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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처음 본 건 다섯 살 무렵이었다. 늦가을 소슬한 저녁 바람이 앞마당을 쓸고 대청마루 위로 불어오고 있었다. 세 오빠와 언니는 안방 화롯불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부모님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고, 혼자 마루에 남은 난 그 정겨운 소리를 반주 삼아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울타리 옆을 무언가가 스치듯 지나 마당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꿈속에 자주 나타나던 그 호랑이였다. 난 그때까지 호랑이를 직접 본 적이 없었고, 꿈에 나타나는 호랑이는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말을 종이와 붓 삼아 혼자 제멋대로 마음속에 그려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호랑이의 모습이 그것과 사뭇 똑같아 깜짝 놀랐다.
호랑이는 날 해코지하려는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이리저리 어슬렁대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가끔 땅에 코를 대고 킁킁댈 뿐이었다. 그 모습을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난 점점 겁이 없어져 마당 위쪽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호랑이가 살금살금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자기 옆구리를 내 종아리에 스치듯 비비고 휙 지나갔다. 난 뚜렷한 이유 없이 그 호랑이가 수컷이라고 믿어버렸다.
쥐불놀이
열 살 무렵 겨울이었다. 밤이 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논밭으로 몰려나가 쥐불놀이를 벌였다. 세 오빠는 이웃집 밭두둑에 불을 놓고 그 불길을 따라 내달리며 함성을 질러댔다. 갑자기 건넛마을로부터 불붙은 쑥방망이들이 우리 마을을 향해 날아들었다. 우리 마을 젊은이들도 마른 쑥 뭉치에 불을 붙여 건넛마을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의 춤에 난 완전히 마음을 뺏긴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마을 한복판에 지어진 움집에 어른들이 불을 놓자 불길은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마침 추위로 온몸이 오들오들 떨리던 터라 난 불기둥 앞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곱았던 손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집이었다.
오빠들과 언니는 마을 사람들과 달집 구경하기 바빴는데, 그 순간 난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몸을 뒤로 돌려 저 멀리 검은 어둠을 쳐다봤다. 밝은 빛이 찬란하면 할수록 그 빛에서 벗어난 어둠은 더 짙어지게 마련이다. 어둠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설렘이 내 몸을 사로잡아 놔주질 않았다. 난 나도 모르게 밝음이 만든 그늘 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만든 편안함과 달집이 주는 따뜻함에서 멀어질수록 나라는 미약한 어린 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무엇인 양 여겨졌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그때 난 몰랐다. 사람들이 온통 달집 구경에 빠져 있을 때,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물건을 훔치던 도적 떼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서서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난 우리 동네 달집을 보러 온 다른 마을 사람들인 줄 알고 손을 살며시 흔들었다.
약한 것이 무리에서 떨어지면 곧 죽는다는 걸 왜 몰랐을까. 손을 흔든 행동은 어쩌면 살려달라는 간청이었을까. 아무튼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이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쏜살같이 다가와 날 낚아챘다. 내 몸은 거칠게 흔들리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날 움켜쥔 손에선 어떤 인간적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그저 물건처럼 마구 흔들리며 어두운 공기 속을 떠돌기만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죽음으로 가는 문턱임을 직감했고, 그 모든 불행의 빌미를 나 스스로 제공했다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그런 죽음이라면 혹시 자살이 아닐까.
얼마를 그렇게 끌려갔을까. 상대의 움켜쥐는 힘이 조금 풀리더니 갑자기 내 몸이 사납게 땅바닥으로 내던져졌다. 난 데굴데굴 구르다 볏짚 더미 앞에서 멈췄다. 내게 성큼 다가선 상대는 먹잇감을 노려보는 매처럼 영혼 없이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무언가를 본 상대가 멈칫대더니 마침내 등을 돌리고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겨울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스몄다. 빨리 일어서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워 있는 내 얼굴 위로 가르랑대는 숨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리고 뒤미처 커다란 호랑이 얼굴이 내 얼굴 위를 덮으며 나타났다. 언젠가 내 종아리를 스쳤던 그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파란 눈빛으로 한참을 날 쏘아보고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몸을 벌떡 일으켰더니 호랑이는 여전히 바로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호랑이가 날 물고 달렸던 기억이 난다. 이번 어둠의 공기는 부드러웠고 안전했다. 멀리 달집 타는 불빛이 보였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날 바닥에 살짝 내려놓은 호랑이는 자신이 왔던 어둠 속으로 조심스레 사라졌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날 발견한 오빠들과 언니가 투덜대며 다가왔다. 큰오빠가 소리쳤다.
