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법 갖고 반년 가까이 연구하다니
편의점업계는 아예 보상 대상서 제외
영업시간 제한 조치 받지 않았단 이유
딱 행정관료가 내놓을 수 있는 시각
손실보상 차별화, 제도적 책임회피 전형
재난지원금, 자영업자 ‘양극화 머니’ 돼
대선후보 존중해 ‘방역지원금’ 준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를 2주간 연장하기로 결정한 지난 8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 편의점에 폐업으로 마지막 세일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이 제도는 시작부터 논란이긴 했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자영업자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 사례는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확실한 법적 근거가 있어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그때그때 지급을 결정해 왔다. 그러니까 국민이 손해 본 부분에 있어 국가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으니 보상해 준다는 법적 책임의 개념이 아니라, 국민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고 지원해 준다는 일종의 시혜(施惠)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름도 ‘재난지원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업손실 보상금’이다. 여기 들어 있는 ‘보상’이라는 용어, 그게 논란이었다.
총리의 격분, 기재부 1차관의 교체
잠깐 화제를 돌리자면, 사실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또한 그렇다. 왜 모든 국민에게 지원금을 줘야 하는가? 그것도 물품이 아닌 현금으로 줘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하필 그 금액인가? 그것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동일한 액수로 줘야 하는가?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나 기준이 없다. 물론 헌법 제34조 1항 인간다운 생활권, 그리고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부르는 헌법 제119조 2항의 취지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위 법률에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시행 근거를 찾을 수 없다.굳이 찾는다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있긴 한데, 이 법률은 자연재난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처럼 감염병이 유행할 때 전 국토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 명분은 희박하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그간 정부는 법적 명분도 확실하지 않은 지원금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줬고, 우리는 근거도 모르고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 최초로 실시한 것이 이번 자영업자 영업손실 보상이다.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하니까 좋을 텐데 왜 이게 논란이 됐을까? 뭐든 법으로 만드는 일이란 그렇다. 한번 법으로 제도를 확정하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보상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런 이유로 자영업자 영업손실 보상 제도를 입법하자는 논의가 시작됐을 때 기획재정부 1차관도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고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총리가 격분했고, 여당도 반발하자, 역시 관료들은 당청의 지시에 따라 보상 법안을 만들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기재부 1차관은 곧 교체됐다.
이번 자영업자 손실보상의 대상 기간이 2021년 7월 7일부터인 이유는 근거가 된 법률의 공포일이 7월 7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법률에 소급 적용은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동안 재난지원금은 특별한 법률적 근거마저 없었으면서, 또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특별법으로 제정하면 되는 것을, 굳이 이렇게 옹색하게 소급입법금지 원칙까지 가져온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입법화하자는 취지는 거창했으나 추진 과정과 결과를 살펴보면 초라하기만 하고, 오히려 법을 근거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법률(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대한 법률)에 몇 개 조항을 추가한 수준이다. 기존 법률의 ‘폐업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항목에 감염병이 유행했을 때 어떻게 손실보상을 해줄 것인지, 새로운 조건을 상정해 5개 항을 추가했다. 수고한 공직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런 법을 갖고 반년 가까이 연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단출하다. 자영업자들은 시시각각 목에 칼이 들어오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교통사고로 쓰러진 사람 옆에서 ‘법이 있어야 도와줄 수 있다’면서 억지춘향식으로 법을 만든 풍경이라 말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리더십 필요할 땐 법을 핑계 삼다니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실시한 ‘손실보상’이건만 자영업자들의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세상 어떤 보상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누구도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보상이 됐기 때문이다.일단 이번 보상의 주요 대상인 식당과 카페 점주들은, 피해는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데 보상은 3개월이니, 보상금 액수가 기대보다 작아 불만이다. 그리고 필자가 속해 있는 편의점업계는 이번에 아예 보상 대상에서 제외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피해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묵묵히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의 고통을 이겨냈던 대다수 자영업자들로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격앙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다른 많은 업종도 제외됐지만 그중에서도 편의점은 왜 제외됐을까? 그것부터 살펴보자. 이번 보상의 대상은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① 집합금지,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이행한 업체여야 하고 ② 경영상 심각한 손실을 입었어야 하며 ③ 일정 매출 이하의 소상공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편의점은 여기서 1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유지했으니 영업시간 제한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식당과 카페는 지역에 따라 밤 9~10시 의무 폐점 조치가 내려졌다.
보상의 초점이 ‘손실’이 아니라 ‘영업시간 제한’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이번 보상의 성격을 짐작게 한다. 정부의 직접적 ‘행위’로 인한 피해에만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정부)가 확실히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이다. 딱 행정관료가 내놓을 수 있는 시각이다.
법을 만들 때는 더욱 폭넓고 확실한 보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재정 부처 관료들의 반대의견을 억누르면서까지 입법을 강제하더니 결과는 반대로 갔다. 사실 많은 법률이 그러지 않을까? 피해자의 권익 보호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법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축소하며 한계를 지으려는 방향으로 악용(?)되는 경향이 짙다. 이번 보상 법안도,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런 대표적 사례가 됐다.
