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도 비행으로 敵軍 레이더 피해
4.5세대 전투기 최고 가성비
스텔스 기술 적용 시 5세대 넘봐
경쟁 기종 반값도 안 되는 가격
AI·유무인 체계 함께 개발
FA-50 수입국 KF-21도 도입 고려 중
6월 28일 시험비행에 성공한 KF-21 시제 6호기. [KAI]
1991년 1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걸프전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후세인의 예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미군 전투기는 이라크군 핵심 시설을 초토화했다. 결국 미군이 공격한 지 한 달여 만인 같은 해 2월 전쟁은 끝났다.
걸프전의 양상을 본 세계 각국은 앞다퉈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걸프전에서 큰 전과를 올린 전투기는 F-117. 세계 최초 스텔스기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며 레이더로는 탐지하기 어렵다. 걸프전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미국, 러시아, 유럽(프랑스, 독일)을 제외하면 중국 정도가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
지난해 7월 19일 한국도 최첨단 전투기 개발국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이 자체 개발 전투기 KF-21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한 것. 올해 6월 28일에는 KF-21 시제 6호기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시제기 6대가 모두 성공적으로 비행했다.
5월 15일 방위사업청은 KF-21에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내렸다. 함정, 전투기 등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기에 내리는 판정이다. 이르면 내년 초도양산(사업 계획 물량 중 최초에 사업 승인된 물량을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KF-21의 최종 목표는 완벽한 스텔스 기능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전투 체계를 탑재하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한국도 머지않아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양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4.5세대 전투기 중 최고 수준 성능
6·25전쟁 때 북한군과 중공군 주력 전투기 MiG-15. [동아DB]
4세대 전투기부터는 고성능 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를 탑재했다. 영화 ‘탑건’에 등장한 F-14가 4세대 전투기다. 여기에 스텔스 기능을 추가하면 5세대 전투기다. ‘세계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가 여기에 해당한다.
KF-21은 4세대와 5세대 중간 단계에 있어 4.5세대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제원을 종합하면 전반적 성능은 4세대 전투기 F-16V를 상회한다. 여기에 레이더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저피탐성’도 갖췄다. KAI에 따르면 KF-21은 스텔스기로 개량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기체다. 스텔스 기능을 갖추지 못한 지금도 뛰어난 저피탐성을 자랑한다.
저피탐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로 ‘레이더 반사 면적(RCS)’이라는 게 있다. 레이더에 포착되는 비행기의 크기를 나타낸 단위다. 앞서 언급한 세계 최초의 스텔스기 F-117의 RCS 추정치는 약 0.01㎡. 레이더에 야구공 정도의 크기로 포착된다. 세계 최강 전투기로 불리는 F-22는 0.001㎡으로 추정된다. 4.5세대인 라팔이나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1㎡ 정도다.
KF-21의 RCS는 1㎡보다 좁을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 전문가들은 KF-21 저피탐 성능을 스텔스기 수준인 ‘LO(Low Observable)’ 바로 직전 등급 ‘RO(Reduced Observable)’로 분류하고 있다.
KF-21은 개발이 진행 중인 전투기다. 2040년까지 LO 수준의 저피탐성을 갖출 계획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KF-21이 스텔스 도장 및 무기 내장화 등 본격적인 설비를 갖추기 시작하면 5세대 전투기와 유사한 저피탐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KF-21은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고도 비행 기능도 탑재했다. 레이더와 센서로 지면을 읽어 저고도 비행이 가능하다. 류진훈 KAI 비행제어체계팀 연구원은 2016년 ‘고성능 전투기의 저고도 침투 비행 임무 수행을 위한 지형 추적 센서타입 비교 연구’ 논문에서 “지상에 근접해 지형을 추적하는 비행 능력은 전투기가 전장에서 적 레이더 방공망에 탐지될 가능성을 낮춰줄 수 있다”고 했다.
