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봉달호 편의점 칼럼

‘배신’하면 ‘보상’받는, 대한민국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입력2019-02-07 0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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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아타면 돈 줄게”… 치솟는 편의점 ‘이적료’

    • 돈이면 다 되는 한국, 시스템 만드는 일본

    • 백년노포(老鋪)는커녕 ‘5년 생존율’ 따지는 현실

    • 압축의 역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서울 도심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편의점. [뉴시스]

    서울 도심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편의점. [뉴시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고,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복수(複數) 점포를 운영하는 이가 편의점 점주의 3분의 1가량 된다. 편의점을 두 개 이상 동시에 운영하는 사람 말이다. 농담 반 진담 반 말하건대 앞으로 편의점에서 ‘기껏 편의점이나 하는 주제에…’라면서 점주를 무시하지 마시라. 상당수 점주가 그런 다점포 경영자다. 네댓 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적잖다.

    복수 점포 경영자가 원래 많았던 것은 아니다. 2010년경만 해도 복수 점포 경영자는 대략 10~15% 수준이었다. 그런데 수년 사이 “편의점 하나를 더 차리겠다”는 점주가 급격히 늘었다. 편의점 사업 환경이 좋아 그런 게 결코 아니다. 프랜차이즈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포당 매출이 줄어드니 가맹점주 사이에 “차라리 여러 점포를 개설해 이윤을 벌충하자”는 일종의 박리다매, 혹은 돌려 막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위험한 도박이다.

    또 하나 숨은 진실이 있다. 프랜차이즈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적료’가 치솟기 시작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보통 본사와 가맹점주가 5년 기한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 기간을 다 채우고 다른 브랜드로 간판을 바꾸면 이른바 ‘일시 장려금’이라고 해 수백~수천만 원의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편의점 업계에 그런 관행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휴대전화 통신사 약정 기간이 끝나고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면 적잖은 보상이 따르는 것과 비슷하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같은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해도 물론 보상이 뒤따른다. 그걸 노리고 오직 ‘5년 만기’만 바라보며 복수 점포를 개설하는 바람이 최근 4~5년 사이 편의점 업계에 유행했다.


    노예계약 기간

    편의점 점주 사이에서는 기본 계약기간 5년을 자조 섞인 표현으로 ‘노예계약 기간’이라고 부른다.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상당한 위약금이 발생하니, 좋든 싫든 일단 그 기간은 채워야 한다. “자영업 가운데 편의점 생존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다”는 보도가 언론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사실은 위약금 때문에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점포를 유지하는 이유가 크다. 물론 편의점은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업종이 아니기에 장사가 안 되면 가족을 동원해서라도 버틸 수 있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도 비교적 높은 생존율의 비결이다.

    그렇다면 편의점이라는 업태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일본의 프랜차이즈 계약 기간은 얼마나 될까. 보통 15년이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 편의점 점주에게 알려주면 깜짝 놀란다. 5년도 ‘노예’라고 절레절레 고개 젓는데 15년이면 그야말로 ‘종신노예’의 삶 아닌가. 일본 편의점 점주에게 한국 편의점 기본 계약 기간을 알려주면 역시 놀란다. 그렇게 짧게 계약하면 불안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5년 계약기간을 마치고 다른 브랜드로 갈아탈 때 이적료를 받는다고 소개하면 “정말 놀라운 제도”라면서 흥미롭게 생각한다.




    한번 로손은 영원한 로손

    일본 편의점 로손(왼쪽)과 점포경영기준 체크리스트.

    일본 편의점 로손(왼쪽)과 점포경영기준 체크리스트.

