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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돈” 아파트값 급등 후 상속 다툼도 늘었다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피보다 돈” 아파트값 급등 후 상속 다툼도 늘었다

  • ● 상속 둘러싼 가족 간 ‘쩐’의 전쟁
    ● 부동산 가격 급등… 상속 분쟁↑
    ● 부양료 청구소송도 늘어
부모 사망 후 재산을 두고 가족 간 상속 다툼이 법정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GettyImages]

부모 사망 후 재산을 두고 가족 간 상속 다툼이 법정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GettyImages]

“오랫동안 왕래가 끊긴 부모나 형제가 갑자기 나타나 ‘내 몫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해외로 이민 간 자녀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하는 사례도 적지 않죠. 재벌가의 형제 간 상속 다툼에서 보이는 살벌한 풍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상속 관련 분쟁 사건을 맡아온 이진환 이진환법률사무소 변호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가족 내 상속 다툼을 보노라면 피보다 진한 게 ‘돈’이 아닌가 싶다”며 씁쓸해했다.

유류분 청구 10년 새 3배 넘게 증가

재산 분배를 둘러싼 가족 간 법정 싸움이 늘고 있다. 가장이 세상을 뜬 후 돌아올 몫을 다 받지 못했다며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소송’은 1444건에 달한다. 10년 전인 2010년 452건보다 3배 넘게 늘었다.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된 상속재산 일정 부분이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발생하는 일종의 권리로 이해하면 쉽다. 민법 제1112조는 상속재산 분할에 관한 고인의 유언이 없으면 1순위 공동상속인인 배우자가 1.5, 직계비속(자녀)이 1씩의 지분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한 예로 A가 배우자 B와 자녀 C에게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면, B와 C의 법정상속분은 각각 1.5, 1에 해당한다. 유산이 10억 원일 경우 최소 6억 원은 B의 몫이고, 자녀 C는 4억 원을 유류분으로 확보할 수 있다. 만약 A가 이를 무시하고 전 재산을 B에게 남길 경우 C가 B를 상대로 재산 분배를 요구하는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구민혜 법률사무소 비상 대표 변호사는 “최근 부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유류분 분쟁은 형제 간 재산 다툼이 주를 이뤘다. 일례로 아버지가 사망 전 어머니에게 재산 전체를 증여하거나 유증(유언에 의해 재산을 타인에게 무상으로 증여)하면, 자녀들은 어머니가 마음 편히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재산 다툼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어머니마저 사망하면 자녀들이 제 몫을 챙기려고 유류분 분쟁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피상속인이 세상을 떠난 후 남은 부모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자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당장 난 먹고살기 어렵다”거나 “어머니가 내 몫까지 부당하게 받아 갔다”는 식의 이유를 들어 유류분을 청구하는 것이다.

“참고 양보하자” 옛말

가족 간 소송을 불사하는 세태의 이면에는 2030세대의 경제적 어려움, 부동산 가격 급등이 얽혀 있다. [동아DB]

가족 간 소송을 불사하는 세태의 이면에는 2030세대의 경제적 어려움, 부동산 가격 급등이 얽혀 있다. [동아DB]

유류분 분쟁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날로 심해지는 취업난, 경제난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감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가운데 부모의 재산을 자신의 경제적 자립 밑천으로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최근 3년 집값이 크게 오르며 상속재산 가치가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구 변호사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 중대형 아파트 매매가가 30억 원을 훌쩍 넘는 데다 서울 중심부 연면적 1000㎡ 5층 이하 건물 시세는 50억 원을 웃돈다. 자녀 세대로서는 물려받을 몫이 많아지는 건 환영할 만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이 언제 하락할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하다. 유류분 반환을 청구할 때 재산 가액을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산정하다 보니 하루빨리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법적소송도 불사한다.”

