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와 다르게, 가치에 투자
음악 저작권료 지분 30배 이상 뛴 ‘롤린’
K콘텐츠 투자하는 2030세대 60~80%
소액 투자 가능해져 ‘아트테크’족 급증
믿을만한 기관투자자 참여 여부 확인해야
음악 저작권료 지분에 투자하는 2030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뮤직카우 제공]
집을 사기도,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MZ세대는 투자에 적극적이다. 이들에게 투자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 됐다. 하지만 MZ세대가 추구하는 투자 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자본으로 장악한 시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체투자 상품을 선호한다. 최근 ‘K콘텐츠’를 상품화한 온라인 투자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K콘텐츠는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나 영화, 음악, 미술, 전시 등 우리 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말한다.
박사의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가치소비를 중시하고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다. 최신 트렌드와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도 보인다. K콘텐츠 투자는 이런 MZ세대의 성향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K콘텐츠는 주식이나 코인과 달리 일상에서 소비하는 상품이다. 잘 아는 상품이어서 친근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전문지식 없이도 가치를 분석하기가 쉽다. K콘텐츠 투자는 혼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고가의 작품을 여럿이 공유하고 협업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소자본으로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아티스트를 후원할 수 있는 일종의 덕질인 셈이다. 투자를 놀이처럼 즐기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롤린’ 저작권료 지분 30배 급등
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은 K콘텐츠 투자시장에서 가장 핫한 상품으로 꼽힌다.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에서 이 노래의 저작권료 지분(1주 기준)은 지난해 12월 2만3000원에 처음 공유됐다. 그런데 4개월 만인 4월 17일 가격이 80만 원까지 치솟았다. ‘롤린’이 음원 차트에서 3월부터 역주행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롤린’의 저작권료 수익은 역주행 이전보다 100배가 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7월 13일 ‘롤린’의 현재가는 69만70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역주행 효과가 반영된 저작권료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배분될 예정이다. 음악 저작권료는 음원을 사용한 매체에서 징수되는 시점과 저작권자에게 지급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뮤직카우는 누구나 쉽게 음악 저작권료 지분을 구매해 매월 저작권료를 받거나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한 세계 최초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이다. 현재 임창정의 ‘소주한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김범수의 ‘약속’, 김태우의 ‘사랑비’ 등 약 900곡이 거래되고 있으며 매주 5~7곡이 새롭게 추가된다. 거래액은 월 30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2분기 기준 거래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약 9.4배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를 견인한 이용자(개인투자자)는 2030세대다. 뮤직카우에 따르면 현재 누적 이용자 수는 약 50만 명으로, 2030세대 비중이 70%에 달한다. 40대 이용자는 약 20%를 차지한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이용자 수가 전년 대비 약 5.4배 늘었다.
뮤직카우는 원저작권자로부터 저작권의 지분 일부(‘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으로 저작권료 수익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매입하고, 이를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작게 분할해 옥션에 처음 공개한다. 개인투자자는 뮤직카우를 통해 저작권료 지분의 일부를 구매해 보유한 지분만큼 매월 저작권료를 받거나, 투자자 간 거래로 판매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뮤직카우에 따르면 지난해 저작권료 지분의 평균 수익률은 구매가 대비 연 8.7%를 기록했다. 박경진 뮤직카우 마케팅팀장은 “음악 저작권은 저작권법에 따라 원작자 사후 70년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고 매월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는 자산”이라며 “분배 금액의 증가 추세와 함께 K팝 열풍, 저작권료 징수 매체의 확대, 저작권 보호 의식의 향상, 레트로 열풍 등은 저작권 투자시장의 전망을 밝게 한다”고 분석했다.
소액 투자 가능해져 ‘아트테크’족 급증
음악 저작권료 지분은 주식보다 안전한 자산이지만 투자 시 유의할 점이 있다. 이용자가 구매한 것은 저작권료 수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지, 저작권 자체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저작권료 지분을 구매했더라도 원권리자의 승인 없이 저작권을 사용할 수 없다. 인기가 없는 노래의 저작권료 지분은 원하는 시기에 팔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박경진 팀장은 “무분별한 역주행 기대감이 건전한 투자 문화를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현행법상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보호장치를 취하고 있지만 거래액이 상당한 만큼 금융 당국의 감시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아트테크 분야에서도 MZ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아트테크는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미술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재테크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은 가격이 워낙 고가다 보니 아트테크는 부유층에만 허락되는 투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미술품이나 전시에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해졌다. 공동 투자 방식으로 작품을 매입했다가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나누는 아트테크 플랫폼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술품 79점의 공동구매를 진행한 아트투게더가 대표적이다. 아트투게더는 최소 투자 금액을 1만 원으로 책정해 2030세대의 공동구매 참여가 활발하다. 전체 회원 가운데 2030세대의 비중이 65%를 차지한다. 이들 MZ세대는 국내 작품 33점의 공동구매에도 적극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29일 공동구매를 진행한 유영국 작가의 그림 ‘Work’는 1억 원이 넘는 가격에도 모집이 완료되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우환 작가의 ‘From Point’는 아트투게더 설립 초기라 회원 수가 많지 않던 2019년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3억 원이 넘는 가격에도 모집이 완료됐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공동구매한 작품을 매각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작품도 적지 않다. 박서보의 작품 ‘Écriture No.2-06’은 지난해 9월 공동구매를 완료하고 219일 만인 4월 27일 매각해 138%의 수익률(연환산 수익률 230%)을 올렸다. 지난해 6월 14일 공동구매를 완료한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은 5월 12일 매각을 진행했다. 보유 기간은 333일, 수익률은 44%를 기록했다.
