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민중 삶 체득한 이재명 경쟁력, 아무도 못 따라가
더 유능한 4기 민주당 선언, 친노·친문도 함께해야 정권 재창출
‘집 떠난 진보층’과 ‘합리적 중도층’ 확보가 관건
통계로 본 한국 사회, 통째로 외우는 이유
[조영철 기자]
하지만 ‘정책 브레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이 지사와 이 원장의 35년 인연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1986년 초 스물두 살의 사법시험 준비생 이재명(그해 10월 사시 합격)과 경원대(현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로 갓 부임한 서른 살의 이한주는 당시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응축돼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도시 성남에서 만났다.
“성남주민교회를 이끌던 이해학 목사님(이인영 통일부 장관 장인) 교회 행사에서 이재명을 처음 봤다. 말수가 적고 얼굴이 깨끗하던 게 기억난다. 나는 대학 시절 서울대기독학생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반독재 운동, 빈민운동을 주도한 이해학 등 교계 젊은 리더와 인연이 많았다. 성남에 있는 학교로 오자 이 목사님이 함께 일을 하자고 불렀다. 그때는 교수 신분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분당신도시가 건설되기 직전 1980년대 경기 성남은 한쪽에선 부수고 다른 한쪽에선 만들었다. 이주민, 철거민 문제가 큰 이슈였다. 그렇게 이 목사님과 함께 활동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이재명이라는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는 소극적 참여자였다. 이재명이 사시에 합격한 뒤 다시 만났다.”
이 지사는 지금도 그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이재명은 경기 성남시 신흥1동 시청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얼마 후 이 교수가 변호사 이재명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세 사기를 당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해서였다. 성남 주공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와 신분증을 보여주더니 “이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 당장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남편 몰래 전세 계약을 한 부인이 보증금을 가지고 떠나버려 이혼소송 중이라는 것이다. 이 변호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리 경제학자라도 눈뜨고 사기를 당할 뻔했다. 이를 계기로 이 변호사는 성남지역 운동가와 대학생들의 전담 변호사가 됐다.
용광로 같은 도시 성남에서 이재명과의 만남
“예전부터 학생운동을 하다 문제가 생기면 도망가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운동 방향이 달라졌다. 지학순 주교가 있는 강원 원주로 가면 협동조합론자가 되고, 공단이 밀집한 서울 구로동으로 가면 현장파가 되고, 기독교계인 인명진이나 제정구를 만나면 노동운동파가 되고, 경기 성남으로 가면 빈민운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게다가 성남은 가천대, 한국외국어대(용인분교), 경희대(수원분교)가 만나는 지점이어서 학생운동의 물리적 공간이 됐다. 전국적으로 학원자주화 투쟁이 확산하던 시기에 시위 중 다치거나 연행된 학생의 변호를 이 변호사가 도맡았다.”인권변호사 이재명의 활약이 시작됐다. 이후 이재명은 수도권 남부 저유소 반대투쟁,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 시 의정 감시활동, 시 집행부 판공비 공개 운동 등을 이끌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 제기로 시민운동가로서 명성과 함께 공무원 사칭 전과 기록을 안게 된 이재명은 2006년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0년에 이어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고,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3위에 그쳤지만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과 이한주는 정치적 동지가 됐다. 정책 기조나 공약을 만들고 인수위를 꾸리고 시·도정을 구상할 때에는 늘 곁에 있었다. 특히 201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은 초선 시장 이재명의 행정력과 정치력을 입증하며 그가 전국적 인물이 되게 한 사건이다.