“어린 가시나가 찬 바닥에서 어찌 그리 잘 자노? 하도 곤히 자가 그냥 놔뒀다 아이가.”
초야
계집애가 초경을 하면 시집갈 나이가 됐다는 뜻이다. 난 그렇게 어른 대접을 받으며 시집갈 여자가 됐지만, 느닷없이 낯선 남자와 함께 살 일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두렵기 짝이 없었다. 늦은 밤이면 엄마 무릎베개를 베고 아빠가 해주는 옛날얘기나 들으며 늙고 싶었다. 그토록 시집가지 않겠다며 칭얼대는 딸을 한없이 어르던 부모님은 정작 나 모르게 혼처를 부지런히 알아보고 계셨다. 난 열일곱 살에 대구로 시집갔다.
신랑이 우리 집으로 와 초례를 치르던 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던 난 멍하니 내 방에 혼자 앉아 호랑이를 생각했다. 호랑이는 정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리고 못난 어린 계집아이가 만든 환영이었을까. 난 그 호랑이가 진짜라면, 멀리 떠나기 전 그와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나눠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신랑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혼례는 성대하게 치러졌고, 이미 시집간 언니는 남몰래 사향주머니를 내 치마 속에 넣어줬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니처럼 몬생긴 아는 이거라도 있어야 안 되긋나? 오늘 밤 신랑 눈을 확 뒤집어 놓는기라. 평생 니 생각만 하구로! 알았제?”
언니를 흘겨본 난 사실은 초야를 치를 일이 한걱정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아이를 낳는지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저 신랑과 밤을 새워 각자 살아온 내력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었다. 신랑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그리 잘생기지 못한 데다 집안 형편도 안 좋았던 신랑은 드물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난 신랑에게 호랑이 얘기를 꺼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난 그 말 믿는다. 실은 내도 어릴 때 뭘 봤다 아이가!”
난 호기심에 들떠 급히 물었다.
“뭘 봤는데? 니도 호랑이가?”
마른침을 삼킨 그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이다. 큰 뱀이라. 눈이 창백한 뱀!”
난 신랑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려 그의 눈을 뚫어져라 오래 노려봤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꿈은 분명 아이라. 분명 봤다카이! 그래가 내는 니 믿는다!”
우리는 깔깔대며 한참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새벽이 왔고 지친 우리는 서로의 옷을 벗겨줬다. 나란히 이부자리에 누운 우리는 어렵게 서로의 손을 쥐었고 어깨를 툭툭 밀쳤으며 이마를 맞대고 박치기 놀이를 했다. 어느 순간 선잠이 들었던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신랑은 곤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달빛이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초야를 밝히는 하늘의 촛불 빛 같았다. 마당을 조용히 걷던 호랑이가 나를 힐끗 돌아봤다. 꿈틀대는 검은 줄무늬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호랑이는 슬픈 눈빛으로 날 오래 바라보다 담장을 껑충 뛰어넘어 사라졌다.
남편의 죽음
남편 집안은 가난했다. 시부모님은 남편처럼 착하고 다정하신 분들이었지만, 생계를 도모하는 데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 하나만 보고 신랑감을 고른 거라던 친정 부모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게 됐다. 오직 내 힘으로 집안 살림을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난 낮엔 동네 여기저기 허드렛일을 나가고 밤엔 삯바느질해 돈을 벌었다. 악착같이 절약하며 산 덕분에 살림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고, 헛간에는 쌀가마니도 제법 모이기 시작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뭐 그 정도면 보람 있는 인생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가끔 달성의 친정 생각이 났고, 그때마다 호랑이와 나눈 마지막 인사도 떠올랐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조만간 같이 달성에 가보자. 너무 고생만 시켜 미안하데이!”
호랑이 얘기를 기대했던 난 살짝 실망했지만, 선량한 남편의 눈망울에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달성에 가보기를 고대하던 어느 날, 시어머님께서 낙상하신 뒤 결국 돌아가시는 일이 벌어졌다.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던 사이, 문상 온 친정 가족과 가볍게 인사 나눴던 게 새삼 기억난다.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속삭였었다.
“시댁이 이래 몬사는 줄은 내 미처 몰랐데이. 와 여태 기별 안 했노? 우리가 도와주꾸마!”
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가난이 뭐 죄가 됩니꺼? 앞으로 잘살 거라예! 걱정 마이소!”
