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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미래硏 공동기획 | 미래한국 청년열전

어묵, 젊은 감각 만나 날다

3代 가업, 삼진어묵 박용준

  •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어묵, 젊은 감각 만나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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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100년 기업을 꿈꾸는 청년이 있다.
  • 3년 만에 1250% 성장을 이뤄냈다. 변방의 어묵을 만방에 알렸다.
  • ‘어른’이 틀리고 ‘청년’이 옳았다.
2012년 40억 원이던 매출이 2015년 500억 원으로 늘었다. 1250% 성장. 부산의 작은 식품 공장이 블루오션(blue ocean)을 개척했다. 어묵에 창조의 옷을 입혔다. 높은 수익과 빠른 성장을 가져온 건 상상력이다.
삼진어묵은 현존하는 어묵 회사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됐다. 3대째 가업을 잇는다. 지난 1월 경제부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산업 창조경제 사례로 소개됐다. 대통령은 이 회사에서 만든 어묵크로켓을 시식했다. 박종수(63) 대표는 “뿌듯하면서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한국 最古 어묵 공장

삼진어묵은 3년 새 신제품 80개를 개발했다. 어묵크로켓, 단호박어묵, 연근어묵, 치즈말이어묵, 베이컨말이어묵, 매생이어묵, 메추리알어묵, 김말이어묵, 대맛살어묵…. 쟁쟁한 대기업 베이커리들이 경쟁자다. 갓 빚은 어묵이 갓 구운 빵을 경쟁 상대로 삼은 것이다. 매장도 베이커리처럼 꾸몄다. 
히트 상품인 어묵크로켓은 하루 4만 개 넘게 팔려나간다. 탱글탱글한 어묵 식감에 바삭한 크로켓 느낌이 섞였다. 고급 생선살만 사용한다. 치즈, 새우, 감자, 땡초, 고구마, 카레를 각각 넣어 제품군을 꾸렸다.
3년 만에 1250% 고성장을 이뤄낸 주역은 1983년생 청년이다. 삼진어묵 관리실장 박용준(33).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2012년 삼진어묵에 들어와 가업을 이었다. 어묵 시장에 혁신의 회오리를 일으킨 이 청년을 1월 26일 만났다.
▼ 지난해 12월 삼진어묵이 사무직 8명을 모집했는데 1283명이 지원했더군요. 160대 1….
“2012년 회사에 들어왔을 때 사무직원이 딱 2명이었습니다. 저와 제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전부였어요. 새로운 일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1년 내내 구인광고를 냈는데 1명을 채용하기가 힘들더군요. 직원이 새로 입사하면 딴 곳으로 이직할까봐 정말로 잘해줬습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듭니다.” 
참고로, 지난해 부산은행의 공채 경쟁률은 50대 1, 부산교통공사 공채 경쟁률은 63.7대 1이다.
“청년 세대가 삼진어묵의 미래가 밝다고 보는 듯합니다. 신기한 게, 지원자 대부분이 면접에서 ‘삼진어묵이 크는 만큼 우리도 클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창의적이면서 열정적인 회사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2012년 삼진어묵의 직원 수는 40명이었다. 현재는 460명이 일한다. 그와 ‘누님’ 2명이던 사무직원은 60명으로 늘었다. 고(高)스펙 청년들도 문을 두드린다. 미국·호주 유학파 6명이 일한다. 본사 직원 평균 연령이 29세다. 
“컴퓨터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님’이 수기로 회계를 처리했죠. 전화기, 수기장부가 전부였습니다.”
삼진어묵의 모태는 삼진식품. 1953년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창업했다.



