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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 편의점 칼럼

문재인을 위한 변론… “조국이든 뭐든 좋다, 경제만 살려놔라”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문재인을 위한 변론… “조국이든 뭐든 좋다, 경제만 살려놔라”

  • 동갑내기 편의점 점주에게 조국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뜬금없이 물으니 친구가 하는 말, “야, 조국이 됐든 조국 할애비가 됐든 경제나 살려놨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 조국이 아니라 조국 할아버지라도 좋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다만 경제를 살려놓기를. 가슴 절절히 부탁한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GettyImages]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GettyImages]

친일파 중엔 왜 유독 문인이나 학자가 많을까? 마음이 여려서?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친일의 적극성으로 따진다면야 당시 사법기관에 있거나 시골 면장 정도 했던 사람이 더 ‘앞잡이’ 노릇을 했을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음으로 몰고 간 친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직위에 있었다는 기록 정도는 있겠지만, 정말 천인공노할 악질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증언자가 사라지면 친일도 사라진다. 하지만 문인과 학자는 자신이 쓴 ‘글’로 두고두고 흔적을 남긴다. 지식인이 짊어진 천형이다. 

조적조.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고 한다. 법무부 장관 조국을 비판하는 방법은 쉽다, 참 쉽다. 특별한 논리를 개발할 필요도 없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살펴본 후 그가 언젠가 썼던 글을 그대로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2009년 트위터에 가입한 이래 10년간 쓴 글만 1만5000여 건이라고 한다. 하루 평균 4건, 참 많은 글을 써왔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글 빚’ ‘말 빚’을 혹독히 갚고 있다.


말로 큰 자, 말로 망하다

만약 조국이 이렇게 많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 이 정도로 모질게 비난받을까? 이런저런 의혹 제기는 있었겠지만, 다른 많은 장관급 후보자가 그랬던 것처럼, 먼 산 바라보며 임명을 강행하면 됐을 일이다. 하지만 조국은 참 많은 ‘흔적’을 남겼다. 평생 평론가로 살아오며 영화계에 온갖 독설 쏟아 붓던 사람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모양이랄까(그것도 ‘망작’을 들고!). ‘너는 얼마나 잘 만드나 보자’ 하면서 영화계 사람들이 단단히 벼르던 참에, 이자까지 합쳐 톡톡히 그 빚을 치르고 있다. 자신의 논리로 자신이 비판받는 이른바 ‘미러링’의 결정판을 보여줬다. 

반대로 이런 생각이 든다. 조국이 그렇게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오늘 그는 그 자리에 있을 수나 있을까? 조국과 관련한 항간의 오해가 몇 가지 있다. 열렬한 운동권이라는 오해가 그중 하나다. 물론 조국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실형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한 활동인즉 기관지 제작과 판매에 관여한 정도다. 운동권 일원으로서 조국은 ‘조직 생활’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이념 학습이나 토론 같은 것이라도 제대로 한번 해본 적 있을까? 언젠가 조국과 대학 동기인 선배에게 그의 학창 시절에 대해 물어본 적 있는데 “그 친구는 워낙 잘생겼어야 말이지” 라면서 껄껄 웃던 것이 기억난다. 농담 섞인 말이겠지만, 너무 잘생겨서 어딜 가나 눈에 띄었기 때문에 지하 서클에서 받아주기 부담스러웠다나. 법대 편집부에서 교지와 앨범 만든 것이 대학 시절 운동권(?) 경력의 전부다. 

참여연대 사법센터장을 한 적 있는데 그거야 상근직도 아니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서도 시국선언문에 이름 올리는 정도였고, 정치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런 걸 ‘조직 활동’이라 말하기 어렵다. 정치 경력도 이번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한 것이 전부인데, 2년 남짓 민정수석 기간에도 계속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만 화제를 뿌렸지 그가 사법개혁을 위해 도대체 뭘 했는지, 정치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적이나 성과를 남겼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요컨대 그는 다른 누구와 의견을 조율하고, 조직의 세력 구도를 읽고, 사람 사이 관계와 배경을 파악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체의 활동에 참여한 적 없고, 그런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다.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노력하고, 위기를 극복하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상적 재검토와 각성의 과정을 거쳐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책에서만’ 혹은 ‘이론으로만’ 세상을 배운 사람이랄까(그것도 홀로). 그런 그를 정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오롯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정도였고, 그것이 지금껏 사람들이 조국에게 갖는 허상의 전부다. 오로지 ‘말로 큰’ 그는 결국 ‘말로 망하는’ 중이고, 두고두고 그 말은 빚으로 회자될 것이다.


