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화 변호인단도 힘 못 쓴 까닭
막강한 대원칙 ‘위법수집증거 배제’
드루킹 “완성도 98%”에 김경수는 “고맙다”
업무방해죄 초범(初犯) 대접, 합당한가?
신종 선거범죄 맞선 새로운 입법 필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 7월 26일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입장을 밝힌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미국 드라마, 그 중 범죄 수사물을 즐겨 보는 분이라면 친숙한 대사다. 흔한 공식에 따르면 이럴 때 행동하는 다혈질 형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백을 얻어내거나 증거를 수집하려 든다. 그의 파트너인 냉정하고 이성적인 형사는 바로 저런 대사를 내뱉는다.
물론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 형사사법제도의 본질은 만국 공통이다. 최소한의 사법 정의와 상식이 작동한다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 수사기관은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법을 어겨가며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국민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CSI 요원들이 현장에서 긴장하는 이유
이 원칙은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국내 형사소송법에도 명문으로 규정됐다. 물론 그 전에도 위법수집증거는 증거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으나, 그 원칙을 한층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아예 법으로 못 박았다. 조문은 단 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다.“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실로 막강하다. 대법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 뿐 아니라, 그 증거로부터 나온 2차 증거까지도 증거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2007년 11월 15일 선고한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하여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은 이렇듯 확실하고 강력한 원칙이다. 검찰이 내세우는 증거 중 하나만 허물어뜨려도 유죄를 무죄로 바꿀 수 있다. CSI 요원들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할 때 극도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피의자와 변호인은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가 위법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 테니 말이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하 존칭 생략) 등,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거나 현재 기소돼 있는 인사들이 연이어 재판 결과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면 개탄을 넘어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그들은 힘없이 경찰에 의해 강요된 자백을 하고 부당한 판결을 받을만한 인물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탁월한 변호인단을 꾸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충분한 이들이다. 믿음은 자유지만 법정은 증거와 법률에 의해 판결을 내리는 곳이다.
한명숙과 마찬가지로, 김경수는 유죄다. 특히 김경수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이 사안은 단지 여당과 그 지지층이 사법 질서를 부정하고 있다는 쪽으로만 논의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초호화 변호인단도 동의한 증거
김경수를 변호하기 위해 상고심에 참여한 변호인단은 총 14명. 그 중에서 8명이 전직 판사, 즉 전관이다. 특히 그 중 이상훈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으로 현재 ‘김앤장’ 소속이다. 그 동생인 이광범 변호사는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의 대표 변호사다. 1심과 2심은 대형 로펌 태평양 소속 변호인단이 도맡아왔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대급’ 변호인단이다.과연 이 화려한 변호인단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놓쳤을까. 상식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다음은 허익범 특검팀과 재판부 뿐 아니라 김경수의 초호화 변호인단도 모두 동의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던 사실이다.
1. ‘드루킹’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친노·친문 성향의 파워블로거 김동원은 매크로 조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을 조작하였는데, 그것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
2. 김경수는 드루킹이 ‘킹크랩’이라 불리는 댓글 조작 매크로를 시연하는 현장에 방문했다.
3. 김경수는 드루킹과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이용해 댓글 조작에 대해 의사소통했다.
드루킹은 이미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조작으로 인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그러므로 드루킹과 김경수가 댓글조작의 공범인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 김경수의 초호화 변호인단도 그 지점에 초점을 맞췄다. 드루킹이 저지른 범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드루킹과 김경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서 김경수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부질없는 시도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의 내용 때문이다. 그 대화는 적법하게 증거로 수집됐다. 김경수와 드루킹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경수는 법정에서 증언했다. “킹크랩이라는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에 대해 들은 적도, 시연을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드루킹이 김경수에게 “킹크랩 완성도는 98%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낼 때, 김경수는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김경수 본인이 먼저 뉴스 기사의 URL을 보낸 후, 그것을 드루킹이 받아 ‘처리하겠습니다’, ‘전달하겠습니다’라고 답한 경우도 11차례나 된다. 댓글 조작과 관련하여 지시를 내리고 받는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증거들이다. 이렇게 2017년 대선은 댓글 조작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드루킹의 ‘업적’과 김경수의 형량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맡아온 허익범 특별검사가 7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김경수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죄목이 ‘고작’ 업무방해이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드루킹이 업무방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드루킹과 김경수가 공범임이 확인됐다고 했다. 그러므로 김경수 역시 업무방해죄로 처벌을 받는 것이다.