“당선 후 인수위에 들어가 시 재정을 살펴보니 그동안 숨겨온 5000억 원대 빚이 튀어나왔다. 이 돈은 판교신도시 개발과 관련해 편성된 특별회계로서 바로 그해 국토부에 돌려줘야 할 돈이었는데 전임 시장 때 이리저리 전용해 거의 다 써버렸다. ‘현실적으로 갚을 수 없다고 하자.’ 이 시장에게 모라토리엄을 제안했다. 갚을 돈이 없기도 했고 다른 목적도 있었다. 2010년 진보계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에선 복지 욕구가 분출했다. 그 많은 요구를 다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시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라토리엄 선언과 탈출은 성공적이었다. 성남시는 예산 삭감과 긴축재정으로 3년 6개월 만에 모라토리엄에서 졸업했고 이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경기연구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이재명의 두 번째 대선 도전을 지켜보고 있다. 7월 5월 수원시 경기연구원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6월 17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정책협약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이한주 경기연구원장(맨 오른쪽). [경기도 제공]
맞서 싸우지 말고 국민에게 호소하라
- 캠프에서 윤후덕 의원과 공동 정책담당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가.“싱크탱크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각 분과를 구성하고 정책을 튜닝하는 것이 내 일이라면, 이렇게 생산한 과제를 정무적으로 검토해 적절한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윤 의원의 일이다. 쉽게 말해 내가 ‘이재명 정부’의 의제와 정책은 무엇이어야 하나를 얘기한다면, 윤 의원은 지금 그것이 꼭 필요한가, 예산은 얼마나 들까,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같은 메시지라도 어떻게 내보내야 효과적일까 검토한다. 윤 의원은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 둘 다 필요하다.”
- 7월 4일 민주당 예비경선 국민면접에서 이 지사가 3위 안에도 들지 못한 것은 뜻밖이다.
“8명이 1명을 집중 공격한 8대 1 경선 아니었나. 1등 주자가 견제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전략은 다른 후보들이 공격해 와도 맞서 싸우지 말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가자는 것이다. 당원만 바라보지 말고 ‘당원을 통해서 국민을 향해 말하자’다. 그런데 이 지사 스타일이 도전하는 것은 쉬운데 도전받는 것은 어색해한다. 그냥 싸우라고 했으면 잘할 텐데 자제하라고 하니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선거는 당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 출마 선언에서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토대 위에 더 유능한 4기 민주당 정권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경선 과정이 과열되면 2007년 대선 같은 일이 벌어진다.”
공교롭게도 7월 5일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친문 당원 일각에서 이재명 지사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송 대표는 민주당에 뼈아픈 기억을 꺼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 정동영이 당 대선후보가 되자 일부 친노 세력이 정동영보다 이명박이 되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로 안 찍었다. 결국 500만 표라는 압도적 차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
- 어차피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재명이라고 낙관하나.
“우리에겐 몇 퍼센트 지지율로 이번 경선을 마무리 짓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30% 근처에서 경선이 끝나면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70%가 움직일 여지가 너무 많다. 그렇게 되면 전례 없는 정치 게임이 펼쳐질 것이다. 최소한 45%를 넘기는 것이 목표다.”
- 여당 후보로는 1위를 하고 있지만 20%대에 갇힌 박스권 지지율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렇다. 이 지사의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로 대변되는 여권 지지율의 합과 야권 기피층 사이에 고정돼 있다. ‘집 떠난 진보층’과 ‘합리적 중도층’을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에 대한 이 지사의 입장 변화를 거론하는 이가 많다. 출마 선언에서 언급은 했지만 수많은 정책 중 하나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는 “기본소득은 조금 옆으로 배치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례는 없다” “재원 부담 문제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지금까지 공격적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것보다 진중한 자세를 취했다. 이재명 후보는 경선 후보 토론에서 “아직 공약을 하나도 발표한 게 없어서 기본소득이 1번이라 할 수가 없다”라고 하더니 “조만간 발표하겠지만 순위로는 공정성장이 1번과제다”라며 ‘공정성장’을 들고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누구나’ N분의 1로 갈라주면 무슨 도움 되나
- 전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 공약을 포기했나.“최근 논조를 바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기조를 바꾼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은 모든 사람이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기본’ 시리즈는 복지제도의 단순한 확장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통해 총수요를 늘려 경제를 선순환시키고 개인 역량을 키워 실질적으로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도모하는 경제정책이다. 다만 급격한 재정 확충의 어려움 등으로 기본 정책을 단번에 시행하기보다는 청년기본소득과 유사하게 부분적으로 시행하거나 낮은 수준에서 출발해 그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국민적 동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안했다. 기본소득은 20~30년을 두고 반드시 간다.”
