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버블 나타내는 버핏 지수 사상 최고치
서울 아파트 중위값 4년 만에 두 배
“100년 만의 주택 가격” “모든 것이 버블”
美연준 테이퍼링 공식화…금리 내년 6월 오르나
시중금리 1% 오르면 대출 이자 약 12조 증가
국채 금리도 상승…“재정 확장이 영향”
“거품 언제든 붕괴될 수 있다”
9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오른쪽).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5.21(0.79%) 오른 3201.06으로 장을 마쳤다.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 일대 아파트 전경(왼쪽).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로 주식과 암호화폐, 부동산을 사들인 이들은 자산 버블 붕괴로 시장이 폭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테이퍼링이 한국 자산시장에 미칠 영향과 버블 붕괴 가능성을 진단해 봤다.
버블은 특정 자산 가격이 실질적인 가치를 훨씬 더 뛰어넘는 가격까지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2020년 3월 11일(현지 시간)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 선언 이후 국내 증시는 바닥을 찍었다. 3월 19일 코스피는 1457.64로 마감하며 1500선 마저 붕괴됐다. 하지만 증시는 이후 빠르게 상승해 2021년 1월 7일 종가 기준 3000선을 돌파하며 약 10개월 만에 두 배로 넘게 뛰어오른 뒤 3000선을 오가고 있다.
“에브리싱 버블(everything bubble)”
증시에 거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대표 지표 중 하나는 ‘버핏지수(Buffet Indicator)’다. 각국 증시 전체 시가총액을 GDP(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것이다. 100%가 넘으면 주식이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구루포커스 닷컴(gurufocus.com)에 따르면 한국의 버핏지수(11월 13일 기준)는 121.48%다. 미국의 버핏지수(11월 14일)는 210.20%에 달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7년 1월 5억9400만 원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8월 12억97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풀린 유동성에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까지 가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세계 부동산시장 역시 상승 추세다. 8월 2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분기 주택가격이 상승한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0개국 중(가입 예정국 포함) 37개국이다.
시장에서는 일찍부터 자산 버블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5월 23일(현지 시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0여 년간 데이터를 보더라도 주택 가격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며 “주택 가격이 붕괴하기 2년 전인 2003년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하락한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에 이르러 폭락했다.
9월 제프리 프랑켈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주최한 ‘2021 주요 20개국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주식·채권·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 가격, 특히 위험자산의 가격이 펀더멘털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상으로 폭등하는 ‘에브리싱 버블(모든 것이 버블)’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이퍼링’ 찬바람이 몰아닥친다
11월 3일 미국 뉴욕 맨해튼 뉴욕증권거래소의 장내 TV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날 연준은 경기부양 기조를 접고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를 공식화했다. [AP=뉴시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테이퍼링은 부동산시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외국에서 들어온 투자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한국은행도 금리인상을 한두 차례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금리인상이 이뤄지면 시중에 여유자금이 줄어들어 부동산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금리가 인상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의 이자가 늘고 원금 상환 압박이 발생하며 대출받은 집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이른바 ‘영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이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8월 기준 은행권 신규 대출 중 변동금리 비율은 80.4%다.
코로나19 이후 소득이 줄거나 직장을 잃은 이들의 부담은 훨씬 커진다. 6월 한은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 대출 금리가 1% 오를 때 가계대출 이자는 총 11조8000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5분위 고소득 계층을 제외하고 중·저소득층에 돌아가는 이자 부담은 6조6000억 원이다.
가계 부채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11월 15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글로벌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기준 한국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4,2%로 주요 36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6%포인트 늘어나 상승 속도 역시 1위다.
국채금리 늘면 시중금리도 상승
국채금리 상승도 시중 금리 상승을 불 지피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국채 금리 상승은 경기 회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출 금리를 올려 기업과 가계에 충격을 준다. 11월 1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5bp(1bp=0.01%포인트) 오른 연 2.108%에 장을 마쳤다. 2018년 8월 2일(연 2.113%)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정부 당국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1월 2일 ‘국채시장 점검 긴급 간담회’를 열고 “2조 원 규모의 긴급 바이백(매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국채금리에 영향을 주는 국채 발행량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97조4000억 원, 2019년 101조7000억 원이던 국고채 발행 물량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중점을 둔 2020년에는 174조5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1년 국고채 발행 계획은 176조4000억 원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도 국고채 발행 증가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2020년 4월 2020년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지출 중 3조4000억 원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3월 4차 재난지원금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 패키지 19조5000억 원 중 9조9000억 원이 국채 발행으로 마련된 비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다시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은 ‘전국민 위드 코로나 방역지원금’ 지급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재정 당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6차 재난지원금은 1인당 20만~25만 원 수준으로 10조~15조 원의 추가 세수가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5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부채의 증가는 결국 국채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재정 확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론도 부정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11월 5~6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9명에게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한 찬반을 묻자 60.1%가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지급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2.8%였다. 이 후보는 11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난지원금)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을 철회했다.
“일본 다음은 중국, 중국 다음은 한국”
2008년 10월 29일 ‘동아일보’에 실린 일본 닛케이 주가와 부동산 가격 추이 그래프. 1990년을 기점으로 일본 자산 버블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동아DB]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은 주가도, 부동산도 박스권에 머무르고 있다”며 “자산 버블 상황임에는 분명하지만 금융 당국이 가격이 연착륙하도록 돕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실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양적완화 정책에서 출구 전략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며 “전문가들이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 금리를 갑작스럽게 올리는 등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대중 교수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려면 수요가 줄든지 공급이 늘든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금융위원회 대출 규제 영향으로 잠시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둔화됐을 뿐 가격 하락 추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는 2025~2026년은 돼야 부동산 가격이 확연한 감소세를 띨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버블 붕괴는 한순간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버블은 경제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부풀려졌다 재정긴축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지나면서 꺼지는 양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 일본의 1990년 버블 붕괴가 대표적이다. 김상봉 교수는 “한국도 일본 버블 붕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엔화 가치를 높이기로 합의한 뒤, 수출기업이 가격경쟁력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경제불황의 위기가 찾아왔다. 일본 당국은 정책금리를 1986년 5%에서 1987년 2.5%로 급격하게 인하하고, 각종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는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진다. 1990년 3월 일본 정부는 토지 관련 대출 억제를 목표로 한 총량 규제 정책을 발표하고, 8월 기준 금리를 다시 6%까지 올린다.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급격히 자산을 처분하자 주식시장을 시작으로 버블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이후 일본은 2001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불황 시대를 맞이했다.
최근에는 중국 부동산시장 붕괴 가능성이 고조됐다. 올 들어 중국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빼겠다”며 부동산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9월 중국의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이 채무불이행 위기를 맡기도 했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중국 GDP의 18%는 부동산시장이 차지할 만큼 중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부동산시장은 활황을 맞아왔다. 헝다의 채무불이행 위기를 두고 영국 BBC 중문판은 “중국 부동산이 발전 20년 만에 대시대의 막을 내렸다”는 내용의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부동산 버블 붕괴가 일본 다음은 중국, 중국 다음은 한국’이라는 말이 돌았다”며 “버블은 언제나 붕괴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전 이사장은 “늘어난 가계부채를 잘 관리하고 갑작스러운 금리인상 등 시장에 쇼크를 주는 일을 최대한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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