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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이준석, 오디세우스 아닌 주몽 서사로 [+영상]

[윤태곤의 총선 읽기]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3-12-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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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우스는 귀환, 주몽은 창업 서사

    • 둘 다 오디세우스의 길에 딱 들어맞으나…

    • 양당 구도, 양당 주류에 염증 존재



    2023년 12월 12일부터 22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현역의원에 비해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원외 인사들이 예비후보자 신분을 획득하고 열심히 뛰고 있다. 동네 여기저기에 나붙어 펄럭거리는 현수막과 함께 선거 분위기도 점점 달아오른다.

    2020년 21대 총선부터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2022년 6월 지방선거,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는 줄곧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자유한국당 등 전신 정당 포함)의 격돌 구도였다. 양당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와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2024년 4월 총선 역시 양당 대립을 기본 구도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혹은 21대 국회 다수당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평가가 격돌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기본 구도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균열이 더 커져 4월 총선 구도가 완전히 바뀔지, 양당의 강한 구심력으로 균열이 메워질지 아직 가늠키는 어렵다.

    거대 양당 비주류 대표 인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동아DB]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동아DB]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다. 지역·종교·이념·인물 등 다양한 기반을 바탕으로 독자 세력화 시도가 있어왔다. 2020년 21대 총선의 경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제도가 추동하는 힘이 커서 그런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무려 35개의 정당이 이름을 올렸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을 빼고도 서른 개가 넘는 정당이 난립했다. 하지만 애초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던 거대 양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정도를 제외하곤 살아남은 곳이 거의 없다. 더욱이 2022년 대선을 계기로 국민의당도 국민의힘과 합쳤다. 총선을 거치며 오히려 거대 양당의 구심력이 강화된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할까. 민주노동당 이래 선명한 진보정당과 ‘3당’의 지위를 동시에 갖고 있던 정의당은 존립조차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다. 총선 전망도 밝지 않다. 10여 년간 그 자신이 ‘제3세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경기 분당갑 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는 ‘한국의희망’,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새로운선택’은 이미 깃발을 올렸고, 거기에 이준석 신당·이낙연 신당·조국 신당·선거연합 플랫폼 정당·제3지대 신당·개혁연합신당·윤석열 퇴진당 등 각종 신당 창당에 대한 설왕설래가 난무한다. 거칠게 뭉뚱그려본다면 거대 양당에서 이탈하고 분화한 세력이 난립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다. 거대 양당의 비주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의 비주류가 총선을 앞두고 이탈한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정동영, 홍준표 등 대선후보였던 인물이나 이해찬 등 각 당 간판급 인물들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지역 기반이 탄탄한 중진급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소속 당선-복당 경력은 오히려 개인의 정치적 파워를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자신은 한나라당 안에 머물면서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라는 당외 세력을 지원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일종의 ‘오디세우스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애초에 자신이 반대했던 트로이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지만 지략을 발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신의 노여움을 사서 온갖 고초를 겪고 귀환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왕위를 노리는 자들이 왕비 페넬로페의 구혼자로 나서 각축을 벌이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디세우스는 아들 텔레마코스의 조력을 받아 페넬로페의 구혼자 모두를 척살하고 왕위를 되찾아 이타카를 도탄에서 구한다. 고귀한 인물이 온갖 고난을 겪고 그 신분을 잃을 위험에 처하지만 결국 자기 자리를 되찾는다는 스토리는 여러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영웅 서사 중 하나다.

    당대표 자리에서 거칠게 축출된 이후 윤석열 대통령 및 여당 주류와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오히려 키워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대선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켜오다 얼마 전부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민주당의 도덕성 상실, 강성 지지층 이른바 개딸의 폭력성 등을 지적하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경우 ‘오디세우스 서사’를 쓰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준석은 윤석열보다, 이낙연은 이재명보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영욕을 당과 함께한 인물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여당 주류 세력에 대한 보수 진영의 염증이나 이재명 대표와 개딸로 대표되는 야당 주류 세력에 대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피로감은 모두 만만치 않다. 이것이 이준석과 이낙연의 정치적 자산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심판과 귀환을 다짐하면서 당을 뛰쳐나갈 명분은 충분하다. 실천에 옮긴다면 큰 뉴스가 될 것이고 총선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 상황이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익숙한 오디세우스 서사가 아니라 새로운 주몽 서사를 쓰려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신분을 갖고 태어나 고난을 겪은 것은 오디세우스나 주몽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귀환의 서사이고, 주몽은 창업, 건국의 서사다.

    동부여 금와왕의 친아들들에게 핍박을 받다가 모친과 부인, 아들도 남겨놓고 야반도주하다시피 본향을 떠난 주몽은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 고구려라는 새 나라를 세운다. 그의 아들 온조 왕자 역시 배다른 형이 집으로 돌아오자 고구려를 떠나 백제라는 새 나라를 건국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서사와 대조적인 주몽의 건국 서사 역시 보편적 영웅 서사의 큰 줄기다.

    한국 정치에서 오디세우스의 꿈을 꾸고 실현한 사람은 적지 않지만 주몽의 꿈을 꾼 사람은 드물었다. 3김 이후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 진보정당의 깃발을 세운 민주노동당,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정도다. 궁극적으로 꿈을 이룬 경우는 아직 없다.