더 많은 재산을 확보하기 위한 황혼이혼(부부가 자녀를 다 성장시킨 후 이혼하는 것) 소송도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한 부부는 배우자가 사망한 후 상속으로 받는 돈보다 이혼소송을 통해 재산분할로 받는 돈이 더 많을 수 있다. 2021년 서울시 스마트도시정책관이 발표한 ‘최근 20년 서울시 인구 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결혼 기간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비중이 전체 이혼 인구의 20.6%를 차지했다. 결혼 기간 4년 이하 부부의 이혼율(17.6%)을 처음으로 앞지른 수치다.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이나 형제 간 정에 연연하지 않고 ‘내 몫 챙기기’를 정당한 권리 행사로 여기는 분위기도 뚜렷해지고 있다. 박수연 법무법인 여원 대표 변호사는 “성별이나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자식이면 모두 상속 재산을 동등하게 물려받도록 상속법이 개정됨에 따라 자녀의 권리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부당하더라도 참고 가족에게 양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법적 분쟁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상속재산분할 심판 청구소송 건수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 재산의 분할에 관한 처분’ 접수 건수는 2017년 404건으로 처음 400건을 넘어선 이후 2018년 287건, 2019년 565건, 2020년 628건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상속재산 분할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피상속인의 유언으로 상속재산의 분할 방법을 정하는 유언에 의한 ‘지정분할’ △유언에 의한 지정이 없을 경우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분할하는 ‘협의분할’ △분할에 관한 협의가 성립되지 않은 때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분할하는 ‘재판상 분할’이다.

크지 않은 액수도 ‘내 몫’ 찾고 봐야

피상속인 사망 후 남은 식구끼리 재산분할을 두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때 기여분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가족이 적잖다. 현행 민법에는 상속 순위가 ‘자녀(직계비속)와 배우자-부모(직계존속)-형제자매-4촌 이내의 혈족’ 순으로 규정돼 있다.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이 여러 명일 때는 균등하게 분배해야 하지만 특별한 기여를 한 상속인이 있다면 자신에게 일정 비율의 재산을 더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민법 제1008조 2항에 따라 ‘공동상속인 중 상당한 기간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그 대상이다. 2021년 대구에 사는 D는 금융자산 상속을 둘러싼 소송에서 “아버지에게 주식 투자금을 지급하고, 급등 예상 종목을 추천해 줬다”는 이유로 더 많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대고, 1년 동안 간병했다”며 재판부에 기여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자녀도 있다.

이 밖에도 크지 않은 액수의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잖다. 30대 E와 F 자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남인 오빠 G가 자신들보다 재산을 더 많이 물려받은 사실을 알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자매는 G를 상대로 500만 원의 유류분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우리 자매가 돌려받을 수 있는 액수가 크지 않고 변호사 선임 비용을 따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나 아버지 재산을 한 푼이라도 더 찾고 싶다”는 게 소송을 제기한 이유였다.

2020년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소송으로 번진 상속 분쟁은 2019년 3만301건에서 2020년 4만3799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법률 전문가들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부모의 재산이 자녀에 비해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상속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다고 전망한다.

부모가 돈이 없다고 해서 법적 다툼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놓인 부모가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녀를 상대로 제기한 부양료 청구소송이 최근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는 양상이다. 민법 제947조에는 “자녀들이 직계존속인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민혜 변호사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본인이 받아야 하는 금액을 산정해 부양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부양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 부양 과정에서 가정에 소홀하거나 재산을 모두 탕진한 이들이다. 자녀 양육에 관심 없던 부모가 돌연 소를 제기했다가 친권 남용으로 기각 처분을 받기도 한다.”

공증증서로 유언장 작성하니 분쟁 ‘뚝’

법률 전문가들은 “가족 간 상속 다툼을 막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모가 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GettyImages]

법률 전문가들은 “가족 간 상속 다툼을 막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모가 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GettyImages]

피상속인의 고령화에 따라 ‘한정후견인’ 개시 청구소송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정후견인은 질병이나 고령 등의 제약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가정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은 피한정후견인이 동의 없이 행한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한정후견인 개시 청구소송은 2016년 103건에서 2020년 23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 친형을 상대로 한정후견인 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한 H 역시 상속 재산에 대한 다툼 때문에 법원 문을 두드렸다. H는 치매 질환을 앓는 아버지가 형에게 회사 주식을 매각한 일이 자발적 의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고, 그 사실이 확인되면 형이 증여를 받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 법원의 객관적 판단을 요청한 상태다.

그동안 법정 요건에 맞지 않은 유언장이 화근이 돼 부모 사망 후 자식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발생했다. 이후 노년층 사이에서 유언장 작성의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최근엔 유언장 관련 분쟁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민법 제1065조는 유언 형태로 자필증서, 공증증서, 녹음 등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있다. 요즘 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유언 방식은 공증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유언 작성만 잘해도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혈을 기울인다.

법률 전문가들은 “가족 내 상속 다툼을 막으려면 생전 증여든 유증이든 부모가 자녀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진환 변호사는 “자식들은 부모 재산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가족 간 상속 분쟁은 자칫 식구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도 재산을 한 푼도 못 건질 수 있으니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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