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한국 대표팀이여, ‘삿포로 참사’를 기억하라!

[베이스볼 비키니] 韓 야구, 日만 신경 쓰면 도쿄 올림픽서도 ‘광탈’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1-07-2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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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 대표팀 도쿄 올림픽 우승 꿈꾸지만

    • 개최국 일본 말고도 걸출한 라이벌 많아

    • 아시아 맹주 대만에 2003년 패배

    • 종주국 미국도 올림픽 우승 실패 경험 많아

    • 야구 강국 아닌 이스라엘도 메이저리거만 8명

    • ‘타도 일본’만 외치다간 큰코다쳐

    김경문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6월 16일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뉴시스]

    김경문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6월 16일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뉴시스]

    야구팬이라면 (2021년에 열리는) 2020 도쿄(東京)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야구 경기가 치러진다는 걸 모르는 분이 없을 겁니다.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 대회에 참가합니다. 이전까지 야구를 공식 종목으로 넣은 마지막 올림픽은 2008년 베이징(北京) 대회였고, 한국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 야구는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정식 종목에서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야구가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건 ‘어젠다 2020’ 덕분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올림픽 개혁안을 마련한 뒤 각 대회 조직위원회에 일부 정식 종목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겼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는 △가라테(空手道)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과 함께 야구-소프트볼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3년 뒤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 때는 다시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빠집니다. (가라테도 물론 빠집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대신 2028년 대회 때는 다시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 개최지가 메이저리그 팀이 두 개나 둥지를 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A)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야구팬들은 2021년 이후 오랜 기간 2028년 대회를 기다리게 될 겁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본선 진출에도 실패

    사실 한국 야구팬들은 20년 전에 이미 이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금메달은 준결승에서 한국을 물리친 미국이 차지했다는 걸 기억하고,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는 한국이 금메달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기억하는 팬들도 2004년 아테네 대회 금메달 팀이 어디인지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예 “아테네 때도 야구를 했어?”라고 물어보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한국 대표팀은 이 대회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그래서 올림픽 중계팀도 야구를 외면했기 때문에, 아테네 올림픽 야구는 한국 야구팬들 기억 속에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사건을 흔히 ‘삿포로(札幌) 참사’라고 합니다.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해 열린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장소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돔이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시아권 야구 대회에서 ‘한국의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팀은 일본과 대만뿐입니다. 2003 아시아선수권 본선에 진출한 네 나라 역시 한국과 일본, 대만 그리고 예선 리그 1위 팀 중국이었습니다. 대회는 이 네 나라가 서로 맞대결을 벌이는 방식이었고, 그중 상위 2개 팀이 ‘아테네행 티켓’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중국을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하면 일본이나 대만 가운데 한 팀만 이겨도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대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만은 3년 후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19승(6패)을 기록하게 되는 왕젠민(王建民·41), 2002년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에서 10승 4패 평균자책점 2.71을 기록한 장즈지아(張誌家·41), 2001년 같은 일본 팀에서 11승 6패 평균자책점 3.47을 남긴 쉬밍지에(許銘傑) 등 대만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긁어모아 ‘타도 한국’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대만은 그래도 불안했는지 대회를 앞두고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면서 그해 일본시리즈 우승팀 다이에(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연습 경기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반면 김재박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한국 야구계에서는 ‘대만은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널리 퍼진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현역 메이저리거이던 차오진후이(曹錦輝·40·당시 콜로라도)가 대표팀에서 빠졌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한국 코칭스태프의 시선은 오로지 일본 대표팀을 향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팀 전 인원을 프로 선수로 채운 상태였습니다. 김 감독은 대회 개막을 나흘 앞두고 전력 분석 차원에서 일본 팀이 연습 중이던 후쿠오카(福岡)를 방문했습니다.

    대만 얕보다 큰코다친 한국

    2003년 11월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만과의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이력이 있는 조웅천 현 SSG랜더스 투수코치(왼쪽). 이 경기에서 10회말 카오치캉의 끝내기 안타에 홈을 밟아 결승점을 올린 뒤 두 팔을 든 채 환호하는 대만의 청창민(31번). 그 옆으로 한국 대표팀 포수 진갑용이 보인다. [동아DB]

    2003년 11월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만과의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이력이 있는 조웅천 현 SSG랜더스 투수코치(왼쪽). 이 경기에서 10회말 카오치캉의 끝내기 안타에 홈을 밟아 결승점을 올린 뒤 두 팔을 든 채 환호하는 대만의 청창민(31번). 그 옆으로 한국 대표팀 포수 진갑용이 보인다. [동아DB]

    구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김 감독은 이상일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차장에게 엔트리에서 심수창(40·당시 한양대)을 빼고 조웅천(50·당시 SK 와이번즈)을 넣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해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10월 25일) 이후 사실상 공에서 손을 놓고 있던 조웅천은 그렇게 대표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이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모습을 선보인 게 바로 조웅천이었습니다. 대회 첫 경기로 열린 대만전에서 한국은 9회초까지 4-2로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5회부터 마운드를 지킨 임창용은 9회말 시작과 함께 볼넷 2개를 내줬고 김 감독은 조웅천 카드를 꺼내 듭니다.