부산어묵 압도한 삼진어묵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공장입니다. 이전에도 어묵 공장은 있었으나 지금껏 존재하는 공장 중 제일 오래된 곳이에요.”
▼ 1931년 창간한 ‘신동아’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예요.
“가장 오래된 잡지 매체가 가장 오래된 어묵 회사를 만났습니다.”
▼ KTX를 타려고 부산역 대합실에 갈 때마다 삼진어묵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군요. 문전성시(門前成市). 
“고객을 기다리게 해선 안 되는데, 어묵을 현장에서 만들다보니…. 매장 직원 수를 늘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2014년 10월 부산역에 매장을 연 것은 변방의 삼진어묵이 만방으로 비상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삼진어묵은 현대백화점 판교점 매장을 비롯해 16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삼진어묵의 뿌리인 삼진식품은 ‘부산어묵’ 상표로 어묵을 판매했다. 포장지 구석에 ‘제조원 삼진식품’이라고 써 넣었지만 브랜드 가치는 없다시피 했다. 
“부산어묵 브랜드를 삼진어묵으로 바꾸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어묵이 팔리겠느냐고 걱정하셨어요. 생산·영업 쪽도 다 반대했고. 부산어묵 브랜드를 떼는 순간 식자재 유통상이 저희가 생산한 어묵을 외면할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8할이 유통상을 통해 팔릴 때예요. 어른들 말씀이 온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죠. 유통상이 포장마차에 부산어묵 대신 삼진어묵을 납품하면 포장마차 주인이 싫어할 게 당연했습니다. 제조회사가 무엇하러 소매점까지 하느냐는 힐난도 들었습니다.”
어른이 틀리고 청년이 옳았다. 직영점 매출이 날개를 달았다. 온라인에서만 하루 4000세트가 팔려나간다.
“부산어묵 브랜드는 누구나 쓸 수 있죠. 브랜드 이미지가 낡았습니다. 어묵을 비위생적으로 만든다는 잘못된 인식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졌고요. 부산의 어묵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질이 각기 다른 것도 문제였습니다. 질 낮은 공장에서 생산한 저비용, 저원가 제품도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브랜드 관리가 엉망이었어요.”
▼ 지금은 ‘삼진어묵’과 ‘부산어묵’으로 팔리는 비율이 어떻습니까. 
“부산어묵 브랜드는 거의 다 뺐습니다. 삼진어묵이 부산어묵보다 더 유명하거든요. 네이버 검색창에 ‘삼진어묵’ ‘부산어묵’을 입력해보세요. 삼진어묵을 다루는 페이지가 대여섯 배 더 많습니다.”




장인정신 + 젊은 감각

▼ 1953년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창업해 3대째인데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빨리빨리 문화’는 신(新)산업 영역 개척에 도움을 주고 디지털 경제에도 기여했습니다. 지금 제조업이 위기인데요. 빨리빨리 달려오면서 장인정신을 잃어버린 탓도 있는 듯합니다. 세계화·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장인정신은 과거와 비교할 때 또 다른 결을 지녔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철학이 확고합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요. 딱 하나였어요. ‘좋은 생선 쓰면 된다.’ 경영엔 신경 안 쓰셨습니다. 많든 적든 통장에 돈만 남으면 된다는 셈법이었죠. 회계학 공부한 아들이 재무제표 만들 때 ‘그런 거 할 필요 없다’고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원재료 값이 2, 3배 올라도 어묵 반죽 배합할 때 연육(생선살) 비율을 똑같이 유지했습니다. 어떤 때는 이문이 하나도 안 남았을 거예요. 연육 파동이 일어난 1980년대에도,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다른 업체는 무너지는데 삼진식품은 괜찮았습니다. 원가가 올라도 제품 질을 똑같이 유지한 게 비결입니다. 삼진어묵은 신뢰할 만하다는 믿음을 준 거예요.”
▼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말라….
“공장에서 일하는 한 분, 한 분이 다 장인입니다. 맛이 오락가락하지 않았어요. 한결같았습니다. 품질이 워낙 좋았기에 3대 64년을 이어온 거예요.”
▼ 1250%. 폭풍 성장….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오신 일에 손 얹은 것밖에 없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가 하는 일을 보면 큰 그림부터 그리잖아요. 아이폰이 대표적이죠. 디자인 먼저 잡아놓고 기술을 넣었죠. 변화한 소비자 욕구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기술자의 시각으로만 생산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퀄리티가 좋아도 매력 있게 포장하지 못하면 팔리지 않죠. 생산하는 어른들께 베이커리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방식으로 어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어른들께선 어색해하면서도 따라주셨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어묵크로켓이에요.” 
▼ 선대(先代)는 잔머리 굴리지 않으면서 어묵을 빚었고, 후대(後代)는 변화한 소비자 욕구에 맞춰 21세기에 맞는 제품을 내놓은 거네요. 
“대량소비 시대 생산자는 이른바 ‘곤조(근성)’를 버려야 합니다. 시장의 요구를 듣지 않고 귀를 막으면 도태합니다. 다른 제조업이나 언론도 마찬가질 거예요. 생산자의 시각으로만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가 외면합니다.”
▼ ‘젊은 놈이 쓸데없는 짓 한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많이 들었죠. 같은 방식으로 60년을 해왔으니까요. 어른들 처지에선 노파심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 미국, 호주 등에서 공부한 직원이 6명인 것으로 압니다.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하군요.
“회사를 더욱더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합니다. ‘충분하다’가 아니라 다음에는 뭐하지? 그다음에는 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세계시장을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삼진어묵은 동남아와 미국에 어묵을 수출한다. 본고장 일본에도 진출했다. 해외 수출은 아직 초기 단계다.


