리에서 시작해 시(市)급, 성(省)급, 부(部)급을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이르는 승진의 각 단계마다 지도력, 정치력을 입증할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대범함과 품위 갖춘 시진핑”

“중국에서 고위직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합니다. 중앙이 아닌 지방의 밑바닥에서부터 예비 리더로서 단련을 받고 각 단계마다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리더십과 청렴성, 반듯한 삶의 태도, 국가 및 중앙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승진할 때마다 검증받습니다. 2007년부터 공산당 정치국 위원(24명) 자격 조건으로 2개 이상의 성급 또는 중앙정부 기관의 당 책임자(서기) 경험을 요구합니다. 시진핑은 16번 넘게 중요 직책을 담당했으며 국가주석에 오르기 전 1억5000만 명의 인구를 통치해봤습니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심화되는 자체 모순과 수많은 문제에도 혼란과 분열 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배경에는 철저하게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부가 있습니다.” 

▼ 시진핑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이른바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숙청되면서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친의 복권 이후 27년간 지방(푸젠성, 저장성, 상하이시 등)에서 일했습니다. 시진핑이 후계자로 내정됐을 때 당 원로들의 평가는 ‘사람 됨됨이가 겸허하고 신중하며 고위간부 자제라고 허풍 떠는 나쁜 버릇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진핑이 저장(浙江)성 서기로 일할 때인 2007년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주도 서복공원을 방문했을 때 내가 안내를 맡았어요. 시진핑을 4차례 만나 대화하면서 사람이 따스하고 후덕·평온하며 대범하고 여유로워 중국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진핑이 내놓은 ‘중국의 꿈’(中國夢)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에는 그가 가진 대범함과 품위가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중국의 꿈, 일대일로를 구현해가는 과정도 전략적이고 대범하다고 평가합니다.” 

▼ 극찬이네요.
“중국 발전 과정에서 관건적 시기에 걸출한 인물인 시진핑이 주석이 돼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중국인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고 봐요.” 

▼ 10월 24일 끝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지도이념으로 당장(黨章)에 추가됐습니다. ‘신시대’라는 낱말을 넣은 까닭은 뭘까요. 
“19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집권 2기를 시작한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제시한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신시대’를 추가했습니다.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시진핑은 신시대라는 표현을 36차례나 언급합니다. 요컨대 시진핑이 말한 ‘신시대’는 전면적 샤오캉(小康·편안하고 풍족한 생활) 사회 실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전면 실현, 전체 인민 공동 부유 점진 실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다시 말해 중국의 꿈 실현을 위한 분투,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가 인류에 크게 기여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시진핑은 10월 24일 당대회 폐막연설에서 “13억 명이 넘는 중국 인민은 의기가 드높고 960만㎢에 달하는 대지는 생기로 가득하며 5000여 년을 내려온 찬란한 중화 문명은 끝없는 매력을 과시한다”면서 “신시대의 진입은 중화민족이 일어서서 부유해지고 강대해지는 위대한 비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밝은 미래를 맞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中國夢 실현 가능할까

“시진핑 이름이 포함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에 삽입됐습니다. 명칭에 ‘시진핑’ 세 글자가 포함되고 ‘사상’으로 명기된 것은 신중국 역사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당장에 이름이 명기되면서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도자가 됐습니다. 시진핑의 정치이념을 ‘사상’으로 표현한 것은 덩샤오핑을 넘어 마오쩌둥급의 지도자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 당장에 삽입된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 4개다.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이름이 포함되지 않은 ‘3개 대표론’과 ‘과학발전관’을 당장에 포함시키는 데 그쳤다

▼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國夢)이 실현 가능할까요.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기본적 실현’, 2050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전면적 실현’ 두 단계로 나눠 중국몽을 구현하겠다는 건데요. 성취 가능한 목표인지 의문시됩니다. 중국몽이 실현되면 세계 질서는 어떻게 변할까요.
“상당히 먼 미래의 일인 데다 변수가 많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습니다만 중국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중국인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유능한 지도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보수적인 목표라고 여겨집니다. 중국의 꿈이 실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미국이 중국에 세계 패권을 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로 이동한다는 것이죠. 중국 중심 동북아시대 개막 가능성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으로 단지 시간문제라는 것이 많은 관측자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군사력 등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도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서두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중국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트럼프의 오른팔’로 불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8월 16일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제전쟁 중이며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라가 향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5년 미중 경제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하면 큰일이 난다”고 주장했다.

“균형과 주도의 원칙 지켜야”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중국은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북한 변화 및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미·중 공조는 수행 불가능한 임무라고 단언한다”고 전했다. [김성남 기자]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중국은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북한 변화 및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미·중 공조는 수행 불가능한 임무라고 단언한다”고 전했다. [김성남 기자]

▼ 사드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중관계가 복원될 기미를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연내 방중이 확정됐고 평창 동계올림픽 때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추진됩니다. 사드 이전 한중관계와 사드 이후 한중관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0월 31일 한중 양국이 우호적 교류협력 관계를 복원키로 했습니다. 비가 내린 후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사드 문제를 계기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됐으므로 조속히 정상적 관계로 복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 취임 후 첫 단독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베이징은 집권 2기 출범 후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성의·호혜·포용) 원칙에 따라 주변국과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려고 합니다. 그 첫발을 사드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것에서 시작한 것은 중국이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균형외교’에 비판적인 이들은 친중원미(親中遠美·중국을 가까이하고 미국을 멀리함)를 우려한다. 정권 핵심 86세대의 반미친중(反美親中) 정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은 11월 7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더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해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중국도 당연히 포함되고 아세안·러시아·EU(유럽연합)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다변화해 더욱 균형 있는 외교를 해나가겠다는 뜻이다.” 

