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솔직” vs “文의 망상”
재집권 경고등 켜진 민주당의 고민
무너진 공정 가치, 폭등한 부동산, 美中 갈등
정상회담이라는 ‘미인계’의 유혹…결과는 과연?
김정은 ‘남는 장사’, 文 대통령 ‘밑지는 장사’
美 레이건 대통령의 베를린 장벽 연설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 표지를 장식한 문재인 대통령. [TIME 제공]
“남북 정상회담,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러나 타임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유엔인권보고서 조사 내용과 북한 전문가를 인용하면서 문 대통령의 인식이 ‘망상적(delusional)’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은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김정은)는 냉혈한처럼 고모부(장성택)와 이복형(김정남)을 살해했고, (김정은) 숙청, 고문, 강간, 장기적인 기아 유발을 포함한 ‘반인권 범죄’에 대해 포괄적 책임이 있는 ‘동일 인물(same people)’”이라고 반박하더니 “북한 전문가가 봤을 때, 김정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지속적인 옹호는 ‘망상(delusional)’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썼다. 인터뷰이(문 대통령) 발언은 전하되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을 함께 실은 것이다.그러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데도 청와대는 자랑만, 정상적인 나라 어렵나요? 홍보 전략으로 이 인터뷰를 추진한 청와대가 얼마나 현실감이 없나 싶다”고 비판했고, 외교관 출신의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대 교수는 “사실상 고강도 비판 기사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고 국내 다른 정책들마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얼굴이 진흙투성이가 됐는데도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잡지가 던진 진흙이야’ 하면서 자부심에 쩔어야 하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가 나온 직후인 7월 초 일부 언론이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 5월에 남북 정상회담 재개와 관련한 친서(親書)를 교환했다”고 남북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을 인용해 보도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러한 언론보도에 대해 7월 2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당국이 “확인해 줄 수 없다”라는 표현은 사실상 시인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1월 1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과의 비대면 정상회담을 언급한 만큼 비대면 회담에 관한 분석 기사도 나왔다.
타임의 기사가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인가 칭찬인가’ ‘진흙인가 머드팩인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는 데 북한의 결단을 바랐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갖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결국 임기 10개월여를 앞둔 문 대통령이 왜 김정은과 친서를 교환하고, 정치적 부담을 안은 채 김정은을 극찬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필요한 정치적 여건을 만드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임기를 정리해야 할 현 상황에서 왜 남북 정상회담에 집착하는 것일까. 타임 제목처럼 ‘그의 조국을 치유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시도’(Final Offer: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Makes One Last Attempt to Heal His Homeland)일까, 아니면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적 도박일까.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를 달성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 김정은 역시 임기가 종료되는 문 정부와 새로운 합의를 하고 그 이행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국내 정치 목적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차기 대선 승리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최근 국내 여론조사를 고려하면 여권 후보가 대선에 승리해 정권 재창출을 이룰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야권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대, 여권의 이재명 경기지사가 20%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10%대의 지지를 받고 있고, 10%대 이하 지지를 받는 여러 후보가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에 대한 평가 또한 현 정권의 공정에 대한 가치 훼손, 부동산 급등에 대한 비판 등에서 적어도 문 정부와 ‘공동 책임’이 있거나 야당 후보에 비해 비교우위에 설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야고여저(野高與低)의 국민 여론은 4월 7일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도 확인됐다. 결국 여론을 뒤집을 ‘결정적 한 방’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권 재창출은 요원해 보이는 시점이다.
따라서 대선까지 8개월 사이에 민주당이 선택할 전략은 많지 않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울 수도 없다. 부동산 문제, 경제 문제 또한 단시간에 회복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가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외교적 업적을 만들 카드도 마땅찮아 보인다. 오히려 지지 세력이 이탈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비위나 정치 추문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청와대의 많은 비서관이 기소돼 재판 중에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새로운 계책이 필요한 것이다.
반간계와 미인계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 정부는 재집권을 위해서 ‘반간계형 네거티브 캠페인’과 ‘미인계형 이슈 선점 캠페인’에 의존할 공산이 크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야당 후보 개인에 대한 검증 형식이나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선택적 사면이 될 수 있고, 미인계형 이슈 선점 전략은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타임(TIME) 러브콜’을 김정은이 받는다고 해도 그 효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애초 남북 정상회담은 보수정당에서 북측에 먼저 제안하고 추진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1월 국정연설을 하면서 북한 김일성의 서울 초청과 남북 최고 지도자의 상호 방문을 제안했고, 1985년에는 실무협상까지 진행됐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도 1988년 8·15 경축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김영삼(YS) 대통령은 1994년 7월 25~27일에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정상회담을 2주가량 앞두고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DJ) 정부에서 한 차례(2000년 6·15 정상회담), 노무현 정부에서 한 차례(2007년 10·4 정상회담), 문재인 정부에서 세 차례 성사됐다. 2018년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세 차례 정상회담은 각각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집권당에 엄청난 승리를 가져다줬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여당이 14곳에서 승리했고, 2020년 총선에서는 범여권이 183석을 차지하며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물론 선거 결과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여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과 국내 정치의 인과관계 속에서 ‘선거 기적’을 체험한 문 정부는 또다시 정상회담을 통해 대선 정국을 반전시키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여당 지도자들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서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7월 9일 “남북 정상이 임기 중에 다시 만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는 역사 인식을 보였다. 이 지사의 안보 분야 자문을 맡고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6월 26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 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자질을 겸비했다”며 후한 평가를 했다. 여기에 7월 들어 갑자기 북한 김정은의 건강이상설, 방위산업체 해킹 시도, 북한 간부 숙청 같은 북한 관련 뉴스가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경을 봉쇄한 상황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더 어려운 경제난을 겪는 만큼 주민 불만을 남북관계로 잠시 돌릴 수 있다. 문 정부는 회담 내용보다 회담 자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만큼 회담을 통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남는 장사’가 된다.
김정은의 ‘남는 장사’, 文 대통령은 ‘밑지는 장사’
그렇다면 국격이나 정상회담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집권 여당 선거에서도 ‘남는 장사’일까. 문재인 정부에서 치른 몇 차례 선거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여권의 호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2개월 뒤 치른 대선에서 여당(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22.53%포인트 차이(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48.67%, 정동영 후보 26.14%)로 참패한 적도 있다. 당시 “국민들은 남북관계 발전보다 경제발전에 적합한 인물을 선택했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필자가 볼 때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이미 1,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정치적 메시지를 소진시켰다.2018년 지방선거와 총선 또한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만들어낸 ‘환상(delusion)’, 즉 ‘새로운 남북관계가 곧 만들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줬지만 북한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사무소 폭파가 상징하듯 이런 환상 또한 철저하게 깨진 상태다. 이는 4·7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에서도 잘 드러났다. 따라서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도박’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회담이 성사되고 남북의 정상이 마주 앉는다면 ‘인민을 위해 핵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면 어떨까. 이 경우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 지지는 상승할 수 있다. 1987년 6월 12일 독일 베를린 장벽을 방문한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서기장, 당신이 평화를 원하거든 이 문을 열어라, 장벽을 헐어버리라”고 외치던 결단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조국 한반도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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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