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 10명 중 1명이 난임 치료로 태어났다. [GettyImage]
내년 선출되는 제20대 대통령께서는 저출산 대책에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가 난임 시술 현장의 현실을 좀 더 아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현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화로 난임 시술 지원 횟수를 늘리고, 난임 부부가 부담하는 비용 부담을 줄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난임 부부의 부담을 완전히 덜어주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라고 해도 누구나 난임 치료비에 대해 보험 혜택을 받는 건 아닙니다. 정부의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으려면 소득 기준 중위 180%(세전 2인 가구 556만 원) 이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맞벌이 부부이거나 고소득자는 난임 치료비와 시험관아기시술(IVF) 비용을 전액 자비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IVF 특성상 수차례에 걸쳐 도전을 거듭하기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많이 낸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돼야 하느냐”고 한숨을 짓습니다. 난임 치료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거나 소득 기준, 횟수 제한 등이 사라진다면 출생아 수가 분명히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난임 시술 지원이 저출산 해소 지름길
한국의 난임 전문의들은 난임 치료를 위한 대부분의 신기술을 논문으로만 접할 수 있지, 직접 해볼 수 없습니다. 난임 치료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최신기술 대다수가 현행법상 불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난임 부부들입니다.다른 의료와 달리 생식의학 분야는 해마다 최신 기술이 쏟아져 나옵니다. 대부분 ‘임의비급여’에 해당합니다. 임의비급여 치료란 보험수가가 정해지지 않은 진료 항목으로 병원이 임의로 가격을 매길 수 있습니다. 자칫 과잉 치료와 막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정부에서는 병원을 규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난임 치료에서만큼은 제한적으로 임의비급여 항목의 예외 인정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법적 소송을 치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수차례에 걸친 IVF에서도 임신에 실패한 난임 여성의 경우 최신 신기술에 목을 맬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난임학계에서 효과가 입증되는 처방이나 시술이 임의비급여로 묶여 있어 환자가 자비 부담(100%)을 하겠다고 해도 난임 전문의들은 도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난소에서 난자를 키워내지 못하는 난소기능저하(폐경에 가까운) 여성 중에서는 건강한 난자를 공여받아 임신을 시도하고 싶어 하지만 현행 생명윤리법상 쉽지가 않습니다. 난소 기능이 떨어져 난자를 키워낼 수 없는 경우 공여난자제도(타인에게 난자 제공)의 길이라도 열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혹시 해외에서 한동안 떠들썩했던 엄마 둘, 아빠 한 명의 ‘세 부모 아기’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기증된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난자에서 핵(염색체, DNA)을 제거하고, 이 자리에 엄마 핵(염색체, DNA)을 이식해서 정자(아빠)와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기입니다. 영국은 2015년에 세계 최초로 ‘세 부모 아기 체외수정법’을 합법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분열의 에너지 발전소입니다. 만약 유전적으로 난자의 미토콘드리아에 결함이 있거나 극심한 난소 기능 저하의 난자라서 미토콘드리아가 심각하게 부실하다면 정자와 수정돼도 세포분열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노화된(문제가 많은) 난자에 건강한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세포질만을 이식해 온전한 난자를 만드는 것은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20년 전 한국에서 난자의 ‘세포질 주입’이라는 시술에 성공한 바 있어 임상 경험이 가능해진다면 국내 난임학계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난임 여성의 상당수가 배란 장애로 자연 임신에 실패합니다.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배란일을 체크하면 임신율을 높일 수 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난임 시술을 위한 초음파 검사는 보험 적용이 되지만, 배란 체크만을 위한 초음파 검사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란 날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두세 번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야 하는데, 이래서야 어찌 가임여성이 산부인과 문턱을 편하게 넘어 다닐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가 초저출산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임신을 기다리는 부부의 난임진단 검사비를 건강검진 항목으로 인정해 저렴하게 해줘야 합니다.
한 말씀 더 드리면,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결혼과 출산이 늦은 경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의 난자를 냉동 보관해 놓는 것도 저출산 문제를 푸는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40대부터는 빈약한 난자만 남은 상태가 돼 난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난자 냉동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미혼여성의 난자 냉동 보험급여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자기 난자를 보관할 수 있는 자기난자은행(SEB·Self Eggs Bank)의 국가적 지원을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IVF에서 배아를 동결 보존하는 데도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생명윤리법상 배아의 보존 방식이 보존 기간 최장 5년 후 자동 폐기가 원칙으로 돼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IVF로 첫째를 낳은 부부가 둘째를 임신하기 위해서는 5년 안에 난임병원을 방문해야 합니다. 만약 첫째 아이를 키우다가 불행한 일을 겪게 되어서 뒤늦게 둘째 아기를 가지려면 또다시 IVF를 위해 난자를 키우고 채취하고 체외수정을 시도해야 합니다. 난소기능 저하 판정을 받으면 임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배아 동결 보존뿐만 아니라 정자와 난자를 장기간 동결 보존하는 경우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급합니다.
요즘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습니다. 난임 휴가를 공식적으로 보장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제대로 써보지 못한다는 여성이 더 많습니다. 직장 여성들은 “난임 휴가를 바라지 않는다. 난임 치료를 위해 2시간만 외출을 허락해 줘도 난임 병원에 다닐 만하겠다”고 하소연할 정도입니다. 난임 휴직도 좀 더 수월해져야 합니다. 난임 휴직계에는 진단명과 진단 기간까지 적어야 합니다. 난임 치료는 골절이나 일반적인 질병의 치료처럼 명확하게 완치 기간을 정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난임 치료를 위한 휴가와 휴직은 ‘복지’의 일환으로 질병으로 인정하되 치료 기간에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결국에는 인구가 곧 국력
남성 불임 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서 공공 정자은행 운영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프랑스의 중앙정자은행, 영국의 공공정자은행을 떠올리면 난임 전문의로서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정자은행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니까요. 정부가 정자은행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앞장서서 혈액원과 같은 기관을 설립해 관리 및 공급한다면 남성 불임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정자의 불법 거래를 막고 해외로 나가려는 남성 불임으로 인한 난임 부부들을 붙잡을 수 있고요.앞으로는 혼자서라도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싶다며 해외 정자은행을 이용하는, 방송인 사유리 같은 여성이 더 늘어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께서는 젊은이들의 변화하는 의식에 발맞추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과 지원을 고민해야 합니다. “백성의 숫자가 국부를 만들어낸다”고 한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왕의 명언이 다시금 와닿는 오늘입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한 나라의 국력을 결정짓는 요소라지만 결국에는 인구가 곧 국력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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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