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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책임 탓한 이재명의 역사 인식

[노정태의 뷰파인더-59] 진보파가 미국 철석같이 믿어…냉철한 인식 필요한 때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책임 탓한 이재명의 역사 인식

  • ● ‘외세 대 자주’ 구도 만들려는 의도
    ● 진중권이 애매한 코멘트 남긴 이유
    ● 엄밀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없어
    ● ‘협정’ 아니라 일본의 외교전·언론전
    ● ‘순수한 피해자’ 전제한 역사해석
    ● 말로는 自主 외치지만 의식세계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맞지만 양국 관계에 ‘작은 그늘’이 있다며, 따지고 보면 분단의 책임도 미국에게 있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지지율 정체기에 ‘외세 대 자주’ 구도로 대선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는 발언이다.

문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같은 날 “한미 간 우호협력을 위해 내방한 분에게 과거 역사를 거론하는 것보다 우리 미래를 위한 협력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발언 내용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자 하는 태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외교’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거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묵인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을까? 그리하여 분단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겪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관점은 진보 진영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진중권이 특유의 촌철살인 대신 애매한 코멘트를 남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밀약’이 애당초 없는 두 가지 이유

엄밀히 말하자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자.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돼갈 무렵, 가쓰라 타로 일본 수상이 필리핀의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장관 태프트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가쓰라가 태프트에게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할 테니, 미국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태프트는 일본에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양국 간 비밀 협정이 체결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필리핀 총독이었을 뿐 미국의 국방·외교 정책을 좌우할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애초 그러한 ‘밀약’을 맺을 권한이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가쓰라가 워낙 집요하게 물어본 통에,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붙여 ‘일본이 한국에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태프트는 1905년 7월 29일자로 미국 외무장관 루트(Eligu Root)에게 전보문서(電文)를 보냈다. 일본에서 이러저러한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업무 메모였다. 1924년 존스홉킨스대 역사학부 교수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그 메모를 발견하고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막후 협상이 존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발칵 뒤집혔다. 설마 싶었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비밀협상’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태프트가 일본을 방문해 가쓰라와 만난 시기는 1905년 7월 27일.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 10월 4일, 친정부성향의 고쿠민신문(国民新聞)에 대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물론 미국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20여년 후 데넷의 연구에 의해 그러한 대화가 사실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튼, ‘협정’은 없었고 ‘비밀’도 아니었으니 ‘밀약’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견해는 필자가 독자적으로 창작해낸 게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에스더스(Raymond Arthur Esthus)가 1959년 제기한 반론을 요약한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는 ‘밀약’을 한 적이 없다. 태프트에게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따라서 어떤 외교적 협상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한 마디 했고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데, 놀랍게도 대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태프트나 미국 측에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던 셈이다.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다!

1905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있지도 않았던 ‘밀약’이 언론에 대서특필됐을까? 일본이 언론을 동원한 외교전을 펼쳤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러일전쟁에서 이겼는데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보가지 못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일본은 여러 단계에 걸쳐 무리수를 뒀다. 굳이 일본에서 태프트와 만나 조선 지배를 양해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끌어낸 후, 그것을 언론에 살짝 흘려 기정사실화하는 수법을 썼다.

이는 마치 마를 캐는 소년이던 서동이 ‘서동과 선화공주는 밤마다 함께 잔다’는 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부인으로 삼은 것과 유사한 수법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꼽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외국과의 동맹도 전쟁도 피하는 성향을 지닌 ‘잠자는 거인’에 가까웠다. 조선 지배에 대해 미국의 공식적 지지를 정상적 경로로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을 확보해야 했던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소 뒤엉킬 위험을 감수하고 외교전, 언론전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 역사학자들도 두루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는 ‘몰래 맺은 협정’이라는 뜻을 지니는 ‘밀약’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했다. 고종이 덕수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벌어졌다는 것. 영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을 지원했고 일본은 러일전쟁을 벌여 개항 50여년 만에 숙적 러시아를 꺾는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미국은 조선을 지켜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순수한 피해자’의 자리에 놓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당시는 나약했던 조선마저도 ‘대한제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시대다. 제국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했다. 지금처럼 국제 질서에도 보편적인 도덕과 당위를 전제하고,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 함께 비난하며 저지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던 20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완전히 오판한 고종이 영국, 혹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을 버리고 러시아의 편에 섰을 때, 러일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스스로를 ‘거대한 체스판’의 전리품으로 올려놓은 채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고 말았다.

반일·반미 무기 삼아 역전 노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의 ‘가쓰라-태프트 발언’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지지율에서 수세에 몰려 있으니 말이다. 반일·반미를 무기 삼아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히 지식인들의 반응이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경우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할 소리는 아니다’ 같은 식의 반응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기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보 성향을 지니는 사람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반대하거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그렇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너무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지금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강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형상 독립 국가였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건 말건 찬성할 이유도 반대할 근거도 딱히 없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이 한반도에 지나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 왜 100년 전 미국이 식민지도 아닌 조선을 지켜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제1조가 근거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던 고종의 논리이기도 하다. 조미통상수호조약 1조에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면 서로 돕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으니 미국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줬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해당 구절은 1858년 청나라가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와 맺었던 텐진조약 중 미국과의 협상문에 들어갔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1894년 청일전쟁에서 미국이 해당 조약을 이유로 청과 군사 협력을 해 청나라를 지켜줬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라고 국제 협약과 동맹 등이 모두 휴지조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약 당사국인 미국은 텐진조약 1조의 ‘불경공모’ 구절을 그저 미사여구로 취급했다. 청과의 조약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 구절을 두고, 미국이 조선에 대해서만은 그 미사여구를 문자 그대로 실천해 주리라 믿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조선 처지에서 항의할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흔쾌히 받아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의 반미주의자·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말로는 민족 자결, 독립, 자주를 외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뜯어보면 진보 측에서 흔히 비난하는 ‘친미주의자’들보다 더욱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겼다! 이 주장은 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전제하지 않는 한, 혹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오직 미국만은 천사처럼 조선을 지켜주었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지 않는 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亡國은 누구의 책임인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묵인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조선 망국의 책임은 결국 조선 스스로에 있었다. 서양과의 접촉 및 근대화가 늦었다. 후발주자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할 지배층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국내 정치의 필요를 위해 국제 정치를 아무렇게나 갖다 썼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건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냉철한 머리로 우리의 객관적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여 담대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이재명 #가쓰라태프트 #일제강점기 #반미 #반일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1년 12월호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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