0을 1로 만드는 비전

“젊은 직원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우리가 30대 초반인데, 30~40년은 더 할 수 있지 않겠냐. 확실하게 다지면서 천천히 가자’는 겁니다.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지만 당장 역량을 집중할 생각은 없습니다. 인력 풀을 갖춘 뒤 천천히, 뚜벅뚜벅 나아가려고 해요.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 서구인들도 어묵 식감을 좋아하나요.
“아뇨, 싫어해요. 한국인과 달리 쫀득쫀득하고 탱글탱글한 씹는 맛을 선호하지 않아요. 어묵을 먹는 식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잘 안 될 소지가 크죠. 일식이 서구에서 자리 잡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묵도 10년, 20년 걸릴 거예요. 중국 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어묵은 중국의 식문화에도 어색합니다. 영화, 드라마 등 한류(韓流)를 활용해 문화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해양수산부가 ‘2015년 수산 신지식인’으로 용준 씨를 선정했습니다. 21세기를 이끌 신지식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까.
“신지식인 대상을 어떻게 해서 받았느냐고 물으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제로(0)에서 하나(1)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0을 1로 만들 비전을 내놓는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 미식(美食)을 즐기는 장소로 뜬 현대백화점 판교점 푸드코트에 이따금 들릅니다. 삼진어묵을 비롯해 전주 PNB풍년제과(수제 초코파이로 유명하다) 등 한반도 각 지역 브랜드가 입점했습니다. 뉴욕의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 로마의 젤라토 가게 파씨 등 세계 유명 브랜드가 판교점에 함께 들어왔는데요. 삼진어묵 매장이 매그놀리아, 파씨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봉래시장에서 지구촌으로

