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고담기담] 어느 씨름 남매의 완벽한 복수

  •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2024-08-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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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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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곽운이다. 부유한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엔 뜻이 없어 팔도유람에 청춘을 탕진했고, 세상 모든 잡기를 다 좋아했지만 유독 투기를 즐겨 싸움꾼으로 통한 자가 바로 나 곽운이다. 유명한 도박 싸움판엔 내가 빠지지 않았고, 특히 많은 돈이 걸린 싸움은 나 없이 벌어지지 않았다. 난 조선 싸움 도박의 일인자다.

    싸움 도박에서 큰돈을 따려면 당연히 본인도 싸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싸우는 자 안에 감춰진 격투 본능을 예리하게 간파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이 판에서 살아남는 필살기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투견처럼 사납게 으르렁대지 않으면서도, 그저 한번 힐끗 뜬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한다. 마음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는 독자 제위께 싸움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싸움 도박에서 반드시 이기는 비결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이 비결을 잘만 익히면,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대드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농락당해 치욕을 입는 불행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주변과 후손에 이를 자세히 전수해 집안의 흉액은 막고 복락은 지키기 바랄 뿐이다. 아울러 싸움을 삶의 지혜로까지 연결한 나 곽운의 성명 두 글자도 청사에 길이 새겨지길 바라노라.

    첫 결투

    싸움은 마음에 달렸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저 마음만으로 힘과 기술의 우열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강한 결기와 끈기로도 도저히 넘지 못할 상대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체력과 싸움 요령을 지닌 자라면, 자신보다 강한 자를 끝내 물리치진 못할지라도 적어도 단숨에 지지 않을 수는 있다. 그게 바로 마음이라는 요물 때문이다.

    싸우는 자의 마음 상태를 결정짓는 건 바로 첫 경험이다. 태어나 처음 벌인 싸움을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이 갈린다. 오랜 세월 잘 싸우려면 첫 싸움에서 너무 많이 맞으면 안 된다. 맞는 것도 버릇이 된다. 많이 맞고 버틴 경험은 맷집은 늘려주지만 골병도 불러오기 마련이다. 샛별처럼 빛나던 젊은 싸움꾼들이 맞기를 두려워하지 않다가 일찍 죽거나 이른 나이에 아까운 경력을 접어야만 했다.

    더 중요한 건 때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따낸 첫 승리는 무한한 자신감을 얻게도 하지만, 동시에 교만이란 독버섯을 피어나게도 한다. 싸움은 어쩌면 맞는 기술이다. 평생 안 맞고 이기기만 할 순 없는 법 아닌가. 맞기는 맞되 적당히 맞아야 하고, 적당히 맞되 치명타는 피해야 하며, 설령 치명타를 맞더라도 비껴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 잘 맞아본 놈이 잘 때릴 줄도 안다.

    생애 첫 결투에선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공방전을 벌이는 게 좋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용기란 씨앗이 움트고, 두려운 상대를 몰아붙이면서는 살아 있다는 희열이 솟구치게 된다. 평생 벗어날 길 없는 싸움의 습관이 이 한판 안에 각인되는 것이다.

    두 번째 결투

    첫 결투만큼이나 두 번째 결투도 중요하다. 부디 내 경험으로 설명하는 걸 용서해 주길 바란다. 난 일곱 살 무렵 같은 서당에서 공부하던 짓궂은 형과 처음으로 주먹다짐을 벌였더랬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른 주먹에 그 형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난 평생 안고 가야 할 부끄러운 기억을 만들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보다 덩치 큰 자와 서로 몸을 맞잡고 땅을 뒹굴던 기억은 오롯이 기분 좋은 추억이 되고 말았다. 난 한 번 더 그 기분을 맛보고 싶어졌다.