사돈집의 큰 불행 앞에 사사로운 말을 더 보탤 수 없었던 어머니는 빨리 달성에 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의연히 가족들을 배웅하고 갑자기 텅 빈 것 같은 시댁 안으로 들어서던 난 시집와 처음으로 눈물을 훔쳤다. 호랑이가 나타나 용기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어머니를 여읜 남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긴 혼수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달리 뭘 바랄 염치는 없고, 그저 아버님 한 분만 부탁한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없다 아이가? 그라고 남은 인생은 느그 마음껏 살그라! 알았제?”
난 굳은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아버님만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분명히 말을 하려는 찰라, 남편은 어처구니없게도 잠자듯 숨을 거뒀다. 아내를 잃고 안방에 누워만 계신 시아버님께 방금 아들이 죽었다고 어찌 고해야 하나 걱정하느라 내 슬픔은 잠시 잊고 있었다.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 호랑이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초가을 저녁 바람이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보듬으며 얼굴 쪽으로 불어왔다. 난 가만히 속삭였다.
“거기 없나? 아무도 없나?”
바람 이외에 마당엔 아무것도 없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편 장례를 마치고도 친정 식구들은 달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안방에 누워 계신 시아버님께서 들으라는 듯이 친정어머니가 목청을 돋워 말했다.
“막말로 이제 고마 새신랑 얻어 다른 인생 산다 캐도 누가 뭐라 카겠노? 니 할 만큼 했다 아이가?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아가 와 고집을 부리노?”
난 죽은 남편과 한 약속을 강조하며 달성으로 함께 가자는 가족들의 성화를 꿋꿋이 이겨냈다. 오빠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를 화를 냈고, 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흐느껴 울기만 했다. 곰방대를 입에 문 아버지가 안방 쪽을 힐끗 돌아본 뒤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 그냥 갈란다. 니 뜻대로 함 살아보그라! 대신 힘들믄 집으로 바로 와야 한데이? 알긋나? 아가야, 잘 알아듣제?”
난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친정아버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같이 달성으로 가겠다는 말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친정 식구들은 시아버지 머리맡에 엽전 꾸러미를 몰래 놓고 떠났다. 천장을 바라보며 나직이 흐느끼시던 시아버님께 내가 말했다.
“제가 잘 모실께예! 아무 걱정 마이소! 달성으로는 절대로 안 갑니더!”
그 후 굽이굽이 모질게 살아낸 내 인생을 그저 힘겨웠다고만 말하기는 정말 힘들다. 병든 시아버지를 수발들며 외롭게 사는 젊은 며느리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고, 낯선 사내가 한밤중에 들이닥쳐 보쌈을 시도하는 일조차 있었다. 무엇보다 친정 식구들이 무시로 찾아와 빨리 같이 떠나자며 행패를 부렸다. 세상은 내가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해 줄 마음이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난 그 시절 호랑이와 더불어 고통스러운 삶을 묵묵히 건너고 있었을 뿐이다. 호랑이는 남편이 죽고 얼마 뒤에 처음으로 대구 시댁에 나타났다. 가르랑대는 소리에 방문을 벌컥 연 내 눈앞에 나타난 그는 파란 눈빛으로 오래도록 집안을 쏘아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뒤로 그런 일은 자주 벌어졌다.
아무리 의지가 굳었다 해도 나 역시 어린 아낙인지라 위기가 없진 않았다. 하루는 시아버님께서 실성하셨는지 빨랫감을 개는 내게 상스러운 욕을 퍼부으시더니 어서 달성으로 썩 꺼지라며 고래고래 소리치셨다. 화가 잔뜩 난 나는 그날 새벽 봇짐을 싸 마당으로 나섰다. 진짜 달성으로 떠나버릴 생각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댔다. 처음엔 내 길을 인도해주려 나타났으려니 했지만, 이내 그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호랑이는 사나워져 있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난 호랑이가 미웠다. 아니, 이제는 호랑이가 내 편이라는 믿음이 사라졌다고 해야 옳았다. 호랑이는 속을 알 수 없는 두려운 상대라는 생각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게 죽은 남편일지 모른다는 상념이 이어졌고, 애초 호랑이는 남편이었을 거라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고야 말았다. 호랑이는 내게 의무를 강요하는 죽은 남편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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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의 음모
어느 늦봄, 친정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아버님 병세가 심상찮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빨리 와보라는 것이었다. 혼이 나가버린 난 지체 없이 짐을 꾸리고 시아버님께 고했다.
“아버님예! 지 사흘만 친정 다녀오겠습니더. 시집와 처음인 거 잘 아시지예? 저 없는 동안 드실 음식은 머리맡에 두고 갈 테니, 빼먹지 말고 꼭 드이소! 사흘만 기다리시면 바로 댕겨올 거라예!”