결단을 주저하는 정치인은 자꾸 법을 명분으로 삼는다. 겉으로는 그것을 법치주의로 치장하지만, 시간을 끌다 보면 종국에는 약자의 피해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정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법치를 존중했을까? 정작 법을 지켜야 할 때는 지키지 않다가, 결단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에는 법을 핑계로 내세우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굳이 ‘업종’을 따진 그 꼼꼼함
9월 15일 서울 명동의 한 상점에서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은 모습. [뉴스1]
결국 초점은 행정명령 자체가 아니라 ‘손실’에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조치로 누가 가장 피해를 보았느냐는 것이다. 명령을 받은 업체뿐 아니라, 그 명령의 가까운 범위에 있는 모든 업체가 함께 피해를 보았다. 예를 들어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으니 야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상권이 황폐화됐고, 상권에 있는 모든 업종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편의점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다. 특히 유흥가와 오피스 상권에 있는 편의점은 치명적 영업손실을 보았다. 그런데 정부 입장은 ‘우리가 직접 명령을 내린 업종에 대해서만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제도적 책임 회피의 대표적 사례다.
보상금을 산정하는 방식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7~9월 매출에서 2021년 같은 기간 매출을 비교하고, 거기에 감소한 만큼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매출액으로 보상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감안해야 하는데, 그래서 거기에 인건비와 임대료를 제하고, 기존 영업이익률을 감안해, 산출된 결과의 80%를 보상해 주는 계산법이다. 이런 과학적(?) 방식에 대해 중기부 장관은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자랑한 것이다.
사실 한국이니까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한국은 모든 정보가 통합돼 있고, 그것이 정부로 집중돼 있고, 게다가 전산화돼 있으니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전산화가 더뎌 지원금 신청서 하나 제출하려고 관공서를 몇 차례 드나들며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는 일본의 사례와 다르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발달했다. 이번 보상금도, 대상자가 신청서를 접수할 필요조차 없이 정부에서 ‘당신은 대상자’라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통보한다.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업자번호를 입력하면 ‘어느 정도 보상금을 받을 것’이라는 결과가 바로 도출됐다. 이의가 없으면 이튿날 바로 은행 계좌로 입금됐다. 개인과 기업의 모든 정보가 중앙집중형으로 통합 관리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이런 시스템이 팬데믹에는 긍정적 요소로 발현됐지만 앞으로 다른 일에도 과연 그러할지, 그것도 앞으로 되돌아볼 일이다.)
이번 확인 보상의 근거는 대체로 국세청 자료였다. 우리는 신용카드 사용 비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거의 그대로 정부에 노출된다. 4대 보험 때문에 인건비도 신고해야 하고,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받으려면 임대료도 신고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는 전산 프로그램 하나만 만들면 얼마를 보상해 줘야 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상하다는 것이다. 업종을 따질 필요도 없이,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는 금방 파악된다. 그럼에도 굳이 ‘업종’을 거론했다. 어떤 업종은 영업시간 제한을 받았으니 주고, 어떤 업종은 받지 않았으니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손실보상의 대상을 차별화했다. 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옹색한 변명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명박式 ‘낙수효과’의 재난版 버전?
“정부가 일부러 감염병을 퍼뜨린 것도 아닌데 왜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옳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입장이라면 얼마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은 왜 주었는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반대한 사람이 전체 자영업자 영업손실 보상까지 반대한다면 일관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에는 찬성하면서 후자에 대해서는 “자영업자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탓한다면 자신의 논리 모순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전 국민 재난지원금에는 몇 가지 나름의 논리가 있다. 가장 흔한 주장이 이른바 ‘선순환 효과’다. 국가에서 돈을 뿌려 전 국민에게 나눠주고, 그것이 자영업자에게 소비되면 결국 자영업자에게 이득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추구했던 이른바 ‘낙수효과’의 재난판(版) 버전이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시장의 실패’를 조정하는 역할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시장 경제는 경쟁의 원리에 따라 돌아가지만 경쟁에는 반드시 실패하거나 낙오하는 참여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에 대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거나 “낙오자는 그냥 낙오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가혹한 자본주의다.
그런 논리라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정부가 존재할 이유가 별로 없다. 시장이 다 해주는데 정부는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것을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원래 뜻은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야말로 시장의 실패에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다.
