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에겐 더 주고, 고소득층에겐 더 걷는 소득세
기본소득은 보편복지, 부의 소득세는 선별복지
재원 확보 없이 누구나 50만 원? 전형적인 포퓰리즘
윤석열·유승민 대선주자들 ‘부의 소득세’ 공약에 눈독
중복 복지 통폐합 저항 클 것, 정치권엔 ‘독이 든 사과’
차기 정부 부동산세부터 하향 조정해야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인 사람에게 국가가 일정액의 최저보장 소득을 지원하는 ‘부의 소득세’를 제안한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 [조영철 기자]
‘어떻게 나눠줄 것이냐’와 ‘어떻게 걷을 것이냐’는 동전의 양면이다. 재원 확보 방안 없는 분배는 포퓰리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금 부과에는 저항이 따른다. 김낙회(62)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2019년 펴낸 ‘세금의 모든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세금이다. 세금은 세입 예산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할 만큼 나라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재원이다. 세금은 소득재분배 기능도 수행한다. 소득재분배는 주로 소득세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국민은 소득의 20%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한다.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기여금까지 포함하면 25%를 약간 넘는다. 조세정책의 핵심 가치는 공평과 효율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적절할까.”
김 고문은 “공평하면서도 현실 여건에 맞는 세제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영원한 숙제”라고 했다. 기획재정부(기재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재정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조세정책 전문가에게도 세금에서 공평과 효율의 조화는 풀기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
공정소득, 안심소득, 부의 소득세는 같은 개념
최근 김낙회·변양호·이석준·임종룡·최상목 등 전직 기재부 출신 관료 5명이 공저 ‘경제정책 어젠다 2022’(21세기북스)에서 ‘부(負)의 소득세’를 제안하면서 소득 논쟁은 4파전이 됐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정소득, 안심소득, 부의 소득세는 모두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제안한 ‘네거티브 인컴 택스(Negative Income Tax)’에 기초한 것이다. 지급 단위(가구냐 개인이냐)와 작명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어서 실제 논쟁은 기본소득이냐 부의 소득세냐 2파전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경제정책 어젠다 2022’ 팀은 부의 소득세 도입에 필요한 재원을 추산하고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안보다 훨씬 구체적이다.한편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2장 ‘평등–부의 소득세제와 포용적 경제’ 편을 김낙회 고문과 함께 쓴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하면서 향후 윤 후보 경제 공약에 ‘부의 소득세’가 채택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차기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야 할 경제정책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면, 부의 소득세는 ‘일정 소득 이하 국민’에게만 최저보장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고, 부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적 복지를 추구한다. 이 개념을 적용한 이재명식 기본소득과 김낙회·이석준의 부의 소득세의 실행 사례를 보자.이재명 경기지사는 국민 모두에게 1인당 월 50만 원씩(연 600만 원)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그러려면 약 300조 원이 필요한데 당장 막대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으니 단기적으로 월 5만 원씩 지급하고 연차적으로 늘려나가겠다는 방안이다.
김낙회·이석준이 제안한 부의 소득세는, 중위소득 60% 이하 소득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의 30% 수준을 한도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적용했다. 2021년 현재 1인 가구 중위소득이 월 182만8000원임을 감안해 최저보장소득을 월 50만 원으로 하되, 18세 이하는 대부분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점을 감안해 월 30만 원으로 한다. 소득이 증가하면 지급액을 줄여나가다 월소득이 100만 원(중위소득 약 60% 구간)에 이르면 지급을 중단한다.
결과적으로 연소득이 0인 사람은 국가로부터 연 600만 원을 받고, 연소득이 600만 원인 사람은 연 300만 원을 받으며, 연소득이 1200만 원이면 받는 돈이 0원이 된다. 연소득 1200만 원을 넘어가면 정해진 세율에 따라 소득세를 낸다. 부의 소득세는 월 100만 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고, 그 이하면 오히려 돈을 받는 방식이라 ‘마이너스 소득세’라 하기도 한다.
김낙회·이석준은 이 제도에 따라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너무 적어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층 약 1910만 명이 월 50만 원씩 지급받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 위 구간인 50만 원에서 0원 사이의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연소득 1200만 원 이하 계층은 약 730만 명이고, 연소득 1200만 원 이상에서 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2320만 명으로 추산했다.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려면 약 130조 원이 소요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김낙회·이석준은 부의 소득세와 유사한 목적의 사회복지 지출, 인적공제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한 뒤 여타 재정지출을 축소하고 세입을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부의 소득세와 유사한 현금이나 현금성 바우처 제도(기초연금, 생계급여, 아동수당, 영유아보육료, 유아교육비 보육료 지원, 구직급여, 모성보호육아지원, 산재보험급여,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를 폐지 축소하면 약 40조 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지출 측면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연례적인 재정 사업 폐지, 사업 규모 축소 및 연기, 재정 사업의 민간 이양 등을 하고, 수입 면에서는 비과세 감면 폐지 및 축소, 부담금 상향 조정 등을 제안했다. 최후의 수단은 증세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는 출간 후 차기 대통령 필독서로 꼽히며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이 시대의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경제정책 과제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이라고 서문에서 집필 목적을 밝혔듯, 대선 레이스가 달아오르면서 이 책 저자들과 세미나와 토론을 원하는 후보도 늘고 있다. ‘부의 소득세’ 파트의 공동 집필자인 김낙회 고문에게 직접 들었다.