내가 사흘을 고집한 건 혹시 친정아버지 장례를 치를지 몰라서였다. 아버지의 죽음도 한없이 슬프겠지만, 시아버님 목숨도 내겐 못잖게 소중했고 무엇보다 호랑이가 그 이상 머물도록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다.
떠날 채비를 하고 마당을 나설 때, 혹시라도 호랑이가 길을 막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렸다. 벌건 대낮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었지만, 그때의 나로선 호랑이의 심술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고 그게 만약 죽은 남편이라면, 더더욱 날 믿지 못하리라 넘겨짚었다. 다행히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달성 친정집에 들어서는 순간, 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언니와 오빠들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날 보고도 표정이 심드렁했기 때문이다. 안방 문을 열자 아프다던 아버지가 멀쩡히 앉아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속았다는 걸 눈치챈 난 짐보따리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빽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뛰쳐나오며 말했다.
“우리 아기 이제 왔나? 당장 옷 갈아입고 앉그라! 오늘 끝장을 보자!”
날 둘러싼 가족들은 내게 온갖 말로 회유하며 시댁을 버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빠들은 무서운 말로 협박했고, 부모님은 살살 어르고 달랬다. 얼결에 언니가 던진 말에 난 그들의 속내를 환히 알아버렸다.
“가시나가 미친나? 쫌 있으면 끝내주는 신랑감이 온다 아이가? 이게 을매나 조은 일이고? 내는 겨우 한 번 한 걸 니는 두 번이나 안 하나?”
알고 보니 어려서부터 날 잘 알던 옆 마을 노총각 한 명이 부모님과 작당해 그날 밤 혼례를 치르러 오고 있었다. 한참을 씩씩대던 난 꾀를 내보기로 작정했다.
“알겠어예! 뭐 지도 지칠 만큼 지쳤고, 까이꺼 하겠십니더. 대신 목욕이나 하게 해주이소! 이래 더럽다 아입니꺼?”
신이 난 어머니는 뒷마당에 목욕통을 놓고 물을 끓여 와 붓기 시작했다. 더러운 옷가지를 벗자 어머니가 깨끗한 새 옷을 옆에 놔두며 속삭였다.
“어서 갈아입고 나온나! 오빠들이 지키고 있으니 헛된 생각일랑은 하지 마래이!”
몸을 씻는 척하던 난 주변을 살피다 도로 더러운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었다. 뒷마당 울타리는 대나무였는데, 난 빽빽한 대나무를 힘껏 양옆으로 밀친 뒤 그 좁은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간신히 집을 탈출한 난 정신없이 내달렸다. 언뜻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 듯도 해 급히 얼굴을 집 쪽으로 돌렸다. 내가 없어진 걸 눈치챈 오빠들이 정문으로 뛰어나오려다 커다란 호랑이와 마주쳐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호랑이, 나의 호랑이
대구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곱절은 고달팠고, 밤이 되면서는 몹시 무섭기까지 했다. 문득 어린 시절 달집을 구경하다 만났던 도적이 떠올라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난 호랑이를 간절히 원했다. 그토록 날 구속하고 또 덧없는 시아버지 봉양에 삶을 낭비하게 시켰지만, 그래도 그게 죽은 남편이라면 꼭 구해주러 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는 달빛을 받으며 산길 가운데 떡하니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꼬리를 말았다 크게 흔든 그는 앞장서서 시댁을 향해 걸어갔다. 난 한편으론 그를 원망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듬직하게도 여기면서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난 시아버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가 쓰러져 잠들었다. 얼마나 길게 잠들었을까. 영겁을 헤맨 것 같은 기분으로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올 무렵, 시댁 마당에서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차츰 그 목소리가 친정아버지 말소리임을 깨닫고 난 벌떡 일어섰다. 안방 툇마루에 앉은 아버지가 시아버님께 하소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고야, 사돈 어른! 저흰 이제 다 포기할랍니더! 우리 아기 잘 데리고 사이소! 어젠 야가 미쳤는지 대문을 막아서는 지 오빠들을 막 무는 게 아입니꺼? 호랑이 소리를 막 내며 사납게 막 무는 겁니더! 큰애는 목에 흉도 생겼어예! 아주 어릴 때부터 야가 사람을 잘 물었어예! 심지어 이웃 동네 볏단 옮기던 총각 하나를 어찌나 포악하게 물어제꼈는지 이사 갔다 아입니꺼? 다섯 살인가 했을 때라예! 참 특이한 아입니더. 사돈께선 혹시 안 물리셨습니꺼? 죽은 사위도 모르긴 몰라도 많이 물리며 살았을 깁니더!”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문인 서경창의 ‘영남효열부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