경쟁 기종 절반 수준 가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 공장에서 KF-21을 조립하고 있다. [KAI]
3단계에 돌입하면 KF-21은 5세대 전투기로 변모한다. 이 단계에서는 스텔스 기능과 유무인 전투비행체계(MUM-T·Manned-Unmanned Teaming)를 갖춘다. MUM-T는 조종사가 탑승한 전투기와 AI가 조종하는 무인기가 한 팀을 이루는 임무 수행 체계다. 4단계에 도달하면 6세대 전투기에 도전한다. 6세대 전투기는 스텔스 기능을 최대로 갖추고 전투기 조종에도 AI를 적용한다. 현재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일본, 이탈리아가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동급 최고 성능을 자랑하지만 KF-21의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다. 4세대 전투기인 F-15V, F-15EX 등은 지금도 1대당 가격이 8000만~9000만 달러 수준이다. 동급 전투기인 라팔과 유로파이터는 1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2017년 카타르의 계약 가격 기준으로 24대에 60억 파운드(약 10조 원)로 대당 약 3억3000만 달러다. 라팔은 2022년 인도네시아 계약 기준으로 42대에 81억 달러(약 10조8000억 원)를 기록해 대당 약 2억 달러에 달한다.
최고 수준 성능에 경쟁 기종보다 가격이 낮으니 외국에서도 KF-21에 관심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KF-21 공동 개발국에 이름을 올린 인도네시아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비 8조8000억 원의 20%인 1조7000억 원을 2026년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시제기 1대와 기술 자료를 이전받는 조건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2019년 1월까지 2272억 원만 납부하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분담금을 내지 않았다. KF-21이 첫 비행에 성공하자 지난해 94억 원, 올해 2월 417억 원가량의 분담금을 보냈다. 미납금만 현재 8000억 원이 넘는다.
폴란드도 KF-21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4월 폴란드 방위산업 부문 국영기업 집단 PGZ그룹이 KAI에 KF-21 공동개발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KFX(한국형전투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장기간 분담금을 체납한 인도네시아 지분을 인수한 후 2026년 시작하는 KF-21 블록 2 개발 사업부터 본격 참여한다는 구체 계획까지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폴란드 정부 차원의 공식 요청은 접수한 바 없다”며 “향후 폴란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방산 협력을 요청한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의 미납금 문제에 관해서는 “인도네시아 정부 및 업체와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며 “사업 추진에 영향이 없게끔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도 KF-21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메이나드 마리아노 필리핀 공군 대변인은 지난해 9월 5일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KF-21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실제 인수가 이뤄진다면 2027년부터 필리핀 공군용 KF-21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9월 CNN 보도에 따르면 태국, 이라크도 KF-21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FA-50 운용했다면 KF-21도
KF-21은 미국제 전투기와 호환성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해 두 나라가 함께하는 훈련이 많은 만큼 한국에서 개발한 전투기는 미국제 전투기와 호환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제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국가라면 KF-21 수입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폴란드, 말레이시아에 수출 예정인 한국산 경공격기 FA-50. [KAI]
FA-50의 원형 T-50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을 디딤돌로 만든 기체다. 개발사가 같은 F-16, F-35와 체계가 비슷하다. 2013년부터 공군에 투입돼 수차례 한미연합훈련을 치르며 연계 전술 경험도 갖췄다.
군 관계자들은 “FA-50을 운용한 국가나 미국의 우방이라면 대부분 KF-21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제 전투기에 대한 신뢰성이 있는 데다 4.5세대 전투기 대안이 마땅치 않아서다. 라팔은 미국제 전투기와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에 미국산을 주로 쓰는 국가는 도입이 어렵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개발국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군축이 이어지면서 매물이 부족하다.