정치 감각 하나는 뛰어난 386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고려대생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딸 부정입학 진상규명촉구 집회.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고려대생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딸 부정입학 진상규명촉구 집회.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내친김에 이야기하자면 정치권 386에 대해서도 세상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이 운동권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핵심’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정의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이른바 ‘386 선두주자’로 꼽히는 정치인 가운데 정말 운동권에서 핵심다운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전대협 의장이나 총학생회 회장 같은 사람이 핵심 아니면 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건 1980~90년대 운동권의 내막을 잘 몰라서 하는 말씀이다. 

사실 ‘핵심’에게는 그런 직위를 맡기지 않았다. 의장이나 회장이 되면 곧바로 수배되고 구속될 게 뻔한데 어떻게 그런 자리를 핵심에게 맡기나. 핵심은 지하조직에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말 잘 듣는 사람들, 혹은 말 잘하는 사람들, 쇼맨십이 있는 사람들을 공개 간부로 내세웠다. 구속됐다가 석방된 후 그들은 대체로 갈 곳이 없었고, 결국 정치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 이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386의 대명사처럼 언론에 비치고 있을 따름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세대 갈등으로도 번졌다. 2030세대(특히 1990년대생)는 조국을 비롯한 386의 ‘내로남불’에 침을 뱉고, 이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들(주로 4050세대)은 그에 맞서 ‘조국 힘내세요’를 검색어 1위로 올리기 위해 기를 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어졌다. 내가 만난 2030세대는 이번 기회에 386의 이중성을 보았다며, 그들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정말 소름 돋는다고 질겁한다. 게다가 상황이 그렇게 치닫는 데도 끝끝내 버티고, 특히 이른바 ‘양심적 진보 인사’라 여겼던 사람들이 그를 옹호하며 ‘쉴드’쳐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래요?” 하고 묻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적대적 당파성 때문이다. 386은 세상 모든 것을 선과 악, 흑과 백의 싸움으로 본다. 물론 그들도 스스로 흠결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적들이 더하면 더했는데 왜 우리만 갖고 그래’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2030이 갖는 정의감이 ‘모든 잣대를 공평하게’(일반적 정의감)라면, 4050이 갖는 정의감은 ‘원수를 무찌르자’(상대적 정의감)에 가깝다. 원수를 처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 있겠나. 그런 건 성인군자에게나 줘버려라. 루쉰(魯迅)의 말대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386의 일반적 사고방식이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적 사고다. 싸움에 앞서 적군과 아군을 명확히 구별하고, 적은 포기하면서 우리 편은 확실히 쓸어 담는 전술을 구사한다. 386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386이 그냥 딱지치기해서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정치 감각 하나는 대단히 뛰어나다. 세상을 둘로 쪼개면 그중 하나는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으며 자랐다. 

거기에 세대적 동질감이 결합한다. “모든 386이 운동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일반화될 수 있어요?”라고 묻는 2030들이 있는데,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면 80년대 학번은 절반 이상 운동권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90년대 초중반 학번도 10~20% 정도는 운동권의 세례를 받았으며 그들은 학교에서 대체로 ‘여론주도층’이었다. 운동권이 아니었던 사람도 운동권적 사고방식에는 적잖은 영향을 받았고, 특히 80년대 학번의 경우에는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마저 갖고 살았다. 대학 다닐 때는 그리 열렬한 운동권이 아니었는데 요즘 집회현장에 빈번히 참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직까지 그런 부채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마음의 빚을 갚으려’ 집회에 나간다는 소회의 말을 종종 듣는다. 개성 강한 90년대생들은 이런 끈끈한 연대의식을 쉬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1980년대에 시간이 멈춘 사람들

1987년 6월 1일 서울에서 열린 호헌철폐국민대회. [동아DB]

1987년 6월 1일 서울에서 열린 호헌철폐국민대회. [동아DB]

