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세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
평범한 대학생, 해외 펜팔 사이트 만들었다 ‘한국 알리기’ 활동 시작
해외 지도 ‘일본해’ 표기 바로잡으며 ‘사이버 외교’ 중요성 깨달아
역사학자, 지리학자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1999년 3%에 불과하던 ‘동해’ 표기, 20년 만에 40%로 증가
스마트폰 하나면 나도 외교관, 한국 정보 바로잡아야
독도 너머 광활한 바다 영토를 보자
‘반크’가 제작한 한국 지도 앞에 선 박기태 단장. 최근 반크는 해외 지도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잘 만든 한국 지도를 세계 각국에 배포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홍중식 기자]
미국 정치학자 아서 클링호퍼의 책 ‘세계지도에서 권력을 읽다’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럽이 위, 아프리카는 아래쪽에 있는 지도를 보며 자랐다.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 지리를 익혔다. 그 경험이 우리 가치관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될까.
클링호퍼는 계속 말한다. “지도에는 언제나 제작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들어가 있다. 지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 제작자의 의도를 밝혀내는 일이다.” 박기태 ‘반크(VANK)’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 계속 이 문장을 곱씹었다.
반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다. 디지털 공간에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지도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활동을 해왔다.
잠시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으로 돌려보자. 반크 창립 전, 세계 지도 제작사 대부분은 한반도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라는 이름을 적었다. 1999년 기준으로 지도에 ‘동해’가 단독으로 표기되거나 ‘일본해’와 병기돼 있는 사례는 약 3%에 불과했다. 지금은 세계지도의 약 40%에 ‘동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 중심에 반크, 그리고 박 단장이 있다. 박 단장은 “반크 초기엔 이미 출판된 해외 지도 표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요즘엔 우리가 직접 지도를 만들어 세계에 배포하는 일도 한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독도를 지키고, 한국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 반크 활동을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 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그렇다. 현재 반크에는 외국인 인턴이 4명 있다. 반크에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한국어로 대화한다. 영어를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심지어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외국인이 많다. 반크 창립 당시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때는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하면 대부분 ‘한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 우리나라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으니 기분이 남다르겠다.
“기쁘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옛날엔 외국 교과서에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적혀 있어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잘못된 정보가 퍼질 가능성도 더 크다. 나는 지금이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얻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잘못 기록된 지명, 역사를 고치고자 더욱 노력해야 할 때다.”
- 반크가 할 일이 더 많아진 건가.
“그렇게 말씀하는 분이 적잖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반크가 할 일’은 없다. 우리 모두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이 시대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된 지명, 역사 정보 바로잡기에 나설 수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은 특별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니다”
박기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그는 1999년부터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해왔다. [홍중식 기자]
“요즘은 해외 사이트를 보다 한국이 잘못 소개돼 있는 걸 발견하면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면서 반크를 찾는 분이 꽤 계신다. 사실 우리는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는 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건 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반크 활동을 하기 전까지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다른 반크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인턴을 제외하면 반크 멤버는 나까지 딱 5명이다. 우리 모두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다.”
박 단장에 따르면 반크가 태어난 1999년, 그는 서울 한 대학 일문과 학생이었다. 교양과목으로 ‘홈페이지 만들기’ 강의를 들은 뒤 “뭐라도 해보자” 싶어 ‘해외 펜팔 사이트’를 만든 게 반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 해외 펜팔 사이트가 어떻게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됐나.
“시작은 단순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때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펜팔 사이트를 만들고 거기에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라는 소개 글을 올렸다. 이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한국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더라. 위치를 알려주려고 포털사이트에서 ‘Korean Map(한국 지도)’을 검색했다. 그때 처음 본 지도가 내 삶을 바꿨다.”
- 어떤 지도였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 지도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시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 내 눈에도 그 지도는 뭔가 이상했다. 일단 동해 자리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었다. 또 독도에는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리앙쿠르 암초(다케시마)는 1950년 한국이 점령했다. 그래서 일본이 분노하고 있다’라는 주석까지 달려 있었다. 순간 갈등이 됐다. 이 지도를 그대로 외국인 친구한테 보내면 그는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알게 되지 않겠나.”
- 그래서 어떻게 했나.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도에 표기된 지명을 고쳤다. 한국 위치를 묻는 사람들한테 그 지도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한국이 어디야?’라고 묻는 사람 수는 얼마 안 됐다. 외국인 대부분은 한국에 관심이 생기면 직접 ‘Korean Map’을 검색할 테고, 그중 상당수가 나처럼 잘못된 내용이 적힌 지도를 보게 될 것 아닌가.”
박 단장은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검색해 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사(社)가 만든 지도에도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지도가 마찬가지였다. 일본해와 리앙쿠르 암초, 다케시마에 대한 정보는 수없이 많은데 동해나 독도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지도 제작 기관 가운데 특히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두 곳, CIA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 편지에는 뭐라고 썼나.