최근 MZ세대의 미술품 투자가 활발해진 이유가 뭘까. 이은우 아트투게더 대표는 “소액 투자가 가능한 점 외에도, 여느 대체투자 상품과는 차별화된 미술품만의 경쟁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래는 그의 보충 설명이다.
“은행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 부동자산 총액이 6월 기준 1300조 원을 돌파했다. 돈이 넘치니 각종 상품에 투자한다. 주식이나 코인은 등락폭이 커 불안하다. 부동산은 정부 규제가 너무 심하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니커 테크(운동화 재테크)’가 인기를 끌지만 패션 트렌드는 수명이 짧아 오래가기 힘들다. 반면 미술품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상승한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높은 수익률과 장기적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재화다. 빅뱅의 지드래곤이나 탑, BTS의 RM처럼 유명한 연예인들이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전시회를 방문하는 모습도 젊은 층을 아트테크의 세계로 이끄는 데 한몫했다.”
미술품 투자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동구매 플랫폼이 작품 선정부터 매각 후 수익 분배까지 책임을 지는 곳인지, 작품의 이력이 맞는지, 가격이 투명하고 적정한지, 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관리 시스템 사전점검 필수
6월 29일 공동구매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모집이 완료된 유영국의 작품 ‘Work’(위)와 6월 펀딩을 진행해 목표액의 119%에 달하는 투자금을 확보한 ‘요시고 사진전’. [ⓒ유영국, 펀더풀 제공]
K콘텐츠 전문 펀딩 플랫폼인 펀더풀에서 최근 펀딩을 진행한 ‘요시고’ 사진전이 좋은 예다. 당초 모집 금액은 5억 원, 투자할 수 있는 최소 금액은 50만 원이었다. 그런데 6월 9일부터 22일까지 투자자를 모집해 목표액의 119%에 해당하는 5억9610만 원을 달성했다. ‘요시고’ 투자자 중 2030세대 비중이 8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6월 23일부터 6개월 동안 진행되는 ‘요시고’는 2주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했다. 펀더풀에 따르면 이 전시의 손익분기점은 8만 명. 전시 기간이 5개월 넘게 남았는데 이미 관객 수 목표치의 75%를 달성했다. 윤성욱 펀더풀 대표는 “전시 기간에 14만 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익률이 1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사진전보다 한 달 앞서 투자를 모집한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2’에도 2030세대 투자자가 많이 몰려 놀랐다”고 전했다.
“드라마 성격상 4050세대를 타깃층으로 보고 최소 투자금액을 200만 원으로 올렸는데 MZ세대 투자자 비율이 35%에 달했다. 펀더풀 회원 중에도 MZ세대가 75%를 차지한다. 드라마 수익률도 낮지 않다. 일단 5%는 거의 확정적이다.”
윤 대표는 클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영화 ‘노무현입니다’와 ‘판도라’ ‘재심’ 투자자 모집에 성공한 바 있다. 투자자를 찾지 못하던 이들 영화는 개인투자자 모집에 성공하며 뒤늦게 기관투자자들이 들어와 소기의 성과를 냈다. ‘재심’의 투자자 수익률은 30%에 육박할 정도였다. 윤 대표는 “영화나 드라마는 개인투자자를 펀딩 형식으로 모집함으로써 일부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고,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활용해 홍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 경쟁력이 커지고 판로가 넓어져 K콘텐츠 시장의 전망은 밝다”고 진단했다.
그는 K콘텐츠 펀딩에 많은 젊은이가 몰리는 이유를 묻자 “좋아하는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수익성과 확장성을 기대해 볼 수 있고, 직관적·정서적으로 다가가기 쉽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숙하고 친근하다는 이유로 상품에 대한 투자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K콘텐츠 상품은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를 결심하기 전 상품에 대한 다각적 점검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윤 대표는 “리스크를 줄이려면 반드시 콘텐츠를 누가 만들고, 유통은 누가 하는지, 돈을 배당하는 절차에 하자가 없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한지, 전문 투자기관이 끼어 있는지, 제작진의 면면이 어떤지 등을 사전에 꼼꼼히 따져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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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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