한국의 386세대만큼 한 시대를 살았다는 동질감이나 자부심이 물밑에 대단한 세대도 드물다.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자신들의 세대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무엇으로까지 여긴다. 늘 비판만 해오던 그들은 자신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오늘의 현실이 조금 어리둥절할 것이며, 기득권을 비난하며 성장한 세대이다 보니 어느새 자신들이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됐음을 ― 심지어 ‘꼰대’가 됐음을 ―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비판이 싫은 정도가 아니라 비판당하는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겉으로는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찝찝해하면서 그 비판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이런 당파주의, 계급주의, 일원주의, 상대주의, 현실주의, 세대주의의 일그러진 총합이 작금 벌어진 ‘조국 병장 구하기’ 사태를 바라보는 이념적 해석법이다. 그 시절 의장이나 회장 감투 쓰고 잠시 대장 역할 했던 사람들, 학계에 머물며 머릿속에 수십 번은 혁명 조국을 건설했던 관념 운동권, 운동권 언저리에 있다가 나중에 돈 벌어 ‘정치나 한번 해볼까’ 하며 과거 운동권 경력을 부풀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있는 정당이 여전히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1980~90년대 학번 중년층(과거의 ‘학우’들)을 오늘까지 밑천으로 삼아 살아가는 모양이랄까. 

한참 이 글을 이렇게 쓰고 있는데 동갑내기 편의점 점주에게서 전화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요즘 매출은 어떠냐, 작년 매출은 좀 회복했느냐, 이번에 세금은 얼마나 나왔느냐, 직원들 4대보험은 어떻게 들어주고 있느냐, 얘기를 나누다 내가 문득 “‘조국 힘내세요’ ‘조국 사퇴하세요’ 검색어 전쟁이 벌어졌는데 네 견해는 무엇이냐” 뜬금없이 물으니 친구가 하는 말, “야, 조국이 됐든 조국 할애비가 됐든 경제나 살려놨으면 좋겠다.”


도덕 말고 잘하는 게 뭐 있나

명언 중 명언이다. 이것이 밑바닥 민심이다. 앞에서 구구절절 386이 어떻고 이야기했지만 국민 가운데 70~80%는 그런 이야기에 관심 없다. 정치에도 관심 없다. 술자리에 너덧 모여 있다 정치가 화제로 등장하면 침 튀기며 열변 토하는 사람은 꼭 (정해진) 한두 명이고, 나머지는 그저 조용히 듣거나 어서 그 이야기가 끝나기만 기다린다. 본인은 똑똑하고 깨어 있다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정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친구는 솔직히 마음속으로 싫어한다. 이것이 ‘먹고살기 팍팍한’ 민초들 삶의 풍경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오래된 바람이 있다면, “나는 묵묵히 내 자리에서 내 일이나 열심히 할 테니 그럴 환경이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비웃게 된 지 오래다. ‘그들만의 리그’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조국인지 모국인지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 없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긴 편이 우리 편! 빨리 싸움 끝내고 경제나 좀 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386이 갖고 있는 자부심(혹은 무기)은 ‘도덕성’이다. 다 죽어도 그 점만은 ‘적들’보다 낫다고 자신한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느냐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좋다. 사실 386은 도덕적이지 않다, 털어보면 구린내가 진동한다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렴 좋다. 그냥 그들이 도덕적이라고 인정해버리자. 다 인정하자. 고개 끄덕이고 엄지손가락 번쩍 치켜세우며 인정해주자. 단군 이래 가장 순결한 사람들이라고. 

요즘 386을 비판하는 책이 서점가에 여럿 등장하고 있다. “386은 자신들이 불행한 세대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가장 행복한 세대이고, 산업 발전의 모든 혜택을 다 누린 세대”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돈과 권력만으로 부족해 존경과 명예, 모든 것을 다 쟁취하려는 욕심쟁이 세대”라고 손가락질한다. 아무렴 좋다. 칭찬해주자. 인정해주자. 못 먹고 못살고 엄청나게 고생하며 살아온 세대라고, 스스로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룬 세대라고 386을 존중해주자. 과거에 운동권 핵심에 있었든 언저리에 있었든, 언저리에도 못 끼다가 어느 날 투사가 돼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든, 다 잘했다고, 모든 것을 바쳤다고 인정해주자.
 
