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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숙인에게 구걸하는 더 가난한 노숙인들

기초수급비 85만 원 수령 여부 따라 나뉘는 노숙인 계급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초점] 노숙인에게 구걸하는 더 가난한 노숙인들

  • ● ‘코로나19’로 쉼터 출입 제한, 급식소 운영 중단, 폭염 ‘3중고’
    ● 정부 수급비 수령 여부 따라 생활수준 천차만별
    ● “다 똑같아 보여도 다 같은 노숙인들이 아니여”
    ● 기초생활수급 신청 때 주소지 요구…없으면 지원 제외
    ● 코로나19로 민간 급식소 줄며 공공 급식소로 몰려
    ● 전문가 “주소 요구는 행정편의 발상…제도 개선 필요
7월 20일 오후 1시 서울역 광장 풍경.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 노숙인들이 보인다. [오홍석 기자]

7월 20일 오후 1시 서울역 광장 풍경.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 노숙인들이 보인다. [오홍석 기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똑같아 보여도 같은 노숙인이 아니여.”

서울역광장을 둘러보며 입을 여는 노숙인 한모(48) 씨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를 만난 건 7월 20일 오후 1시, 한낮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때였다. 한씨는 그늘 하나 없는 서울역광장 맨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반쯤 마시다 만 소주병이 보였다. 술기운과 더위로 인한 피로감에 응달로 자리를 옮길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듯했다.

“돈이 있으면 뭐 시원한 거라도 사먹을 텐데…”

서울역광장에서 대화를 나눈 노숙인 한모 씨의 소지품. 먹다 남은 소주병, 미지근한 물이 담긴 물병, 기자가 건넨 이온음료, 교회 소속 자원봉사자가 주고 간 빵 등이다. [오홍석 기자]

서울역광장에서 대화를 나눈 노숙인 한모 씨의 소지품. 먹다 남은 소주병, 미지근한 물이 담긴 물병, 기자가 건넨 이온음료, 교회 소속 자원봉사자가 주고 간 빵 등이다. [오홍석 기자]

“이렇게 더운데 여기 계시면 위험해요. 어디 들어가 더위를 좀 피하시죠.”

가까이 다가가 말을 붙이자 그는 “갈 데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이 있으면 뭐 시원한 거라도 사먹을 텐데…”라고 운을 뗀 그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같은 노숙인이라도 형편은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 본 광장 편의점 주변에는 얼음이 담긴 컵을 구매해 음료수를 마시는 노숙인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은 오늘 나라에서 돈을 받았거든. 매달 85만 원씩 들어오니까 나랑은 생활수준이 달라.”



한씨가 말한 돈은 기초생활수급비다.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할 목적으로 매달 일정액을 지원한다. 중위소득 기준 하위 30%에 해당하는 1인가구에게 주는 생활급여는 월 54만 원. 여기에 서울시가 관내 거주자 중 중위소득 기준 45% 이하 1인가구에게 주는 주거급여 31만 원을 더하면 85만 원이 된다. 이 돈은 매월 20일 수급인 통장에 들어온다.

서울시가 3월 발표한 ‘노숙인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노숙인 가운데 약 67%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달리 말하면 노숙인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공적 지원을 못 받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한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한씨는 “나라에서 돈을 받는 노숙인은 요즘 같은 때 쪽방이나 고시원이라도 빌려 더위를 피하지만 나는 갈 데가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폭염을 대비해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이용도 쉽지 않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탓이다. 서울시 자립지원과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침에 따라 수용 인원을 4㎡ 당 한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이전과 비교하면 이용 가능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무료급식 줄어 꼼짝 없이 굶는 노숙인들

노숙인 상당수는 매달 20일 정부로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기자가 서울역을 찾은 7월 20일,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은 노숙인들 술상에는 치킨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오홍석 기자]

노숙인 상당수는 매달 20일 정부로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기자가 서울역을 찾은 7월 20일,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은 노숙인들 술상에는 치킨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오홍석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노숙인이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워졌다. 서울역에서 만난 또 다른 노숙인 이모(56) 씨는 “과거에는 여러 교회가 서울역에 와서 음식을 나눠줬는데 코로나19 유행 후 지원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은 아무리 더워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밥을 굶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장소를 찾아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의미다.

노숙인에게 고정적으로 식사를 제공하던 민간 무료급식소 상당수가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배식 인원을 줄이거나 운영을 중단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민간 무료급식소 ‘참좋은친구들’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매일 400~600명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최근엔 하루 100인분만 준비한다”며 “제공하는 식사량과 함게 후원도 줄어 급식소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우리 급식소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급식소의 경우 집단감염이 발생해 문을 닫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도 전했다.

노숙인들에 따르면 기초수급지원을 받는 사람은 급식소가 문을 열지 않으면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는다. 반면 돈이 없는 노숙인은 꼼짝 없이 굶어야 한다.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는 이상덕 목사는 “코로나19로 대면 예배가 줄면서 헌금도 감소해 교회들이 노숙인 대상 지원을 많이 축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서울시 자립지원과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민간 공공급식이 줄면서 공공급식 장소로 사람들이 몰렸다. 올해에는 관련 예산을 3년 만에 증액했다”고 밝혔다. 하루 급식 인원도 870명에서 1130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노숙인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

“노숙인 복지,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해야”

그렇다면 왜 이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려면 주소지가 필요하다. 거처가 없는 노숙인은 서울시가 제공하는 임시주거지 주소를 바탕으로 기초생활수급비 신청 서류를 작성한다. 서울시가 노숙인에게 주거를 지원하는 기간은 최대 6개월. 일반적으로 한두 달 내에 주거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임시주거지에 거처할 때 서류작업을 하지 못하고 퇴소하는 노숙인들이 다반사다. 주소지가 없으면 신청을 할 수 없는 만큼 수급비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아예 제도 자체를 모르는 노숙인들이 많다.

한때 노숙 생활을 하다 자활에 성공한 박동현 씨는 “노숙인은 생활이 불안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아 이런 일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임시주거지를 나올 때까지 신청 절차를 마치지 못해 아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숙인 복지 제도를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에게 주소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태도”라며 “해당 제도가 수요자(노숙인)보다 공급자(정부) 중심으로 설계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 교수는 “현장 실무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해 필요한 노숙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한 이래 우리 사회에서 줄곧 회자됐다. 노숙인에게도 이 말은 어김없이 적용됐다. 기자가 서울역을 찾은 날은 마침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는 7월 20일이었다. 오후 8시가 되자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는 점차 사라지면서 서울역광장에 곳곳에는 술판이 벌어졌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노숙인들 술상에는 다른 날과 달리 치킨이 한 마리 올라와 있었다. 주종도 소주, 막걸리 등 다양했다. 조금은 ‘여유로운’ 밤을 보내던 그 곳에서 한 노숙인은 “형, 나 소주 한 잔만 나눠주라”하며 이곳저곳 광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노숙인 #서울역광장 #기초생활수급비 #신동아



신동아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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