- 기본소득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본소득은 설계에 따라 불평등을 해소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다. 기본소득의 영어 명칭이 ‘유니버설 베이식 인컴(Universal Basic Income)’이다. 앞의 두 단어가 ‘누구나’라는 의미다. 그 ‘누구나’ 때문에 이 정책을 실현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여러 기본소득론 중에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공유 부(Common Wealth)’의 개념으로 보면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재화를 무조건 N분의 1로 갈라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매우 작아진다. 정책은 철학이 아니다. 정책은 삶이고 정치다.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는 ‘유니버설 베이식 인컴’과 ‘유니버설 베이식 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 두 축으로 돼 있다. 인컴은 돈이지만 서비스는 재화나 용역 다 해당된다.
예를 들어 대학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의되면 ‘유니버설 베이식 에듀케이션(Universal Basic Education)’으로 간다. 모든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데 연 5조8000억 원이 든다. 당장은 큰돈으로 보이지만 우리 경제가 매년 2~3%씩만 성장해도 10년 뒤엔 큰 부담이 아닐 수 있다. 매달 50만 원씩 전 국민에게 나눠주려면 연간 300조 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 원이 조금 안 되는 현실에서 300조 원은 큰 부담이지만 앞으로 GDP가 5000조, 7000조 원대가 되면 300조 원도 큰돈이 아니다. 그래서 기본소득 개념은 가져가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현하자는 전략이다. 이 지사 공약집에도 ‘기본소득위원회를 둔다’ 라는 내용을 넣었다. ‘대통령 공약이니까 무조건 한다’가 아니라 향후 국민이 참여해 기본소득을 어떻게 설계해 나갈지 협의하도록 했다.”
야당은 기본소득 대안 말하는데 여당은 비판만
-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지사의 ‘말 바꾸기’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야당은 오히려 기본소득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우리와 경쟁하는데 여당 내부에선 무조건 싫다고 비판만 하니 안타깝다. 이 지사가 오래전부터 제안하고 성남시와 경기도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한 기본소득 논쟁이 확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 지사가 치고 나가지 않았다면 안심소득, 공정소득, ‘부(負)의 소득세’ 같은 정책이 세상에 나왔겠나. 이 지사가 대선 출마 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고 정부는 국민을 위해 수많은 정책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면 된다. 선거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을 통해 국민 삶을 안정화하고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 이 지사의 ‘공정성장’과 기본소득은 어떤 관계인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6년 전 언급한 ‘공정성장’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2015년 안 대표가 제시한 공정성장론의 골자는 공정한 경제제도(공정거래, 공정 분배, 공정 조세)를 바탕으로 한 혁신성장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이 저성장의 주요 요인이라는 데 공감하지만 이 지사가 주장하는 공정성장은 이보다 더 본질적인 개념이다. 공정의 토대 위에 새로운 지식·기술이 창출되고 전파되는 역동적 혁신 과정이 경제성장이다. 이런 성장의 혜택을 누릴 때 새로운 혁신 동력이 축적된다.
과거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는 공정의 토대가 없었고, 혁신 방향도 부재했다.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토건사업, 전시행정, 부동산 경기부양으로 치달았다. 소득주도성장은 소득분배 개선에 치중했고 공정경제에 소홀했다. 불공정한 혁신은 지속할 수 없고, 혁신 없는 공정은 소멸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와 노동구조는 대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기존 노동자를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 우려가 있다. 이들의 역량을 강화해 대전환 과정을 주도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노동자 고용을 안정화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공정성장의 중요한 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도 공정성장의 한 부분이다.”
- 30년 넘게 정치적 동반자로서 지켜본 이재명의 장점은 무엇인가.
“총명하다. 상황판단이 빠르다. 참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처음엔 반대하다가도 결국 ‘이 사람 판단을 따라가는 게 맞구나’ 깨닫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적어도 ‘일’은 할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이 든다. 이 지사는 평생 변방에서 기층민중으로 살았다. 머리 좋고 자존심 센데 처지가 워낙 비관적이다 보니 ‘죽자’ ‘정신 차려라’ 매일 이런 말과 다짐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기층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그들의 불공평과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이 지사의 평생 신념이다. 내가 보아온 이 지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재명의 매력이자 경쟁력이다.”
이 지사는 경기지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 통계수치를 대부분 외우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현황과 수치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서라는 게 이 원장의 주장. 이 원장은 지도자라면 숫자에 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계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지도자가 현재 위치도, 가야 할 방향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대통령이 모르면 아무도 모른다. 참모들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기회 봐서 출마할 생각만 한다. 이 지사는 한국 사회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 당장 누구와 토론해도 지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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