▼ 한중관계 발전은 한미관계 변화와 밀접하게 연동됩니다. 외교·안보 전략에서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어떻게 조화해야 할까요.
“안보를 축으로 한 한미동맹 관계와 경제를 중심으로 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모두 중요합니다. 문제는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미중관계가 협력보다 경쟁·대립·패권경쟁으로 전이되면서 어려운 선택이 불가피한 국면으로 가는 점입니다. 동북아에서 신(新)냉전 기운이 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을 중심에 놓은 진영 논리도 재작동합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 입지가 좁아지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합니다. 

약자인 한국이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에서 외교·안보 전략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사할 것인지는 사드 문제에서 본 바와 같이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이익과 한미동맹의 이익보다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균형과 주도라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길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한반도 현 상황은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 국가안보가 위기에 직면한 만큼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중시하는 가운데 한중관계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해요. 한중관계는 역사적 요인 탓에 독특한 상호인식을 가졌어요.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인식 틀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원 보호하는 성곽”

▼ 중국은 역사적 맥락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합니까.
“중국의 대(對)한반도 역사 인식은 중국 정부가 추진해온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의 지방 소수민족 정권 역사로 편입했지요. 중국인들은 전통 시대부터 대동강~원산 이북 지역을 역사와 연고가 있는 땅으로 인식합니다.” 

▼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전쟁 등 중국이 한반도에 군사를 보내 개입했을 때마다 대동강 일대를 확보하면 이쯤에서 됐다는 식으로 휴전 회담에 나섰습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현재 북한 지역을 어떤 경우, 어떤 형식이든 관여해야 할 땅이라고 봅니다. 적대 세력을 저지할 완충지대로 여기는 거죠. 중국인들은 또 역사적으로 북한 지역과 중국의 동북 지역을 심장부인 베이징(중원)을 보호하는 ‘울타리’ 또는 ‘성곽’으로 간주합니다. 북한 지역에 대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지정학적 인식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역사관의 결정체예요. 중국의 이 같은 인식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명(明)의 멸망, 2000년 중화 질서 종식을 가져온 청일전쟁은 중국인에게 한반도의 중요성과 치명성을 각인했습니다. 동북의 현관이자 요동의 울타리인 조선과 북한의 안전을 자신들의 안전과 동일시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반도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6·25전쟁 때 보가위국(保家衛國)을 위해 한반도에서 미국과 싸운 것도 이러한 역사 인식에 따른 것이고요.” 

▼ 중국에 북한은 어떤 존재입니까.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선택할까요.
“중국에서조차 북·중동맹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옴에도 한미상호보호조약이 존재하는 한 북·중우호조약을 유지한다는 태도입니다.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데도 중국이 동맹조약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 것은 자국의 핵심 안보 이익인 북한을 절대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북·중관계도 경색된 모습입니다. 
“2012년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달라진 중국의 대북 인식과 태도에 근거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확산됐으나 베이징의 대북정책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대북 영향력 행사에 나서지 않고 자의적 사고와 희망이 정책 혼선을 야기해 문제를 증폭시키는 형국입니다. 중국 처지에서 가장 바람직한 한반도 상황은 한반도 전체가 베이징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것입니다.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적대국(미국)이 한반도에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고요.”

북·중관계 특수성

▼ 북·중관계는 여전히 특수하다?
“베이징은 한중관계 발전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등으로 대(對)한반도 영향력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한 우월권이나 영향력 유지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우위를 고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인식해요. 

중국의 우월적 대북 영향력은 베이징이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이롭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한국의 대북 영향력이 거의 없는 것은 북한과 관계가 단절됐기 때문입니다. 북·중관계도 똑같습니다. 상호 소통·협력이 단절되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상실됩니다. 베이징이 평양을 중시하고 북한에 대한 지지·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북·중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피하는 것도 같은 이유고요. 

최근 북·중관계가 악화했는데도 시진핑은 김정은의 19차 당대회 축전에 답전을 보내면서 ‘조선 인민이 김정은 위원장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사회주의 건설 위업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거둘 것을 축원한다’고 썼습니다. 지금도 북·중관계는 특수성이 작동되고 있어요.”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무엇입니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책적 태도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지정학적·전략적 이해와 직결돼 있음에도 베이징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일관되게 ‘한반도가 장래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견해를 표명해왔습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한마디로 ‘한반도 통일은 지지하되, 그 과정과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반도 통일은 남북 당사자 간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점진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통일의 결과로서 통일한국은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미·중 공조는 Mission Impossible”

중국은 작금의 동북아 전략 상황이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중국의 평화·발전은 물론 아시아의 안정·발전과 굴기에도 유리하다고 봅니다. 다만, 중국은 북한이 급변해 붕괴할 경우 과거 베트남처럼 자국에 적대적인, 적어도 친중적이 아닌, 다루기 힘든 통일한국을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둘 가능성을 우려해 일정한 원칙과 조건을 제시하는 게 ‘장래’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렇듯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유보적이고 소극적인 이유는 통일 이후 한국의 비전이 모호한 데서 오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 현재 국면에서 중국이 한국 주도 통일을 지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겠습니다.
“베이징은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이 중국 쪽에 유리해지는 변화가 있을 때까지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穩定压倒一切)’는 원칙을 견지하며 현상유지를 선호할 것입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불신하는 중국의 관심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보다 장래 한반도 통일 과정과 결과가 자국의 국익, 다시 말해 전략적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될지에 집중됩니다. 다분히 조건부이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과연 어떤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여기에는 미중관계와 한미동맹의 변화 같은 전략 상황의 변동이 중요한 전제조건입니다. 중국이 제시하는 원칙적 조건인 ‘장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의미는 미국의 힘이 우세한 지금은 통일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북한 변화 및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미·중 공조는 수행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고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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