“내 소개를 한 뒤 ‘귀 기관에서 만든 지도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는 바다를 한국 사람은 ‘동해’라고 한다. ‘일본해’는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이름이 두 개인데, 일본 이름만 적는 이유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일본인이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강제로 일본 이름을 써야 했다.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우리는 한국 이름에 더욱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양쪽 상황을 다 살펴보기 바란다.’”
- 편지에 ‘당신들 지도 표기가 잘못됐다’고 썼을 줄 알았는데.
“당시 나는 뭐가 잘된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이름이 두 개인데 하나만 적는 건 이상하지 않나’라고 느꼈을 뿐이다. 그 생각을 진솔하게 적어 보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 기적이라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답장이 온 거다. 심지어 ‘일본해 단독 표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받은 편지를 당시 운영하던 펜팔 사이트에 올리자 다른 회원들도 하나같이 ‘신기하다’ ‘놀랍다’고 했다. 돌아보면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 처음 쓴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다면 삶의 방향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럭저럭 취업을 하고, 동해나 일본해 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인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이후, 더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세계인이 한국을 모르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받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인한테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세상이 우리에 대해 알 수 없었구나.’ 이 깨달음이 ‘사이버 외교사절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박기태 '반크' 단장이 '반크'가 제작한 지도를 앞에 놓고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 주위로 광활한 바다 영토가 보인다. [홍중식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변화
박 단장은 이때부터 펜팔 사이트 친구들과 함께 세계 여러 지도 제작사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답장’이 큰 무기였다.“당시 내가 e메일에 쓴 문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내게 일본해 표기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고 적었다. 그 회사가 실제로 지도를 고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수정 약속 편지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지도 제작 분야에서 가진 권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세계 많은 지도 회사가 그 영향을 받았다. 자사 지도에 일본해와 더불어 동해라는 이름을 적는 곳이 하나둘 늘어났다.”
반크는 이후 DK라는 세계 최대 교과서 출판사에도 일본해 단독 표기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DK가 자사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것 또한 세계 수많은 교과서 출판사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 단장은 “반크 활동을 시작하던 시절, 나와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청년이었다. 권력도 자본도 없었다”며 “다만 우리에겐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용기, 무시당해도 좌절하지 않는 혼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때 우리가 편지를 보낸 대상은 하나같이 거대한 존재들이었다. 세계 최고 정보권력 집단 CIA를 비롯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지도제작사, 출판사 등을 수신인으로 삼았다. 그쪽에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해서 상처받을 이유가 있었겠나. 오히려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반응을 보여주는 곳이 있으면 뛸 듯이 기뻤다. 그런 성공을 발판 삼아 힘을 얻고, 세계 곳곳에 더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반크 활동이 만들어낸 변화는 전문가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박 단장은 “반크의 노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 지도와 교과서 내용이 바뀌자, 그때부터 우리 역사 및 지리를 전공한 학자들이 하나둘 반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해 온 자료를 우리에게 내줬다. 그걸 통해 우리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왜 한국 영토인지 등을 더 잘 알게 됐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좀 더 설득력 있는 편지를 쓰자, 점점 더 많은 지도 제작사와 교과서 출판사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박 단장은 “세상을 바꾸는 건 지식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믿게 됐다고 한다. 그가 대중을 향해 “외국 정보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 반크를 찾지 말고 직접 수정을 위해 나서달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그래도 반크에는 20년 넘게 활동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있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반크 홈페이지(prkorea.com)에 접속하면 누구나 반크가 축적해 온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외국어로 만든 자료 또한 업로드해 뒀다. 그것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해외 기업 등에 e메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편지를 보낸다고 바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수 있다. 그건 반크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명이 나서고, 그 뒤에 두 명이 거들고, 세 명 네 명이 함께하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그게 반크가 해온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CIA 지도 수정에 인생 걸었다
CIA ‘월드팩트북’에 실린 한국(위)과 일본 지도. ‘일본해(Sea of Japan)’ 표기가 선명히 보인다. 또 한국 지도는 땅 위주로 그려진 반면, 일본은 광대한 바다 영토를 가진 것으로 표현돼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잘못된 지명 표기를 바로잡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지도도 바다 영토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시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캡처]
“반크 운영비는 1년에 5억 원 정도다. 그것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와 후원금을 합쳐 마련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인턴 제외하면 5명이 전부다. 이런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도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그 적은 인원이, 겨우 그 돈으로 그 많은 일을 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용기와 혼이다.”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이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각자 자리에서 한국을 세계에 바로 알리는 일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지금도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할 일이 남아 있나.
“물론이다. 나를 처음 이 일에 뛰어들게 한 CIA 지도만 해도 20년 넘게 그대로다. CIA는 매년 한 번씩 ‘월드 팩트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 정보를 담은 자료를 발간한다. 1999년 내가 ‘Korean Map’을 검색했을 때 처음 눈에 띈 게 바로 거기 실린 지도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년 CIA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 달라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여전히 CIA는 한국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 독도 옆엔 ‘리앙쿠르 암초’라고 쓴 지도를 펴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 지도를 바로잡는 데 인생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서두에 말했듯,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더 열심히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 때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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