업무방해죄의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게다가 김경수는 초범이다. 집행유예 없는 징역 2년의 실형은 여타 업무방해죄의 초범들과 비교해볼 때 형량이 낮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사안을 고작 업무방해죄로 의율(擬律)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김경수는 업무방해죄 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다. 그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드루킹의 측근에게 일본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제안한 것은 법이 정한 수당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선거운동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서는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135조 위반이라고 특검은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점에 대해서도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것이다. 하지만 2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법원의 입장이 달라졌다. 김경수와 드루킹 측이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놓고 모종의 거래를 한 점은 사실이나, 그 거래가 당시 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았던 2018년 지방선거에 대한 내용임을 단정할 수 없으므로, 공직선거법 135조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드루킹이 ‘업적’을 세운 건 2017년 대선 때의 일이다. 그런데 왜 특검은 2018년 지방선거를 두고 공직선거법 위반을 따져야 했을까? 선거법의 공소시효가 6개월뿐이기 때문이다. 특검이 출범할 때는 이미 2017년 대선 당시 벌어진 온라인 여론 조작과 그에 따른 매관매직을 벌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특검은 반쪽짜리 기소를 할 수밖에 없었고,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잘못된 행위가 벌어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던 셈이다.
‘촌탁(忖度)금지법’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다. 8000만 개가 넘는 댓글을 매크로 조작으로 퍼부어서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쳐도 고작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나라. 그 댓글 조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김경수는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비서실장이었다. 고작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범죄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면, 당연히 이득을 보는 최종 수혜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애석하게도 현재의 법체계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김경수의 초호화 변호인단의 변호 전략을 떠올려보자. 김경수와 드루킹이 공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공범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그들의 변호 전략이었다. 직접적으로 메시지가 오갔고 그것이 적법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됐기 때문에 그 공범 관계는 입증이 가능했다.
반면 문재인과 김경수의 2017년 대화를 오늘날 우리가 다시 손에 넣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령 입수했다 한들 문재인이 직접 ‘내 선거를 위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라’고 지시했거나, 김경수가 댓글 조작을 하고 보고하며 문재인이 승인하는 내용의 대화를 찾아 그들의 공범 관계를 확인하는 일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렇다. 충성스러운 김경수가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서’ 했을 테니 말이다.
이렇듯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을 일본어로 ‘손타쿠(忖度·촌탁)’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의 공모와 실행은 법으로 처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범으로 엮을 수 있을만한 요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허익범 특검의 수사가 김경수보다 ‘윗선’으로 향하지 못한 이유도 결국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약칭 ‘청탁금지법’을 가진 나라다. 공직자 뿐 아니라 언론인, 심지어 교사도 대가성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 액수 이상의 금품을 받지 못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이렇게 엄격한 원리를 법으로 정해놓은 나라에서 청탁보다 더 해로운 ‘촌탁’은 처벌의 사각지대에 내버려둔 셈인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청탁금지법’보다 더 필요하고 시급한 법은 ‘촌탁금지법’이다.
김경수-드루킹 사건의 판결은 더 분명한 죄목으로 더 큰 형량을 받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김경수에게 고작 2년형이 내려진 것, 그 윗선으로 처벌의 칼날이 올라가지 못한 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선거 범죄에 맞서는 새로운 입법이 절실하다. 촌탁금지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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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