- 윤석열 캠프 1호 영입 인사가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다. 사전 교감이 있었나.
“나도 6월 21일 기사를 보고 알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국장)의 제안으로 기재부 출신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며 책을 썼지만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관료 출신으로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조세정책 전문가로서 언제든 돕겠다는 취지다. 어느 진영이든 어느 후보든 (우리 정책을) 가져가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모이게 된 배경이 ‘시장을 통한 성장’이다. 부의 소득세는 성장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차원이라 아무래도 정책 기조가 보수에 더 가깝다. 윤 전 총장이 이미 그 책을 읽었다는 얘기는 간접적으로 들었다.”
- 부의 소득세 파트만 이석준 실장과 공동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의 소득세는 재원 확보가 중요한데 기재부 예산실장을 지낸 이석준이 그 분야 전문가다. 재원 확보를 위해 무엇을 빼고 무엇을 통합해야 하는지 제일 잘 안다. 큰 틀에서 나는 주는 쪽을 설계했다.”
- 부의 소득세를 설계하는 데 이견은 없었나.
“여러 차례 토론했다. 예를 들어 개인소득 기준으로 할까, 가구소득 기준으로 할까(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 당시 제안한 ‘안심소득’은 지급 대상을 ‘가구’ 기준으로 정한다)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내가 개인소득을 주장했다. 부의 소득세는 중복 지원 요소가 강한 사회복지제도 통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 개인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
한정된 재원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게 관료의 일
- ‘부의 소득세’ ‘음의 소득세’ ‘마이너스 소득세’란 개념이 이해하기 어렵다.“책이 나오기 전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균형소득’을 제안했다. 소득불균형을 덜어주는 소득세라는 의미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책이 나올 무렵 비슷한 개념으로 유승민 전 의원이 ‘안심소득’을 제안했다는 걸 알았다. 기본소득, 공정소득, 안심소득에 균형소득까지 나오니 헷갈린다. 네이밍에 신경 쓰지 말자고 해서 그냥 부의 소득세로 했다.”
- 부의 소득세를 ‘독이 든 사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 복지제도를 통합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크게 사회보험(비용 부담 가입자 대상), 사회수당(해당 인구집단 전체), 사회부조(빈곤층이나 취약계층), 사회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손색이 없을 만큼 정비돼 있지만 운용 과정에 문제가 많다. 첫째 중복 지원, 둘째 복지 사각지대, 셋째 복지 전달 과정에서의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다. 예를 들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된 기초연금 제도는 사회수당적 성격인데 사회보험인 국민연금, 공적부조인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겹친다. 아동복지 제도만 해도 현금 지원으로 아동수당, 장애아동수당 및 연금이 있고 기타 복지로 장애인 돌봄 지원이 있고 조세 지원으로 자녀장려세제, 자녀세액공제, 인적공제도 있다. 복지 수급자도, 복지 전달자도 어느 제도를 적용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것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복지를 제공받던 저소득층을 설득해야 한다. 받던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쉽게 동의하겠나.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그런 문제를 뒤로 미뤘다. 그는 정치가니까 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행정가이기 때문에 명확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으로 세금을 더 내는 쪽도 왜 더 내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한다. 더 낸다고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또 부의 소득세를 실행하면 복지 공무원의 업무가 상당 부분 국세청으로 넘어간다. 정부 조직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복지제도를 통합하겠다고 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저항이 올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받아들이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 5차 재난지원금 논란을 봐도 제대로 나눠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소득 하위 80%까지냐 81%까지냐로 다투더니 지금은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5차까지 재난지원금을 줘야 하나 싶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관료의 일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이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집중해 정책을 설계하면 된다. 소비 진작이 목적이라면 전 국민에게 다 주는 게 낫다. 이재명 지사가 정확히 지적했더라. 80%와 81%가 무슨 차이냐고. 1% 차이로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이 차이 나면 소득이 역전되는 것 아닌가.”
- 차기 정부 세제개편 1순위를 부동산세 인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자 이를 억제하려고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 정책들은 거의 다 폐지됐다. 단기 양도차익에 대한 추가 과세 빼곤 다 없애는 것으로 마무리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금을 급격히 올렸다. 부동산투기 억제라는 목적이 불가피해도 자산에 대한 과세는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 부동산과 금융자산 과세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가계로서는 다 같은 자산인데 주식양도차익과 부동산양도소득에 대해 세율을 동일하게 적용할지 차등 적용할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김낙회 고문은 조세정책에는 옳고 그름의 영역과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했다. 옳다고 생각해도 정치적 판단이 그것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부의 소득세’가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 해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독이 든 사과’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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