    일본 편의점 점주들은 한번 세븐일레븐을 선택하면 영원한 세븐일레븐, 한번 로손을 택하면 영원한 로손이라 여긴다. 이렇게 소속감을 강하게 갖고 있다. 다른 브랜드로 바꾸는 일은 거의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서로 다른 경영관, 사업 풍토,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의 편의점은 개설 과정부터 다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국 편의점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 점주가 될 수 있는 구조다. 편의점 점주 적성검사라는 게 있긴 한데,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이코패스나 사회부적응자 정도만 가려내는 수준이다. 반면 일본은 3단계에 걸친 가맹 희망자 면접을 실시한다. 희망자는 자기가 편의점을 경영하려는 이유를 본사 측에 설명해야 하고, 본사는 그 사람의 경력과 가족관계, 재산 상태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신입사원 채용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다. 빚이 많거나 오로지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 나이가 지나치게 많은 사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종업원 관리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은 면접에서 탈락한다. 대체로 2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편의점 점주가 될 수 있다.

    가맹 구조도 확연히 다르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점주가 점포를 임차하고 편의점 본사를 불러오는 계약 유형을 순수가맹(혹은 완전가맹), 본사가 점포를 임차하고 가맹점주를 모집하는 유형을 위탁가맹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 순수가맹 비율이 60~70%다. 일본은 정반대로 위탁가맹이 70~80%를 차지한다. 본사가 점포와 시설을 완벽히 구비해놓고 가맹점주는 상품보증금만 납부한 채 그냥 몸만 들어가 경영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한국 편의점 본사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일본 편의점 업계와 비교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는데, 한국과 일본의 편의점 프랜차이즈는 이렇듯 기본 골격 자체가 다르다. 본사가 가맹점을 대하는 태도, 가맹점주가 본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애당초 여기서 비롯된다.

    복수 점포를 개설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은 본사에 돈을 내면 누구든 복수 점포 점주가 될 수 있다. 3년 새 점포를 여섯 개까지 늘린 점주도 주위에서 목격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가맹점주가 법인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단 3년차까지는 복수 점포 개설 자체가 안 된다. 3년 정도 점포 운영 경력이 쌓여야 복수 점포 개설을 허용해주는데, 그것도 엄격한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필자가 일본의 한 편의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벽면에 커다란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무언가 하고 보니 ‘점포경영기준 체크리스트’다. 총 50개 항목으로 구성됐는데, 항목당 2점으로, 매월 70점 이상을 1년간 꾸준히 유지해야 복수점포 가맹 자격을 얻는다. 단 1개월이라도 70점 이하로 떨어져선 안 되고, 다른 항목은 모두 만점을 받았더라도 특정 항목에서 0점이 있으면 안 된다. 평가 항목엔 영업시간, 위생과 청결, 친절, 진열 상태는 물론이고 종업원 관리, 법규 준수까지 포함된다. 직장인이 승진을 위해 인사고과에 신경 쓰듯, 일본의 편의점 점주는 끊임없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시스템을 만드는 나라

    일본은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에게 같은 상호의 점포를 열게 해주는 노렌와케 전통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일본은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에게 같은 상호의 점포를 열게 해주는 노렌와케 전통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한국이든 일본이든 가맹계약서를 쓰고 나면 1주일 정도 예비점주 집단 교육을 받는 것은 똑같다. 본사 교육시설에 들어가 점포 운영에 대한 종합적인 교육을 받는다. 이때 한국은 점주 한 명이 교육 대상자지만(그마저도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수 있다), 일본은 점포당 점주와 조력자 두 명이 입교해 교육받아야 한다. 일본은 가맹계약서를 쓸 때부터 이 ‘조력자’를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 조력자가 없으면 가맹계약 자체를 해주지 않는다. 계약 당사자가 아프거나 변고가 생겼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해줄 조력자 말이다. 조력자는 반드시 가족 가운데 한 명이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대체로 부부가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거나, 배우자가 다른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조력자로서 예비점주 교육을 받아보았기 때문에 편의점 운영의 기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한국의 편의점은 거의 대부분 점주가 상품을 발주한다. 점장을 고용해 발주를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점장이 있더라도 발주는 점주의 고유한 ‘권한’ 정도로 여긴다. 알바가 발주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알바 스스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할뿐더러, 점주도 알바를 믿지 않으니 발주를 맡길 생각조차 않는다. 그런데 일본 편의점의 경영 체크리스트에는 상당히 특이한 부분이 있다. ‘종업원이 발주를 할 수 있는가?’하는 항목이다. 종업원 가운데 발주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종업원들에게 발주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점주만 알고 있으면 점수가 차감된다. 왜 이런 제도가 생겨났을까. 점주에게 변고가 생기고 조력자마저 문제가 생기는 비상상태가 발생하더라도 점포가 자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놓은 것이다.