    타고난 싸움꾼 기질이 있던 난 같은 상대로 두 번 싸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상황이었다. 이 선택은 내 싸움 인생에서 결정적이었다. 한 번 이긴 상대와는 결코 다시 붙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싸움은 한판이고, 이긴 상대를 또 이겨봤자 보람도 없다. 게다가 그런 조잡한 습관이 몸에 배면 동네 양아치로 살다 삶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같은 상대와 두 번 싸우지 않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싸움꾼은 보통 두 번째 싸움에서 고전을 치르기 마련인데, 첫 승리에서 몸에 붙은 기술이 바뀐 상대에겐 잘 안 통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싸움꾼은 자신이 구사하는 형과 속도를 상대에 맞춰 바꾸는 순발력을 어쩔 도리 없이 발휘해야만 한다. 싸움은 매번 다른 세계와 부딪치는 예측이 불가능한 충돌인데, 그런 불안을 감당할 자질인지가 두 번째 싸움에서 판가름 난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두 번째건 세 번째건 같은 상대와 반드시 맞붙어야만 할 때가 있긴 있다. 바로 상대가 원할 때다. 난 나를 이긴 상대와는 다시 싸우지 않았다. 이미 말했듯 싸움은 그저 한판일 뿐인 기예이기에 또 다른 승부는 필요 없다고 여겼고, 그럼에도 다시 싸운다면 그건 한낱 필부의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싸움판에서 복수심이란 참으로 치졸하고 멋없는 짓이다.

    평생 슬기롭게 복수전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복수 대상이 됐다면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복수는 받아주되, 복수심까지 받아줘선 안 된다. 복수심이란 사람이 지닌 한계 이상의 힘을 꺼내 쓰게 만드는 저주 같은 것이다. 그 저주가 복수하려는 자도 태워 죽이지만, 그것만 아니었다면 멀쩡히 삶을 이어갔을 누군가의 목숨도 함께 앗아간다.

    복수를 잘 감당하고자 한다면, 상대와 몸을 섞기 전에 반드시 예의를 갖춰야 한다. 깍듯이 예의를 갖춤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복수가 아니라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복수와 달리 싸움은 상대를 존중하는 행위다. 상대를 존중할 때, 싸움은 아무리 거칠어져도 목숨까지 거는 지경으로 발전하진 않는다.

    다음으로 복수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건, 결코 무승부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한판 이겼으니 두 번째 승부를 비겨도 이미 이긴 셈이다. 상대와 적당히 비긴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상대에게 지더라도 두 판을 다 진 건 아니니 크게 아쉬울 것 역시 없다. 악연을 맺지 않아야 하지만, 이미 맺은 악연을 잘 푸는 것이 싸움의 기술이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상대의 느긋함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복수하려는 자가 느긋하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여유가 있다는 건 준비가 철저했다는 뜻이다. 싸움에서 지는 자의 느긋함이란 보통 무지나 게으름 탓이겠지만, 복수하려는 자의 느긋함은 그럴 수가 없다. 이미 한 번 패배한 자 앞에서 여유를 보이는 건 완벽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두 번째 결투에서까지 거짓 여유를 보이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그런 자와는 싸우려들지 말고 정중히 사과하고 끝내는 게 좋다.

