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출마 선언한다기에 ‘안 된다’ 만류”
완주 불투명하나 與野 사이 틈새 존재
李·尹 법적 리스크에 지지율 요동 가능성
김종인·이준석 ‘安 고립 작전’ 위협 요인
李, 대장동 넘고 尹과 박빙이면 安 존재감↑
단일화 시 이준석·원희룡과 차차기 경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40.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율 30.6%. 이 후보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보다 10.1%포인트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조차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뉴스1’ 의뢰로 11월 7~8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 11월 9일 발표 자료. 이를 포함해 이 기사에 나온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안철수에게 열린 좁은 문
11월 1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세 번째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그가 이번 대선을 완주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은 ‘완주 불가’로 모인다. 그럼에도 정치는 생물이고 틈새는 있게 마련이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지층의 적극적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각 진영에 착근(着根)하지 못한 상태다.안 대표에게 출마의 공간을 열어준 이들은 바로 유력 정당 대선후보들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에 발목이 잡혔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이 후보를 지목하며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 후보는 검찰 수사를 통해 대장동 사건과 무관함을 입증해야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상 징후는 당내 경선에서 이미 나타났다. 민주당 대선 경선 막판 민심이 요동치면서 이 후보는 간신히 과반 득표했다.
국민 다수는 이 후보가 대장동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의심한다. 엠브레인퍼블릭이 문화일보 의뢰로 10월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월 1일 발표한 결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6.5%가 ‘당시 시장이던 이재명 후보’를 꼽았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의원’을 택한 응답자는 29.6%였고, 모름/무응답은 13.9%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26~28일 실시해 10월 29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대장동 사건에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65%였고 ‘특검은 필요 없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대장동 사건은 지난 8월 말 경기 지역 한 언론사의 보도로 촉발됐다. 정치권 전략가로 통하는 A씨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만약 대장동 사건이 조금만 더 일찍 터졌다면 이 후보가 이낙연 전 대표와의 당내 경쟁에서 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국민의힘 처지에서 보면 대장동 사건은 대선 직전 터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정권교체는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본인은 물론 처가 리스크로 인해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는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현재 이 사건을 포함해 총 4건의 ‘윤석열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부인 김건희 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고, 장모 최모 씨의 경우 요양시설 불법 개설 및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윤 후보는 또 당내 경선 기간 정치적 경험 부족, 위기관리 실패 등의 허점이 노출돼 비호감도가 한층 높아졌다.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되면 안 대표의 입지는 공고해질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안 대표가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 후보 단일화는 범야권 대선 승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단일화의 두 가지 전제 조건
예컨대,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2022년 1월, 이재명 후보와 안철수 대표의 양자 가상 대결 결과 두 사람의 지지율이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된다면?이런 가정의 전제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안 대표가 차기 대선 완주를 고집한다. 둘째, 대장동 사건이 묻히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든다. 이럴 경우 안 대표는 제3의 후보로서 가치를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 윤 후보와의 범야권 후보 단일화에 착수한다면 ‘철수’가 아니라 ‘승자’가 될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다.
이쯤 되면 안 대표가 단일화 과정에서 윤 후보에 패한다 할지라도 김대중(DJ)-김종필(JP)의 ‘DJP 연합’에 버금가는 실익을 챙길 수 있다. 이는 국민의당에서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고심하는 많은 정치인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지금 안 대표의 생각은 이런 최상의 시나리오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윤석열 후보는 정권교체 여론을,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세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양자 모두 법적인 리스크로 인해 불안한 출발을 했고, 향후 선거 과정에서 지지율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회의 문이 열렸다고 판단해서일까. 안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할 날, 그의 얼굴에선 조급함이 묻어났다. 어정쩡한 대선 출마 타이밍은 그가 지난 10년간 걸어온 정치적 흑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안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고 보낸 지난 10년의 세월은 정치적 오판의 연속이었다. 2011년 9월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했으나 박원순 무소속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해 버렸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며 또다시 정치력의 한계에 직면했다. 현실 정치에서 지지자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혹평을 받을 뿐, 미담(美談)으로 남질 않는다.
안 대표를 지지하고 따랐던 정치적 동지들도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났다. 결정적 순간 주변 조언을 무시한 채 독단적 리더십을 고수해 온 결과였다. 이후 안 대표의 정치 행로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았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했다가 문재인 당시 대표와의 갈등으로 결국 탈당했다.
2016년 국민의당 창당 후 38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며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나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 이듬해인 2017년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하고 만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한 세력과 합당,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으나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지며 또 3위로 낙선했다. 이어 안 대표는 2020년 정계 복귀 후 국민의당을 재창당했고, 그해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3명을 당선시켰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김종인·이준석 고립 작전에 예봉 꺾이나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왼쪽부터)가 11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6회 전국여성대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 대표 측과 가까운 한 야권 인사는 “안 대표가 지난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싶다 해서 ‘그건 안 된다’고 만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인사는 “이재명, 윤석열 후보 간 진흙탕 싸움이 정점을 찍는 순간 유권자들은 다시 대안을 찾게 된다. 그런데 안 대표가 참지 못하고 어정쩡한 순간 출마를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가 대선을 완주할 경우 야권 분열은 불가피하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분열로 인해 완패를 경험한 우파 진영이 걱정하는 대목이다. 안 대표 지지자들도 단일화 문턱에서 그가 다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손잡고 ‘안철수 고립 작전’에 나서 조기에 안 대표 예봉을 꺾는다면 후보 단일화는커녕 현실 정치에서 퇴출될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실례로, 그는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거대 야당의 조직력과 위세에 눌려 최종 단일화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석패했다. 안 대표를 겨냥한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의 견제와 비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3석을 가진 국민의당과 안 대표에게 내년 대선을 치를 만한 여력은 없어 보인다.
후보 간 단일화는 두 사람이 힘을 모아 1위 후보를 이길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 가운데 누군가 압도적 지지율을 형성하게 되면 단일화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11월 12~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월 15일 발표한 결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윤 후보는 45.6%를 얻어 이 후보(32.4%)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이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4.9%, 안 대표는 4.0%, 김동연 새로운물결 창당준비위원장은 1.1% 순이었다..
이처럼 양자 간 대결에서 특정 후보가 압도적 지지율을 보인다면 범야권 단일화 요구는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 한 인사의 관측이다.
“안 대표는 결국 대선을 완주하지 못할 것 같다. 후보 단일화 경선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후보의 손을 잡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때 협상 카드로 종로 보궐선거 출마와 국무총리 정도가 가능하다 보는데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전 위원장이 있어서 이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제3지대 마지막 시험대
안 대표가 대선을 완주하려면 연말까지 대선후보 지지율 두 자릿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업체가 11월 4일 발표한 전국 지표조사(NBS)에 따르면 대선 지지율에서 윤 후보 35%, 이재명 후보 30%, 안 대표 7%, 심 후보 6% 순으로 나타났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안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제3지대 공간은 협소하다. 이 후보가 대장동 의혹 사건을 극복하고 윤 후보와 박빙 구도를 이룬다면 그땐 안 대표의 협상력과 존재감이 살아날 수 있다.”
안 대표의 세 번째 대선 도전은 한국 정치에서 제3지대의 존망을 결정할 마지막 리트머스 시험지다. 안 대표가 윤 후보와 단일화에 나선다면 성패와 상관없이 제3지대는 소멸한다. 안 대표가 단일화를 성공적으로 매듭짓는다면 제 1야당에 들어가 정치적 입지를 재구성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이를 통해 차차기 대선 도전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국민의힘에서 차차기 대선 경쟁을 펼칠 인물로는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전 제주지사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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