    일본에서 복수 점포를 개설하려면 점장을 선임해야 한다. 점장도 아무나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년 이상 편의점에 근무하면서 각종 경영 기법을 전수받은 사람만 자격을 갖는데, 대체로 점주 밑에서 알바로 시작해 편의점 경영에 대한 꿈을 키우고 점장이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복수 점포 개설이 확정되면 점장 또한 본사에 들어가 일주일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수년간 점장 경력을 쌓은 청년들은 점주에게 허락받고 독립해 어엿한 편의점 점주가 되기도 한다. 가맹 희망자 면접에서 점장 출신은 당연히 우대받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 가게에서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일한 점원에게 같은 상호의 점포를 열도록 허가해주는 일본의 노렌와케(暖簾分け)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에서 편의점 복수 점포를 개설하는 일이란 그야말로 ‘산 넘고 강을 건너는’ 과정이다. 복수 점포 개설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편의점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복수 점포 점주를 다른 점주들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다름일까, 틀림일까

    한국에는 두 개의 일본이 존재한다. ‘역사로서 일본’과 ‘경제·문화로서 일본’이다. 이 두 일본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래서 경제와 문화로서 일본을 칭찬하는 일조차 ‘역사로서 일본’에 동조하는 행위로 여기는 일각의 여론 때문에 약간 조심스럽다. 우리나라의 특정한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일본을 그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렇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일본 편의점 운영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 알수록, 한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일종의 자괴감마저 느꼈다. ‘우리는 도대체 뭔가’ 하는 허탈한 심정! 일본은 프랜차이즈의 본질을 살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견실히 다져나가는 방향으로 편의점 업계가 진화해온 반면, 한국은 가치와 철학은 덮어둔 채 무작정 가맹점 숫자를 늘리는 것에만 급급해왔다.

    범LG 계열의 GS25와 범삼성 계열의 CU가 매월 자신들이 업계 1위라며 가맹점 숫자를 발표하지만, 그런 허무한 1, 2위 다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순수가맹이 많나, 위탁가맹이 많나 하는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나 소유관, 직업관의 차이가 빚어낸 ‘다름’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편의점 복수 점포 개설 자격의 차이는 우리 내면의 문제를 부끄럽게 드러내는 ‘틀림’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편의점 업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일상에 ‘속도’를 강조해왔다. 이런 성향은 정부와 기업 활동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이뤄놓은 것들을 수십 년 만에 압축해 성취하며 오늘날 이만큼 먹고살 만해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 놓친 것, 잃은 것은 없을까.


    골목식당의 위생상태

    시선을 살짝 돌려보자.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 방송에 소개된 시장과 식당은 얼마간 북새통을 이룬다. 방송 내용에 대한 어느 칼럼니스트의 비판까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갑론을박 화제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골목 외진 곳에 있는 작은 식당’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영업 시장의 어두운 일면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 부지런히 노력하며 작은 가게를 알뜰하게 가꿔나가는 이웃들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위생에 소홀한 식당이 발견되고, 주먹구구식으로 식재료를 보관하고 유통기한을 허술하게 관리하다 지적을 받는 식당도 골목을 옮겨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TV 출연이 예고되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을 식당들이 그 정도인데, 우리 주위의 숱한 식당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방송을 볼 때마다 잠깐 아뜩하다.