    슬기로운 복수 방법

    비록 권하고 싶지 않지만, 부득이 누군가에게 복수하고자 한다면 알아둬야 할 것이 꽤 많다. 먼저, 상대의 강점을 목표로 그에 정면으로 맞서 이기려들면 안 된다. 이미 날 꺾은 상대의 기술과 힘은 좀체 따라잡을 수 없다. 설령 따라잡았다 해도. 상대 역시 가만히만 있었지는 않았을 것이니 막상 다시 붙어 이기기란 아주 어렵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난 상대 약점만 파고들어서도 안 된다. 상대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덮을 정도로 충분히 수련했을 것이므로, 상대 강점을 피하며 약점만을 공략한다는 생각 자체가 매우 어리석다.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깨닫는 순간, 그 약점은 더는 약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강한 자의 유일한 약점은 그의 강점 속에 있다. 상대가 그것으로는 결코 내게 질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바로 그 지점이 바로 상대의 약점이다. 그러니 상대의 가장 강한 측면을 부추겨주고 존중할수록 내겐 오히려 이롭다.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상대에게 필승의 조건을 만들어 방심하게 하고, 날 얕보게 만들며, 나아가 싸움 자체를 즐기지 못하도록 긴장을 느슨히 풀어놓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는 싸워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는 자지만, 그에 못잖게 약한 자는 자신의 승리를 과신해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는 자다. 그러니 무례할 정도로 자신감에 들뜬 자가 싸움판에서 오래 버티는 걸 본 적이 없다. 싸움판에선 겸손한 자가 가장 무섭고, 입이 거칠거나 동작이 큰 자가 가장 상대하기 쉽다.

    이제 나 곽운의 싸움 인생에서 목격한 가장 멋지고 놀라운 복수에 대해 말해 볼까 한다. 이 일을 새삼 입에 담으려는 건 독자들이 복수의 아름다움에 눈떠 저마다 그 길로 뛰어들게 하고자 함이 전혀 아니다. 그 반대다. 완벽한 복수의 어려움을 각자 알아 아예 포기하는 현명함을 갖추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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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밥

    그때 난 황해도 연안 어느 고을 주점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거구의 승려 한 명이 주점에 찾아와 물건을 부수고 손님들을 내쫓는 등 온갖 말썽을 부렸다. 싸움에 자신 있던 내가 나서려 하자 누군가 말리며 말했다.

    “저 요승은 괴력을 지녀 누구도 이길 수 없소. 게다가 주점 주인은 저 자에게 빚이 있으니 저리 당하고도 꼼짝 못하는 거요! 괜히 다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시오!”

    내가 분을 삭이며 지켜만 보고 있을 때, 우리를 부수고 탈출한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장터 일대를 휘젓고 다니다 주점을 향해 마구 달려왔다. 사람들이 혼비백산 길가로 몸을 피했지만, 승려만은 태연히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뒷다리만 슬쩍 틀어 형을 갖추더니 정확히 황소 이마에 자신의 주먹을 꽂았다. 약간 비틀대는 황소에게 달려든 그는 놀랍게도 황소를 번쩍 들어 주점 입구에 메다꽂아 버렸다. 콧김을 한 차례 거칠게 내뱉은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잡았으니 내 꺼야! 빨리 잡아 안주나 만들어!”

    주점 주인과 그 가족들은 승려의 행패가 멈춘 것에 안도했지만 커다란 소를 주방까지 옮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뒤미처 나타난 황소 주인은 울상이 돼 주점 주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한 주점 주인이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자 승려의 폭행이 시작됐다. 그는 주점 주인은 물론이려니와 황소 주인과 주변 구경꾼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그때였다. 호리호리한 젊은이 한 명이 젊은 여인을 태운 소를 몰고 주점 앞에 이르러 고운 한양 말씨로 물었다.

    “소란 가운데 죄송하오만, 잠시 들어가 목이나 축일 수 있겠습니까?”

    젊은이를 힐끗 바라본 승려는 연이어 소 등에 걸터앉은 여인에게 눈길을 줬다. 맵시 좋은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는 장옷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훔쳐보는 승려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조금 더웠는지 장옷을 조금 내린 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한눈에 봐도 절세 미녀였다.

    “뒈진 소는 내가 치울 테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쇼!”

    승려가 마치 제가 주인인 양 소리치며 소에서 내리는 여인의 몸을 받아줬다. 젊은이가 승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귀인을 뵙습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인 승려가 퉁명스레 물었다.

    “이 여인은 여동생이오? 아님 아내신가?”

    젊은이가 몹시 지쳤는지 몸조차 가누기 힘든 구부정한 자세로 대답했다.

