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명사에세이

세상의 가장자리로 향하다!

  •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수석위원·의학박사

    입력2019-01-09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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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새해가 밝아온다. 간지가 기해(己亥)이니 돼지의 해다. 언제부터인가 그해의 띠가 무슨 색이어서 대길(大吉)하다고 말한다. 2007년 정해(丁亥)년에는 황금돼지 띠라고 해서 출산이 많았다. 이해에 신생아는 49만7000명으로 최저 출산을 기록한 2005년에 비해 5만9000명이 증가했다. 그런데 사실은 2007년은 붉은 돼지의 해고, 2019년이야말로 진짜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 필자는 1954년 갑오(甲午)년에 태어났다. 갑오생은 백말 띠라 드세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지금 와서는 청말 띠라고 한다.

    2019년 갑오(甲午)생들이 만 나이로 예순다섯 살이 된다. 대학에서 일하는 내 동기들이 정년을 맞는 해다. 필자는 계약직이기는 하지만 정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직장을 떠난 뒤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일의 큰 줄거리를 챙겨 후임에게 전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필자 역시 지금껏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 진부한 느낌을 준다면 ‘세상의 중심을 향하는 삶’이라고 해보자. 다가올 일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한 ‘느헤미아의 리더십’을 설명한 한홍 목사의 ‘세상의 중심에 서다’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세상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청년기에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향하고, 장년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면 가장자리로 옮겨가게 된다.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지만,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에 따라 세상의 크기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중심에서 물러나는 일 또한 어렵다.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 나오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은거한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는 경구에서 나온 진퇴현은(進退見隱)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의 중심으로 향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은 언급으로 보이는데 나이가 들어 중심에서 물러날 때도 신경 쓸 일이 많다. 무엇보다 앞으로 중심에 설 사람에게 자리를 잘 물려주는 게 중요하다.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물러날 때를 놓쳐 화를 입는 경우도 많다. 초(楚)나라 사람 범려(范)와 그의 벗 문종(文種)을 대비해 경종으로 삼아보자. 두 사람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의 유래가 된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패업(業)을 이뤘다. 패업을 이룬 후 범려는 스스로 물러나 화를 면한 반면, 토사구팽의 예를 들어 물러나라는 범려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문종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오나라에서 탈출한 범려는 제나라, 조나라, 노나라를 거치면서 장사 수완을 발휘해 큰돈을 모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돈마저 친지들에게 나눠주고 여생을 편하게 살았다. 물러날 때와 나눔의 철학을 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려도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나면서 하던 일을 누군가에게 계승시키지는 못했다. 물론 일가를 챙겨 월나라를 떠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범려와 문종처럼 한 시절을 풍미한 영웅쯤은 돼야 중심에서 물러나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다. 중심에서 물러나 가장자리로 갈 때 누구에게나 큰 결심이 필요하다. 대학 연극동아리 시절 공연한 뮤지컬 ‘판타스틱스’에서 조역으로 나오는 헨리가 머티머에게 한 대사가 생각난다. “머티머, 엑스트라란 없는 거야 다만 사라져갈 뿐이지.” 그저 헨리처럼 자조 섞인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냥 물러나는 것이 섭섭하다면 말이다.

    어느 곳, 어느 시기에나 세상의 중심에서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중심에 섰던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자신이 맡아 하던 일을 잘 넘겨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직장에서 일한 필자의 경우 하던 일을 후임자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이직이 대부분 갑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직장에서만큼은 잘 해보려고 한다.


    ‘보다 먼 세상으로(Plvs Vltra)’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명멸한 생물 가운데 인류가 최우세종으로 살아남은 것은 개체가 가진 경험들이 효과적으로 후대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구전으로 넘겨주던 삶의 지혜가 문자의 발명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이어졌으며, 나아가 인쇄술을 발명해 대량으로 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디지털화해 동시에 다수에게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고대인은 지구가 편평(扁平)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의 아버지라는, 기원전 7세기 말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조차 지구가 편평한 원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기원전 6세기 중반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가졌다고 믿었다. 이 무렵부터 지구가 공 모양으로 생겼음을 과학적 관측으로는 알았던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모험에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대 페니키아나 그리스 등의 해양민족은 배를 몰아 바다로 향했고, 지중해 끝까지 나아가 식민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그들도 지중해 입구의 지브롤터 해협 밖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해협에 서 있다는 헤라클레스의 문을 상징화한 스페인의 국장(國章)에도 ‘여기는 세계의 끝이다(Non Plvs Vltra)’라고 적혀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 국장의 문구는 ‘보다 먼 세상으로(Plvs Vltra)’로 바뀌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3년에 걸친 항해 끝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 1522년이 돼서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간의 몸으로 체험했다

    고금을 통해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국어에서 가장자리는 ‘어떤 사물의 바깥쪽 경계에 가까운 부분’이라고 비교적 간단하게 정의된다. 하지만 벼랑이라는 의미의 영어 ‘brink’가 들어가는 숙어 ‘on the brink’에는 ‘절벽이나 높은 지대의 가장자리’라는 의미와 함께 ‘새롭거나 다른 상황이 벌어지려는 시점’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쇠약이 일어났다’ 같은 부정적 의미도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일이나 경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미국 미네소타주 동북쪽에 바운더리 워터스(Boundary Waters)라는 곳이 있다. 캐나다 국경까지 4000㎢에 달하는 야생보호구역이다. 1만 개의 호수가 있는 미네소타에서도 특히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무수히 흩어져 있다. 바운더리 워터스 서쪽 끝 보이저 국립공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실제로 만나기 힘들다는 대머리독수리를 목격하는 등 때 묻지 않은 야생을 즐겼다. 미국 콜로라도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절경을 굽어보려면 협곡의 가장자리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이렇듯 가장자리는 두려운 곳이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휴식이라는 개념이 뒤섞여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에서 가장자리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젊어서 세상의 중심으로 향하기 위해 도전한 것처럼, 기해년 새해에는 세상의 가장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려 한다.


    양기화
    ● 1954년 경기 화성 출생
    ● 1979년 가톨릭대 졸업
    ● 을지대 의대 병리학 교수
    ● 식품의약품안전처 독성연구부 부장
    ● 現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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