    그뿐 아니다. 준비 없이 식당을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읽힌다. 기본적인 조리법조차 정리하지 않고, 도저히 식당을 할 만한 자리, 혹은 그러한 메뉴의 식당을 열 만한 자리가 아닌데 도대체 뭘 믿고 저기에 자리를 잡았을까 싶은 식당이 매회 수두룩하다. 장사가 안 되면 모든 일에 의욕을 잃는 심정이야 아프게 이해되지만, 외식업에 대한 의지와 열정 자체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되는 출연자도 간혹 눈에 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배후가 두텁지 않아 많은 사람이 하릴없이 영세 자영업 시장으로 내몰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준비와 양식조차 갖추지 않고 덜컥 자영업 전선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이 아직 주위에 적잖다. 제작진은 유쾌한 편집으로 TV 앞 시청자를 휘어잡고 있으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카메라 앵글은 안타까운 생존의 현장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골목식당’을 볼 때마다 사람들의 대범함에 놀란다.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도전정신이 높다고 해야 할지, 우리 한국인은 새로운 업종에 뛰어드는 일을 상당히 자신만만하게 대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 업종에 뛰어들었다가 망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지, 일단 덤벼들고 본다. 그러다 몇 년이 아니라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한 채 망하고, 다시 맡은 새로운 사람이 망하고, 뒤를 잇는 사람도 망하고, 우리네 자영업 시장은 ‘대를 이어’ 가게를 꾸려가는 백년 노포(老鋪)는 고사하고 ‘5년 생존율’을 운운하는 수준에 여전히 머문다.

    빠름과 대범함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남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는 일에도 우리는 뛰어들었고 거기서 기적을 만들었다. 절차와 내용, 품질을 무시하는 행위를 우리는 한때(혹은 지금도) ‘효율’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를 두 눈으로 보았다. 경주 리조트와 세월호, 구의역에서 생때같은 아들딸을 먼저 보냈고, 최근에는 하도급업체 노동자 김용균을 잃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그저 ‘거대한 악’의 문제인 것인가. 내 맘속에 도사린 적폐는 없는 것인가.

    필자도 어쩌다 보니 자영업을 하게 됐고, 장사꾼은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업(業)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도 없이 오로지 이익에만 눈을 번뜩이는 사람을 숱하게 만난다. 민주와 인권에 대한 의식은 전에 없이 성장하고 있으나 배금주의는 여전하다. 정의와 평등에 대한 저들의 갈망은 소유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뒤틀린 욕망이 아닐까, 배금주의의 또 다른 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지금 ‘대박’을 치는 매장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고 뜨거운 담금질을 견뎌내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가벼이 넘긴다. 적잖은 사람들이 계산기로 두드려본 매출과 이익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른바 ‘권리금 장사꾼’이라고 해, 특정 점포를 대박 매장으로 단기간에 세팅해놓고 권리금을 받고 업종을 옮겨가는 것이다. 이런 자영업자의 존재는 ‘대박’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환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떤 업종이든 잘되는 점포가 있으면 근방에 경쟁 점포를 차려 매출을 나눠 갖는 간단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가 많다. 그러한 접근법에 일말의 도덕적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이 같은 방식으로 편의점 4만 개 시대를 만들어냈다. “시장에 도덕이 어디 있느냐, 시장에는 경쟁이 있을 뿐”이라는 논리는 그러한 불감증을 더욱 부추긴다. ‘상도덕’을 이야기하면 구시대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이 같은 태도가 자본주의의 내적 성장을 더욱 더디게 만든다.

    빠른 경제성장 과정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치·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집념을 강하게 단련해왔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당파적 경향, 한번 좌표를 정하면 외골수로 치받는 경향이 제법 강하다. 배려와 관용, 양보를 이야기하면 ‘지는 것’이라고 여기거나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면서 경계한다. ‘모 아니면 도’의 풍토 속에 소소한 행복이나 안정된 생활보다 대박과 요행을 추구하는 경향이 여기저기 도드라진다.

    국가교육회의 의장으로 교육개혁 작업을 이끌고 있는 김진경이 쓴 에세이 가운데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이 문장에 한국 현대사가 담겨 있다. 우리는 30년 만에 300년의 번영을 따라잡았다. 지금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300년을 준비하는, 사회 전반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편의점 카운터 한 귀퉁이에 앉아 이 글을 쓰며 사뭇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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