    “얼마 전 막 혼인한 제 아내입니다. 선산에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지요.”

    젊은이의 가냘픈 몸을 위아래로 훑은 승려가 피식 웃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소를 단숨에 들어 올려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여인이 승려 옆을 스쳐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입가를 쓱 닦은 승려가 물었다.

    “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저 산 아래 땅이며, 이 고을 저 고을 집 열다섯 채와 이 주점이 다 내 소유지!”

    젊은이가 공손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요?”

    승려가 뽀얀 피부에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아래로 처지는 젊은이의 해맑은 얼굴을 유심히 노려보다 다시 입을 뗐다.

    “내가 시골 여자들만 겪어봐서 그런지, 자네 아내가 참 곱게 느껴지는구먼? 실은 힘으로도 얼마든지 뺐을 수 있지만, 내 돈을 드리지! 여기 주점 주인이 빚진 300냥도 거기가 갖고!”

    “그렇다면?”

    “아내를 내게 넘겨! 아직 서로 정도 안 들었을 테고. 돈 드린다니까?”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젊은이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석은 도전

    주점 안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자초지종을 젊은 아내에게 설명했다. 펄쩍 뛸 줄 알았던 여인은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바람 같은 이 인생, 도력 높으신 화상께 의탁하겠어요.”

    그러자 승려는 기쁨에 들떠 외쳤다.

    “우하하! 과연 부처께서 계시긴 계시구나! 내 당장 널 품으리라!”

    승려가 여인의 손을 움켜쥐고 일어서려 하자 젊은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스님! 그래도 뭔가가 오가는데, 서로 거는 게 없으면 맹숭맹숭하지 않을까요?”

    승려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걸다니? 뭘 건단 말이지?”

    “송구합니다. 제 아내를 그냥 드리기보다는 뭘 걸고 내기라도 하면 좋겠습니다만.”

    “그냥이라니? 땅도 주고, 이 집이 진 빚도 대신 받으라니까?”

    젊은이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면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아내를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잠시 젊은이를 노려보던 승려가 물었다.

    “무엇으로 내기를 하지? 뭐 할 줄 아는 건 있남?”

    살포시 수줍은 미소를 띤 젊은이가 대답했다.

    “어려서 소꿉친구였던 저와 아내는 씨름을 좋아합니다. 밤이면 방에서 서로 겨루고 잠들곤 한답니다.”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던 승려가 탁자를 두들기며 웃더니 소리쳤다.

    “내가 태어나 씨름으로 진 적이 없노라! 두 다리 두 팔에 장정 넷이 달라붙어도 파리 잡듯 던져버린단 말씀! 그래도 해볼 텐가? 해볼 테면 밖으로 나가세!”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젊은이의 무모한 용기가 어떤 결말로 끝날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글생글 웃는 젊은이의 표정엔 어떤 두려운 기색도 없었다. 난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주점 밖 길은 좁은 데다가 지난밤 폭우로 꽤 질척거렸다. 젊은이는 근처에 있던 약간 경사진 언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언덕 중간에 있는 고른 평지는 사내 둘이 겨루기에 안성맞춤의 크기였고 마침 잘 말라 있었다. 구름 관중을 몰고 언덕 평지에 오른 두 사람은 양 끝에 마주 보고 섰다. 승려가 조롱하듯 외쳤다.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 만에 하나 자네가 이기면 뭘 얻길 원하나?”

    젊은이가 어깨를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그저 아내 데리고 가던 길이나 가게 해주십시오.”

    난 그의 말을 듣고 이 싸움이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승려는 분명 젊은이보다 열 배는 강했지만 젊은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반면 젊은이는 승려의 행동거지를 익숙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상했다. 다만 젊은이의 태도가 너무 천연덕스러워 어쩌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철부지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해보긴 했다.