    그런데 22대 총선을 앞둔 이번에는 주몽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덕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참 많다. 두 사람 다 진영 내 장악력이 강하지만 정치 경험이 일천해 과거 리더들처럼 정치적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다. 두 사람 모두 중도층의 지지가 약하고 비호감도가 강하다.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우고 상대와 대립각을 강화해 강성 지지층을 규합하고 구심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원심력은 더 강화되고 있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압도적이라 자기 당뿐 아니라 양당 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희망과 새로운선택

    ‘새로운선택’ 창당을 준비 중인 금태섭 전 의원. [동아DB]

    ‘새로운선택’ 창당을 준비 중인 금태섭 전 의원. [동아DB]

    양당 구조의 초기 탈주자들은 이미 당을 만든 금태섭 전 의원과 양향자 의원이다. 민주당에서 활동할 때부터 이른바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의 일원으로 단독자 이미지가 강했던 금태섭 전 의원은 ‘조국 사태’ 국면, 즉 문재인 정부 때부터 독자적 길을 걸은 끝에 21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고 징계까지 받아 결국 탈당에 이르렀다. 금 전 의원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연이은 단일화 끝에 민주당의 대척점에 섰다. 검사 출신 금 전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에도 윤석열 후보와 단독 회동 끝에 캠프에 합류해 전략기획실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완전히 국민의힘 진영으로 합류하는가 했지만 2022년 12월 말 김종인 당시 선대위원장이 캠프를 이탈하면서 그 역시 직을 내려놓았다.

    ‘한국의희망’을 창당한 양향자 의원. [동아DB]

    ‘한국의희망’을 창당한 양향자 의원. [동아DB]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21대 총선에 광주 서구을에서 당선된 양향자 의원은 이른바 ‘검수완박’ 국면에서 민주당과 완전히 갈라섰다. 양 의원이 분리되는 과정에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으로 대응, 검수완박을 실행했다.

    양 의원은 실천적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선도국가론을 내세우며 한국의희망을 창당했다. 제3세력 주창자들 중에선 최초다.

    금 전 의원의 행보에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겹친다. 김 위원장 시절 국민의힘과 선거 연대를 했고, 그가 선대위원장일 때 대선캠프에 합류했다가 함께 떠난 것.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칼럼니스트, 방송 출연 같은 활동만 하던 그는 2023년 하반기 양당 구도 혁파의 깃발을 들어 새로운선택을 창당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 이탈했던 인사들이 포함돼 있는 새로운선택은 현 상황을 △인구위기 △안보위기 △사회위기 △정치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중도적 해법으로 △청년투자국가 △경제안보동맹 △지속가능사회개혁 △내각제 이행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들을 ‘온건 리버럴’로 규정하는 이들은 현재 여러 신당 세력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김종인의 컬러’도 묻어난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선택은 제3당을 모색하는 여러 세력 사이에서 일종의 노드(node·네트워크에서 연결 포인트 혹은 데이터 전송의 종점 혹은 재분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정의당에서 이탈한 그룹으로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조성주, 현역의원 류호정이 포함돼 있는 세 번째 권력이 이미 합류를 선언했다.

    금태섭, 양향자, 정의당 소장파 등의 독자 노선화는 예견된 일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여야 정치권을 통틀어 가장 매서운 윤석열 정부의 비판자로 오디세우스의 서사를 준비하는가 싶었던 이준석 전 대표는 최근엔 주몽의 길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반윤(反尹) 연대’ 러브콜에 분명히 선을 그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 전 대표는 2023년 12월 3일 “신당을 창당한다 해도 그것의 기치가 ‘반윤’일 수는 없다”면서 “‘반윤 연대’는 안 한다. 하지만 정치를 개혁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개혁 연대’는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당이 생긴다면 야당이 될 테니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고 민주당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지만 신당은 토론 문화가 실종되고 일방주의가 횡행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 새로운 다원주의의 공간을 차리는 것이지 ‘반윤’이라는 또 하나의 일방주의적 구호의 구현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 직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여의도재건축조합에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를 초청해 3시간 동안 공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 새로운선택 합류를 선언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도 다른 유튜브 채널에 함께 출연해 젠더 이슈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그에게 일찌감치 새로운선택과 연대할 것을 강하게 권고한 바 있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도 제3당을 언급한다. 이재명 대표 측과는 더는 토론을 벌이거나 궤도 수정을 촉구할 가치도 없다는 식이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대안이 꼭 필요하다는 마음을 굳게 갖고 있다” “분명한 건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정치적 대안이 불가피하다고 확신하게 됐고 그것을 위한 준비는 막 시작했다” “여야 모두 싫고 시험 문제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등의 최근 발언은 이 전 대표의 진중한 면모를 감안하면 상당히 명료한 것이다.

    금태섭·양향자 등이 먼저 개척하고 있는 길에 이준석·이낙연까지 합류하면 22대 총선 구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성향과 이력이 다른 세력이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뜻을 모은다고 해도 누구를 간판으로 세울 것이냐, 주 타격 방향이 어디냐 등을 두고 분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양당 주류에선 “3당이 생기기야 생기겠지만 이탈자들이 다 힘을 합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떤 합종연횡이 나타날지, 얼마만큼 덩치를 키울지 가늠키 어렵지만 총선 일정상 2024년 1월 중에는 선명한 윤곽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이 흐름이 성공한다면, 혹은 실패한다고 해도 2027년 대선까지 유사한 시도가 더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양당 구도, 양당 주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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