세계 최강 전투기로 꼽히는 미국의 F-22 스텔스(랩터·아래 3대)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B-52H 전략폭격기. [국방부]
국방력 강화에 큰 보탬
KF-21의 개발 성공은 국방 측면에서 큰 이득이다. KAI는 “KF-21 개발의 가장 큰 의의는 독자적으로 성능 개량이 가능한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T-50과 FA-50이 이루지 못한 영역이다. 두 비행기는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기체다. 성능을 개량하려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KF-21은 엔진과 일부 부품을 빼고는 전부 국내 기술로 개발한 전투기다. 따라서 항공 무장 탑재 및 성능 개량이 비교적 쉽다. 방사청은 “KF-21의 국산화율은 65%”라고 밝혔다. T-50 개발 초기 국산화율이 48%(현재 FA-50의 국산화율은 60%)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방사청은 “KF-21의 전력화는 운영비 절감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에서 수입한 전투기는 부품이 대부분 해외 제조사에 있어 수급이 어렵다. 부품이 있더라도 마음대로 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수리 가능 범위가 제한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장이 생기면 미국 등으로 수리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적잖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민항기의 간단한 수리도 짧게는 3개월씩 걸린다”며 “전투기는 첨단 항공 기술의 집합체인 만큼 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투기를 국산화하면 수리 용이성이 커진다. 대부분의 부품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다. 외국으로 전투기를 보낼 이유도 없으니 수리 기간도 짧은 편이다.
KAI는 “장비 운용비용 측면에서도 국산화가 유리하다”고 밝혔다. 전투기는 전기장비나 무장을 추가할 때 이를 운용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수입 전투기의 경우 이 프로그램을 고가에 구매해야 한다.
수입 전투기는 유사시 사용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1980년 9월 이라크의 침공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이다. 이란 공군은 미국에서 수입한 F-14를 주력기로 쓰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이 당시 이라크의 우방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F-14 후속 지원을 거부하며 이란은 전쟁 초기 공군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군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라 유사시 후속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은 낮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가능하다면 국산화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국산 전투기 개발은 일자리 및 부가가치 창출 등 경제 파급 효과도 크다. KF-21의 생산과 제작에 참여한 국내 업체만 700여 개에 달한다. 2017년 무기체계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KF-21로 인한 생산유발 효과는 24조 원. 기술파급 효과는 49조 원으로 예상된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16~2021년 1만 명 넘는 고용 창출 효과가 일어났다. 2028년까지 11만 개의 일자리가 더 생길 것으로 추산된다. KF-21이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하면 관련 업계에 10만 명가량의 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집계됐다.
천덕꾸러기에서 ‘대한민국 자랑’으로
KF-21의 시제 1~6호기 모습. [KAI]
KF-21은 개발 논의 때부터 난관이 많았다. 첫 실마리가 던져진 것은 2002년 11월. 정부는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신형 전투기 개발 사업 ‘KF-X 체계개발’을 공군 장기개발 사업으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 이후 한동안 사업이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개발을 차일피일 미뤄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KF-X 사업에 관해 ‘타당성 미흡’(2003), ‘타당성 미판단’(2006) 보고서를 연달아 내놓았다.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06년 12월~2008년 2월 KF-X 사업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결과는 ‘타당성 없음’. 결국 관련 예산이 사라지는 상황까지 생겼다.
KF-X 사업은 2009년 건국대 무기연구소가 ‘사업 타당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며 기사회생했다. 2011년부터는 2년간의 탐색 개발에 돌입했다. 실제 사업에 들어가는 기술을 분석하고 기본 설계까지 해보는 단계다. 이 과정에 인도네시아와 협력이 시작됐다. 한국이 440억 원, 인도네시아가 110억 원을 투자해 탐색개발을 진행했다.
이렇게 다시 개발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난관은 여전히 있었다. 2012년 KIDA는 사업에 타당성이 없다며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반대했다. 이를 계기로 2013년 예산은 45억 원을 남기고 모두 삭감됐다. 2015년 10월에는 국회 국방위원회가 KF-X 계획이 불확실하다면 예산 승인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방사청이 요청한 KF-X 개발 예산은 1618억 원. 국회의 반대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670억 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됐다.
KAI는 이 같은 난관을 넘어 KF-21 개발에 성공했다. KAI 관계자는 “과거 T-50, FA-50을 개발하며 쌓인 노하우와 관계 기관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됐다”며 “양산 이후 성능 개량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사청은 올 연말에는 KF-21 양산 승인을 받을 방침이다. 내년 양산에 착수하면 2026년 후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전력화에 들어간다. 공군은 2032년까지 KF-21 120여 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동아 8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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