    조웅천이 첫 상대 타자였던 쳉차오항(鄭兆行·44)에게 적시타를 내주면서 한국은 4-3으로 쫓기기 시작했고 이후 두 타자는 잘 잡아냈지만 2사 1, 3루 상황에서 천츠위안(陳致遠·45)에게 4-4 동점타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장즈지아를 마운드에 올려 10회초 수비를 삼자범퇴로 막아낸 대만은 10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장타이산(張泰山·45)이 볼넷을 얻어내면서 역전 발판을 마련합니다. 다음 타자 천친펑(陳金鋒·44)은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펑청밍(彭政閔·43)이 우전 안타를 치면서 1사 1, 3루가 됐습니다. 김 감독은 만루작전을 선택했고 쳉차오항을 2루수 뜬공으로 잡아내는 게 성공했지만 2사 후 카오치캉(高志綱·40)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하고 맙니다.

    카오치캉이 조웅천의 싱커를 받아쳐 원바운드로 한국 3루수 정성훈(41·당시 현대 유니콘즈)의 키를 넘기는 끝내기 안타를 치는 장면은 대만 방송국에서 오래오래 국가(國歌) 연주 배경 화면으로 활용했습니다. 이종범(50·당시 기아 타이거즈)이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일본전 때 결승 2루타를 치는 장면이 오래오래 애국가 배경 화면으로 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은 2차전에서 중국에 6-1 승리를 거뒀지만 최종 3차전에서 일본에 0-2로 무릎을 꿇으면서 결국 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일본은 이미 2전 전승으로 아테네행 티켓을 사실상 확보한 상태로 한국과 만났지만 아시아 최강자 자리를 한국에 양보할 생각은 없었고, 한국은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일본·미국도 아테네 올림픽 우승컵 들지 못 해

    아테네 올림픽 때 참사를 겪은 건 한국만이 아닙니다. 4년 전 올림픽 챔피언이었던 미국도 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멕시코에 0-1로 패하면서 본선행 티켓을 얻지 못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빠지면서 일본은 아테네 올림픽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일본은 예선 리그 때 이미 4-9로 패했던 호주에 준결승에서 0-1로 또 한 번 무릎을 꿇으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3, 4위 결정전에서 캐나다를 11-2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따는 데는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주인공은 결승에서 호주를 6-2로 물리친 쿠바였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쿠바를 결승전에서 물리치고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은 7월 29일 오후 7시 요코하마(橫浜) 스타디움에서 이스라엘과 도쿄 올림픽 첫 경기를 치릅니다. 상대 국가 이름만으로도 ‘만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사실. 한국은 WBSC 랭킹 3위고 이스라엘은 24위니까 이런 생각이 아주 틀린 일도 아닙니다.

     2017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을 제치고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한 이스라엘 대표팀. [동아DB]

    2017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을 제치고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한 이스라엘 대표팀. [동아DB]

    도쿄 올림픽, 쉬운 상대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이스라엘에 패배한 전적이 있습니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 1라운드 1차전에서 이스라엘에 1-2로 무릎을 꿇으면서 결국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이스라엘 대표팀에는 메이저리그에서 14년 동안 뛰면서 257홈런을 기록한 이안 킨슬러(39)를 비롯해 전직 메이저리거만 8명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아시아의 야구 강국 대만도 무서운 경쟁자입니다. 한국이 도쿄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한 2019 WBSC 프리미어 12 때도 슈퍼라운드 2차전에서 대만에 0-7로 패했다는 걸 생각하면 (저 역시 절대 바라는 결과는 아니지만) 한 팀에 ‘참사’를 두 번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이기면 조금 배우지만 패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야구 격언이 한국 야구팀에는 통하지 않았던 겁니다. 앞에서 삿포로 참사 경기 내용을 일부러 자세히 쓴 건 ‘패한 경기는 짧게 쓴다’는 한국 언론 전통(?)에 따라 당시 매체 대부분이 이날 경기를 간단히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 10명이 포진한 예선 2차전 상대 미국도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도쿄 올림픽 때도 ‘타도 일본’만 외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늘 삿포로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림픽 #디펜딩챔피언 #KBO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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