    간결한 승부

    모든 명승부의 특징은 믿을 수 없이 간결하다는 것이다. 대가의 공격은 항상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하며 놀랍도록 절제돼 있다. 난 젊은이가 그런 대가라면 승려를 살려두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만약 이기고도 살려준다면 승려는 기필코 다른 해코지를 할 무도한 위인이었다. 그런데 젊은이가 승려를 이길 수는 있어도 죽이기까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체력의 차이가 워낙 큰 데다가,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젊은이가 결국 그날 죽으리라 예견했다.

    두 사람은 조금씩 상대에게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승려의 힘은 광포할 지경이라 발을 구르면 땅이 흔들리는 듯했고, 팔을 휘두르면 쇠망치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요리조리 피하던 젊은이가 마침내 승려 손에 잡히고 말았다. 승려는 이내 상대를 집어 던질 기세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런데 젊은이의 쥐는 힘이 강했는지 승려는 상대를 쉽게 떨어뜨리지 못하고 몸을 빙빙 돌리기만 했다. 젊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착지점을 노리고 손을 놓더니 정확히 그 지점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놀라운 탄력성과 민첩성이었지만 승려가 다시 한번 젊은이를 잡으면 이번엔 완력으로 뼈를 으스러뜨릴 게 뻔했다. 승부는 정해진 셈이었다. 그런데 젊은이가 슬슬 몸의 위치를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난 그의 꿍꿍이를 깨달았다. 젊은이가 등지고 선 곳에는 커다란 분뇨장이 있었다. 마을에서 나온 똥을 모두 모아 거름으로 묵혀두는 곳으로 누구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승려가 무소처럼 달려들자 상대를 바라보고 측면으로 선 젊은이는 두 무릎을 굽히되 높이를 서로 달리했다. 승려 쪽으로 내민 앞쪽은 높이고 뒤쪽은 낮춰 비스듬한 경사를 만든 것이다. 젊은이는 달려드는 승려의 왼쪽 종아리를 왼손으로 움켜쥠과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상대 허리춤을 틀어쥐었다. 그는 괴성과 함께 몸을 오른쪽 방향으로 틀며 일어섰다. 달려오던 관성 탓에 승려의 몸은 잠시 공중으로 비스듬히 떠올랐다.

    씨름에서 두 다리가 땅을 벗어난다는 건 불길한 조짐이다. 특히 아무리 힘이 세도 두 다리를 땅에 두지 못하면 싸움은 이미 끝난 셈이다. 자신의 처지를 눈치챈 승려는 발을 땅에 디디려고 온몸을 수영하는 사람처럼 휘저었다. 그 절박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젊은이는 침착하게 균형을 잡더니 승려를 자신의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밀듯이 던졌다.

    젊은이가 덩치라도 컸다면 어딘가 잡을 데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승려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자그마한 젊은이 몸에 가닿지 못했다. 머리를 한 차례 바닥에 찧은 그의 큰 몸은 다시 튕겨 오르더니 마침내 작은 호를 그리며 분뇨장 위로 떨어졌다. 승려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똥무덤 안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남매의 정체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정체를 끝내 함구한 채 왔을 때처럼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악귀 같은 승려를 죽여 마을에 오래 묵은 체증을 없애준 그들은 주민들의 환호에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젊은이는 너무 침착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승리의 도취감이나 살인에 대한 죄의식 그 어느 것도 없어 보였다. 진정 놀라운 승부사였다.

    난 떠나가는 그들 뒤를 쫓아가 물었다.

    “당신들 부부는 맞소?”

    소 등에 탄 여인이 돌아보며 대답했다.

    “저희는 남매예요.”

    걸음을 멈춘 난 젊은이 등을 향해 소리치듯 다시 물었다.

    “당신들 방금 그거 복수였소?”

    젊은이는 손을 들어 인사하곤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여유롭게 움직여 천천히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다!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복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독자 제위는 내가 쓴 이 글을 거듭 읽어본다면 이 말의 뜻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문인 변종운의 ‘각저소년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外




    고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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