각설하고 정부의 역할이란, 시장의 힘으로 도와줄 수 없는 실패자와 낙오자들에게 공동체의 힘으로 패자부활전과도 같은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이자 책임이고 ‘의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일을 단순히 ‘복지’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시혜의 의미를 넘어, 우리 체제를 지킨다는 ‘수호’의 차원에서 패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수호할 ‘사회적 안전’이란 무엇인가? 그야 ‘가장 피해를 본’ 사람에게 지원을 집중해 체제가 붕괴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긴박한 상황이니 지원의 방식은 가장 직접적이어야 하고, 또 빨라야 한다. 사람은 쓰러져 죽고 있는데, 건너고 건너서 주는 식의 도움이라면 효과는 반감된다.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고 시장에서 알아서 소비하라고 하면 물론 혜택을 받는 자영업자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영업자는 이 시국에 고통을 당하는 자영업자일까, 그렇지 않은 자영업자일까? 결과는 우습게도, 코로나 시국에 오히려 콧노래를 부르는 자영업자가 더욱 만세를 부르는 형국이 됐다. 간단히 주위를 둘러보아도, 재난지원금을 받아 일부러 영세 자영업자를 찾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원래부터 유명한 외식업체에 줄을 서는 경향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6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상공인 손실보상 법제화를 위한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난지원금 후폭풍…자영업자 부익부 빈익빈
2020년 지급된 전 국민 1차 재난지원금이 주로 어디에 어떻게 소비됐는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추적했더니 가장 의미 있는 매출 변화가 일어난 업종은 의류와 가구 판매 업체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가구 업체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거기에 정부가 더욱 윤활유를 부어준 격이다.의도하지 않게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자들 사이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부추기는 ‘양극화 머니’가 돼버렸다.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만 더욱 주워 담은 것이다. ‘더욱 주워 담은’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과연 정부의 역할에 부합하느냐는 말이다. ‘사회적 안전’의 원칙을 따르고 있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사람이 먼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비아냥거리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주워 담은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었을까? 불가항력의 위기에서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피해자를 공동체의 힘으로 집중 구제하는 게 사회적 안전을 추구하는 정부의 역할일진대,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 버렸다. 대체 왜 그랬을까?
“다른 취약계층도 많은데 왜 굳이 자영업자를 지원해 줘야 하느냐.” “원래부터 장사가 안됐던 자영업자도 있는데 왜 그런 사람들까지 지원해 줘야 하느냐.”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반대하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백번 양보해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있다. 원래부터 강력한 시장주의자였구나, 건전한 국가재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는 찬동하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역시 굉장히 어리둥절해진다.
이번 영업손실 보상에 소요된 정부 예산은 2조4000억 원이다. 혜택을 받은 자영업자는 약 80만 업체. 국내 자영업자 숫자가 600만~900만 명으로 추산되니,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약 10%가 해당하는 셈이다. 간단히 산술할 수는 없지만, 모든 자영업자가 혜택을 받으려면 25조 원 정도면 된다는 말이다. 손실보상은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만 대상으로 하니 필요한 예산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전체 자영업자 중 70~80%가 소득이 줄었고, 20~30%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거칠게 추산하면 20조 원 정도가 필요한 셈이다. 이것이 3개월 손실분이니 1년이면 80조 원 정도다. 그거면 전체 자영업자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10월 8일 전국자영업자협의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참여연대 등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코로나19 자영업자 100% 손실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제대로 된 손실보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보인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買票의 힘, 가혹한 슬픔
지금까지 정부는 5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여기에 직접 소요된 예산을 합치면 약 70조 원 정도가 된다. 간접 예산을 포함하면 100조 원이 넘는다. 물론 그런 예산을 전부 자영업자 살리기에 투입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 9월 전 국민(87.7%)에게 나눠준 1인당 25만 원의 재난지원금은 과연 꼭 필요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의문이 남는다. 거기에 쓰인 예산이 8조6000억 원이었다. 그 예산만 업종과 관련 없이 전체 자영업자에게 실손 보상했어도 이토록 간절히 생존의 비명을 지르지도 않을 것이다.앞에 소개한 것처럼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영업자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지원하기 쉬운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정부는 손쉬운 ‘일괄 타결’ 방식보다는 갈수록 이상한 선별 지원 방식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꾸 자영업자들을 이른바 ‘갈라치기’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팬데믹의 상황에서도 소득에 변화가 없는 국민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금을 나눠주면서, 소득이 줄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자영업자에게는 원칙(?)에 따라 줄 수 없다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지난 2년간 반복하고 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이런 와중에 6차 재난지원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에도 ‘전 국민’이 대상이다. 여당 대통령 후보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재정 부처 장관은 물론 총리까지 난색을 표하더니, 갑작스레 “후보의 입장을 존중하는”(11월 9일 신현영 민주당 원내대변인) 차원에서 지급을 서두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올해 걷을 세금을 내년에 걷는 기상천외한 수법까지 거론됐다.
게다가 더는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분마저 옹색해졌는지 이번에는 ‘방역지원금’이라는 웃지 못할 이름까지 붙였다. 세상에 ‘대통령 후보를 존중하여’ 재난지원금을 주는 나라가 민주국가 가운데 또 어디 있을까. 공개적 매표(買票) 행위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모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결국 11월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고집하지 않겠다. 여야 합의 가능한 것부터 즉시 시행하자”고 쓰며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을 철회했다.)
이런 상황에 또 어떤 사람들은 “너도 받았으면서 잔말이 많구나” 하는 식으로 비웃는다. 이런 것이 바로 매표의 힘이고, 이성이 뭉개진 세상을 견디는 가혹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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