하지만 몇 개를 조건 없이 인정해줬으니, 이제는 국민도 하나쯤 받아낼 차례! 도덕성 말고, 민주화의 공로 말고, 오늘의 386, 특히 정치권 386은 무엇을 잘하는가? 국민들은 그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다.


21세기판 대약진운동

바라는 것이 있으니 정치, 외교, 통일 그런 것 말고 경제나 좀 살려놓으라는 말이다. 정치개혁이나 사법개혁, 반미, 반일, 자주, 통일, 평화, 남북관계…, 386들은 그런 것에 엄청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무지렁이 민초의 눈에는 “자기들끼리 권력 싸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먹고살게만 해달라”는 민초들의 요청에 386을 위시한 정치인들은 “먹고사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는 바보들” “당신들 때문에 이 나라가 그동안 엉망이었다” 속으로 욕할지 모르지만, 아무렴 좋다. “먹고 좀 살게” 해 달라. 국민은 386에게, 혹은 정치인에게, 그것만 바란다. 

다시 ‘조국 사태’로 되돌아와 생각해보자. 작금의 사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는 비단 조국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기득권 전체에 대한 분노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좋지 않은 경제 상황과 2030의 세대적 처지와 입장, 사회 환경에 대한 분노가 골고루 결합돼 오늘의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그것을 정치권 386들은 “보수 세력의 검은 손길” 정도로 비아냥거린다. 세상 모든 일을 정치 게임으로만 바라보는, 딱 ‘그들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그러는 것 같지만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잡았다. 글로 일어선 조국이 글로 망하듯, 촛불로 일어선 정권이 성난 촛불의 부메랑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충언컨대 386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좀 겸허해지라는 것이다. 좋게 보아 지금 정부는 착하고 순수한 유비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격이다. 그렇다면 전쟁에 능한 관우나 장비 같은 사람들을 잘 활용해 무언가 성과를 보여줘야 할 텐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양심과 능력, 지성과 이성, 모든 것을 겸비하고 있는 줄 착각한다. 

일단 그들은 전문가의 오래된 능력, 축적된 성과와 가치 같을 것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종종 보인다. ‘그까짓것 노력하면 금방 된다’ 정도의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최근 일본과 경제 분쟁에 대처하는 모습만 보아도 상당히 즉자적이다. ‘쎄게’ 맞붙고 대체품을 찾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몇 년 안에 후딱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인 줄 안다. 지금껏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대기업의 탐욕” 정도로 가벼이 비난해버린다. 세상 모든 일을 너무 쉽게 본다.


부디 경제를 살려놓길

서민경제 침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뉴시스]

서민경제 침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뉴시스]

최저임금이나 경제를 다루는 태도는 또 어떤가? 임금을 강제로 올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상식적 인과관계는 무시하고, 고용을 줄이는 자영업자를 또 “탐욕”이나 “한계기업”이라 욕하고, 부족한 것은 세금으로 메우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임금 인상=복리 증진’이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생각밖에는 못 한다. 그러다 오늘날 현실이 이렇게 뒤틀리기 시작하니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눈을 감고 몸부림치는 안쓰러운 행태마저 보인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수년 안에 영미(英美)를 따라잡겠다며 솥뚜껑과 숟가락까지 긁어모아 조잡한 용광로를 만들다 결국 4000만 명을 굶겨 죽인 대약진운동을 이 대목에서 떠올린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의지는 좋다만 현실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구체적인 성과로서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지 못하면 그 어떤 이념이나 이상도 말짱 헛것이란 사실을 정치권 386들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전문가를 배제한 자리에 준(準)전문가나 마니아 수준인 사람, 혹은 고분고분 말만 잘 듣는 사람을 앉히고 정작 전문가들을 향해서는 ‘부역자’라 손가락질하면서 “잔말 말고 우리 지시에 따르라” 한 것이 지난 2년간 반복된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부디 남은 2년은 제대로 된 경제 전문가 한 명이라도 모셔와 망가뜨린 경제라도 좀 회복시켜 놓고 다음 정권에 물려주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그러니 우리의 소원은 하나! 조국이 아니라 조국 할아버지라도 좋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다만 경제를 살려놓기를. 가슴 절절히 부탁한다.




신동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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