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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해운업에 공정위 철퇴, 청와대가 나서라”

5600억 원 과징금 통보…해운협회 “선박 다 팔아도 감당 못 해”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기사회생 해운업에 공정위 철퇴, 청와대가 나서라”

  • ● 공정위 동남아 운행 선사에 과징금 5600억 원 예고
    ● 노사 한 목소리로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처사”
    ● 선사 보호 위해 담합 허용한 해운 역사
    ● 공정위 “의견 수렴해 전원회의서 결정할 것”
    ● “해수부·공정위 모두 관할하는 청와대가 나서야”
6월 29일 부산신항에서 열린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해양진흥공사의 지원으로 중소·중견 선사들의 경영도 안정되고 있다”며 “해운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뉴스1]

6월 29일 부산신항에서 열린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해양진흥공사의 지원으로 중소·중견 선사들의 경영도 안정되고 있다”며 “해운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뉴스1]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동남아시아 항로에 취항하는 국적 선사 12개사와 외국 선사 11개사가 부당 공동행위를 해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며 관련 내용이 담긴 심사보고서를 전달했다. 과징금 규모는 동남아 항로 매출액의 8.5~10%로, 모두 합치면 5000억~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업게는 보고 있다. 국내 3개 중견 해운사인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의 지난해 영업이익(2700억원) 총액의 배가 넘는 금액이다.

2018년 목재 수입업계가 부당한 담합행위를 했다고 해운업계를 공정위에 신고한지 3년만이다. 이후 목재업계는 공정위에 신고철회를 요청했음에도 공정위는 직권인지 조사 등을 계속 진행했다고 업계는 설명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해운업계는 “해운법상 공동행위가 인정되는 업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겨우 기사회생하고 있는 업계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수 조 원이 투입된 해운사업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과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계는 글로벌 선사들의 가격경쟁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선복량(배에 실린 짐의 양)이 2016년 8월 105만TEU에서 2018년 5월 50만TEU로 반토막 나기도 했다. 세계 5~6위였던 위상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국내 업체에 화물을 맡기기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정부가 심폐소생한 해운업, 공정위가 제동

한진해운 파산으로 몰락위기까지 갔던 해운업에 최근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이 진전되며 글로벌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세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축으로 HMM(구 현대상선)이 초대형 친환경 선박 20척을 새로 도입하고 4월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한 것이 큰 힘이 됐다. HMM은 2015년 1분기 이후 약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 1분기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인 1조193억 원을 기록했다.



해운업계는 “공정위 조치가 현실화되면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난 해운사들은 줄도산 할 수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해운업의 명운을 가를 공정위의 위법 지적은 어느 만큼 법적 타당성을 지닌 것일까. 공정위의 지적은 관련법을 일방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업계는 “해운 업종 특성에 따라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발한다. “공정위가 지적한 ‘공동행위’는 해운법이 인정하는 행위이며 그간의 업계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

실제로 해운법 29조는 외항화물운송사업자의 운임 협약을 규정하고 있는데, 선사 간의 운임 등 운송조건에 대한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58조에 따라 그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 해운업계에서 ‘담합’이 인정되나

해운업계에서 이처럼 공동행위가 인정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제무역시장에서는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해상수송이 필수적이다. 공동행위는 정기선을 운영하는 선사 간 과도한 경쟁을 막고 화주에게 원활한 수송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공동행위를 통해 선사는 정기적 화물 운송의 책임을 지는 대신, 물동량 감소로 인해 큰 손해를 입고 파산하지 않도록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는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1974년 ‘정기선 해운동맹 규약협의’를 체결해 가입국이 정기선을 운영하는 선사간의 공동행위를 자국법에서 수용하도록 했다. 미국·일본·중국·싱가포르 등은 이 협약에 따라 해운업계에서의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1978년 해당협약에 가입해 해운법 제 29조가 만들어졌다.

다만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해운법 등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화주 단체와 사전 서면 협의 ▲공동행위 내용 해양수산부 장관에 신고 ▲공동행위로부터 탈퇴를 제한하지 않음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한다. 공정위는 “이 요건에 일부 하자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업계는 “위 3가지 요건을 모두 준수했다” 며 “공정위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판단을 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공정위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다른 국적 회사들에 대해 국내회사들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점. 양창호 전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장의 말이다.

“국제적으로 정기 선사 간 ‘운임 공동행위’가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수출 화주 화물에 대해 독점금지법 리스크가 운임에 부가돼 국내 서비스 항로를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 기항이 줄어들면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에 대한 해상운송비가 느는 것은 물론, 외국 선사들의 부산항 환적 물동량이 줄어든다. 아시아 허브항의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한진해운 사태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우리 선사에 대한 해외 화주들의 신임도가 또다시 추락해 산업전체 위기로 비화될 수도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예고는 해운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과도 역행한다. 한진해운 파산 다음해인 2018년, 정부는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해운업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그 일환으로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저비용·고효율 선박도입과 선사의 안정적 경영 지원에 4조 원이 넘는 금액(2020년 7월 기준)을 투자했다.

56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이 결정되면 중소·중견 선사들이 입을 타격은 돌이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부회장은 “동남아 항로에 출항하는 선사가 보유한 선박 가치가 7000억 원으로 추산되다”며 “채무까지 고려하면 배를 다 처분하더라도 선사들은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해운업계 노조도 목소리를 냈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정부가 수 조 원을 해운업에 투자해놓고 공정위가 업계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며 “1만 여 명의 원양 선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릴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 중재하려면 청와대 나서야”

공정위 측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며 “의견을 수렴해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공정거래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1심 법원의 기능을 갖는다.

이참에 청와대가 나서서 공정위와 해운산업 갈등을 중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이대로 과징금 처분을 최종 결정하면 국적 선사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는 셈”이라며 “그렇게 되면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가 한국 선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과징금을 추가로 물리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기반 산업인 해운업의 미래가 걸려 있는 만큼 해양수산부와 공정위를 모두 관할하는 청와대가 나서서 중재를 거쳐, 해운업계에 대한 관리는 해양수산부에 이관하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해운업 #공정위 #과징금 5600억 원 #신동아



신동아 2021년 8월호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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