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쫀득한 살집을 된장, 초장에 “콕”, ‘고퀄’ 과메기 극강의 기름진 고소함

[김민경 ‘맛 이야기’] 종로 익선동, 추억의 그 맛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12-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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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어 또는 꽁치를 말려 만드는 과메기.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청어 또는 꽁치를 말려 만드는 과메기.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내 입맛의 수용 범위가 넓어진 건 부모님 덕이다. 꼬마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맛을 경험할 기회를 주셨다. 이후 내게 맛을 가르쳐 준 스승이 또 한 명 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방을 쓰던 언니다.

    그 시절 어설프기 짝이 없던 내가 보기에 언니는 모르는 게 없고,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붙어 다녔고, 모든 자리를 술과 함께 했다. 언니는 내게 홍어를 처음 사줬고, 소 막창을 찍어 먹는 대구식 막장의 고수를 찾아 제 맛을 보여줬다. 공릉동이라는 낯선 동네에 데려가 갈비를 처음 먹어보게 해준 것도 그 언니였다. 취기에 뻗어 같이 잠든 다음 날이면, 해장으로 보이차나 고산 오오룡차를 내려주곤 했다. 내가 처음 과메기를 먹은 것도 언니와 함께였다.

    숭덩숭덩 썰어낸 과메기와 텁텁한 된장의 조화

    쌈채소에 과메기와 쪽파, 마늘종 등을 얹고 쌈장을 쓱 묻히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 [GettyImage]

    쌈채소에 과메기와 쪽파, 마늘종 등을 얹고 쌈장을 쓱 묻히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 [GettyImage]

    우리집은 모든 메뉴를 아버지 입맛에 따라 정했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나고 자랐지만 과메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구룡포와 감포에 사는 아버지 친구들이 보내주시는 이른바 ‘고퀄’ 과메기는 우리집을 거쳐 옆집, 앞집으로 보내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입맛에 맞지 않아 경험할 기회조차 없던 음식들을 언니가 죄다 내 입에 넣어 준 셈이다.

    지금 종로구 익선동은 수많은 ‘인싸’가 찾는 ‘핫플’이지만, 내가 처음 과메기를 먹었을 때는 컴컴한 동네 어귀에 포장마차만 하나 달랑 있었다. 추운 겨울 종로5가에서 갈매기살을 구워 먹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숭덩숭덩 큼직하게 썬 과메기, 편 썬 마늘, 작게 썬 청양고추, 알배추 몇 잎, 손가락처럼 썬 당근, 초장, 배추김치 그리고 어묵 몇 장 떠 있는 국물이 상에 차려졌다. 묵은 생선내와 포구 비린내 같은 게 나는 쫀득한 과메기가 어찌나 기름지고 고소하던지, 낯설지만 맘에 쏙 들던 그 맛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된장을 좀 얻어 배추, 마늘, 고추와 번갈아 조합하며 신나게 먹었다. 내 입에는 새콤달콤 초장보다 짜고 텁텁한 된장을 얹어 먹는 게 더 맛있었다. 그 겨울 언니를 졸라 줄곧 그 포장마차에 갔다.

    이후 기회가 되면 종종 과메기를 먹었다. 번듯한 식당에 가니 물미역, 다시마, 곰피, 꼬시래기, 톳, 마늘종, 쪽파, 대파 흰 부분, 깻잎, 봄동, 절인 배추, 씻은 묵은지, 구운 맨 김, 참기름과 다진 마늘 넣은 양념된장 등 조연이 훨씬 화려했다. 바다에서 온 것이니 해초와 함께 초장에 “콕”하면 맛있다. 조금 비리다 싶으면 쌈채소에 쪽파, 대파, 마늘종 얹고 쌈장을 쓱 묻혀 먹는다. 허기가 가시고 본격적으로 한 잔 걸쳐볼까 싶으면 배추나 묵은지를 곁들여 짭조름하게 즐긴다. 초보자는 향이 강한 마늘, 파, 마늘종, 깻잎, 김치, 김처럼 바다 맛이 덜 나는 재료와 곁들이면 좋다. 숙련자는 과메기만 달랑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도 맛있을 것이다.



    전통의 청어과메기, 진입장벽 낮은 꽁치과메기

    과메기는 보통 생선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빼고 바닷물과 민물에 번갈아 헹군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 만든다. [GettyImage]

    과메기는 보통 생선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빼고 바닷물과 민물에 번갈아 헹군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 만든다. [GettyImage]

    결혼한 뒤 ‘바다의 여인’이신 시어머니 덕에 청어 과메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옛날에는 청어로 만든 과메기가 흔했다는데,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먹는 과메기 대부분은 꽁치로 만든 것이다. 청어 어획량이 줄어든 데다 꽁치가 비린 맛이 상대적으로 덜한 영향도 있는 듯하다. 쫀득하게 씹는 맛은 되려 청어보다 낫기도 하다. 과메기를 처음 먹는 이에게는 청어보다 꽁치가 수월하다.

    과메기는 말릴 때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빼고 바닷물과 민물에 번갈아 헹궈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 이때 꼬리 부분은 끝까지 자르지 않고, 어장에 걸 수 있게 붙여 둔다. 양미리처럼 통째로 엮어 구부정한 모양으로 말리기도 한다는데 아직 그런 과메기는 먹어본 적이 없다. 뼈와 내장을 제거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뱃속에 수분을 머금은 채 마르니 특유의 삭은내와 살집의 쫀득함, 기름진 맛이 훨씬 좋을 것 같다.

    과메기를 주문했는데 꼬리가 붙은 채로 왔다면 손질이 좀 필요하다. 한 쪽씩 가른 다음 겉에 붙은 비닐처럼 얇은 껍질을 뜯어낸다. 그래야 먹을 때 입에 거슬리지 않고, 잡스러운 비린내도 안 난다. 껍질 안쪽에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초콜릿색 살집에 싱싱한 갈치 껍질을 닮은 은빛 막이 덮여 있기도 하다. 이건 먹어도 된다. 잘 마른 청어과메기는 정말 윤기가 좋다. 먹을 때는 한입 크기로 잘라 내면 준비 끝이다. 껍질은 과메기가 촉촉할 때 한꺼번에 벗긴 다음 먹을 만큼 나눠 둔다. 보관할 것은 자르지 않은 채 밀봉해 냉동실에 넣으면 된다.

    과메기 초심자를 위한 구이 요리법

    과메기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낯선 음식일 것이다. 맛의 문턱을 조금 낮추려면 구워 먹는 방법이 있다. 워낙 기름을 많이 품고 있으니 달군 프라이팬에 과메기를 넣고 기름이 배어나올 때까지 뒤집어가며 굽는다. 기름이 빠지면서 비린 풍미도 함께 빠져나간다. 살은 더 꼬들꼬들하고 쫀득해지며, 고소한 맛이 깊어진다. 태우지 않고 며칠을 바싹 구운 꽁치 요리가 있다면 이런 맛이겠구나 싶을 만큼 먹기 수월하다. 구운 과메기는 참기름소금장에 많이 찍어 먹는데, 고추냉이를 섞은 간장과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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