“매그놀리아는 저한테 굉장히 상징적인 브랜드예요. 뉴욕에서 손꼽히는 제과점 중 하나인데, 친구들이 뉴욕에 놀러오면 매그놀리아에서 케이크를 사줬습니다. 줄을 안 서고 케이크를 산 적이 없어요. 혹시 현대백화점 판교점 푸드코트에서 매출 1등이 어느 곳인 줄 아세요?”
▼ ….
“삼진어묵이 1등! 매그놀리아가 2등! 놀랍죠? 자랑스럽습니다.”
▼ 세계화·정보화 시대에는 지역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면서 세계적으로 사고하는 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어묵을 만들 때도 명분이 있어야 해요. 차별점도 중요한 것 같고요. 품질이 최고라는 것도 차별이죠. 부산에서, 한반도에서 성공하려고 명분, 차별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왜 삼진어묵을 구입해야 하는지 소비자가 느끼게 하는 게 명분입니다. 삼진어묵은 역사가 가장 오래됐으며 최고의 품질을 가졌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부산에 공장이 셋인데 제1공장에 어묵역사관을 꾸렸습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 세계시장에서도 명분, 차별점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각론은 아직 없으나 구상은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의 명분, 중국은 중국대로의 명분. 지역마다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예컨대 아프리카는 한국의 1950년대와 비슷합니다. 연근해에서 생선이 엄청나게 잡히는데 그걸 보관·가공을 못해 버립니다. 부산이 앞서 획득한 기술을 이용해 아프리카인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과장일 수도 있겠으나 삼진어묵은 장인정신으로 국내에서 어묵 공장을 운영한 아버지가 장남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세계화 흐름을 익히게 한 후 동아시아 한반도 동남쪽 귀퉁이의 어묵을 지구촌에 전파하려 하는 겁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라, 현장에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7년 동안 부모님이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일이 바쁘셨거든요. 회계는 어머니가, 배달은 아버지가…주먹구구였죠. 새벽 4시에 일어나 가게 문 여는 일과를 1년 365일, 30년 동안 하셨습니다. 명절 때도 안 쉬셨어요. 힘드셨나봅니다. 한국에 들어오라는 말도 없던 분들이 2012년에 ‘와서 좀 도와줄 생각 없느냐’고 물으시더군요. A부터 Z까지 손안에 다 쥐고 관리하는 게 오죽 힘드셨겠습니까.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봉래시장의 어묵을 지구촌에 퍼뜨리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인터넷·모바일 환경 덕분에 도전에 나서기가 쉬워졌는데도 청년실업이 심각합니다. 창업 혹은 취업을 고민하는 청년에게 해줄 말이 있나요.
“끊임없이 공부하라.”
▼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보다 공부는 더 하는 것 같은데요.
“착각이,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녜요.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마인드맵으로 큰 그림도 그려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몸과 머리로 부딪쳐 경험하는 게 제일 좋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직원들에게 ‘3~5년 후 삼진어묵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다, 관리자 역할을 할 사람들이 당신들이니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해법이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창의적이면 좋겠습니다. 상상력만큼 재미난 게 없거든요. 기존의 것으로 뭔가 하려고 하면 흥미가 반감됩니다. 삼진어묵은 어묵 베이커리, 온라인 비즈니스 등 기존에 안 하던 것만 건드렸습니다.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회사 분들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달랐어요. 어묵은 왜 택배로 못 할까? 한번 해보자! 어떻게 해야지? 이렇게 하자!
사회 분위기가 창의, 상상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0에서 1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0에서 1로 가는 게 어렵지 1이 10, 100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생각해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구태의연한 실업 대책만 내놓고 있습니다. 상상이 재미를 낳고 재미가 동기 부여가 돼 또다시 상상을 낳는 선순환 구조를 꾸려야 하는데….”
▼ CJ 같은 대기업이 뒤늦게 ‘어묵 베이커리’ 시장에 뛰어들어 삼진어묵과 경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려는 있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요. 걱정 안 하고 부딪쳐보려고요. CJ에서 어묵 쪽 일하는 분들이 저희 회사 직원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요. 감각은 저희가 낫다고 자부합니다. 수제 어묵은 대기업 특성상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마케팅 능력이나 자본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커질 대로 커진 대기업은 의사 결정이 느리게 마련입니다. 기민하게만 움직이면 대기업에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있습니다.”


함경북도 어묵공장

▼ 한반도 북녘 땅은 1990년대 중반 기근을 겪었습니다. 장마당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는데요. 북한 주민들도 삼진어묵을 맛봤으면 좋겠습니다.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계산이 안 나오는’ 시장입니다. 남북 물가 차이를 고려하면 원가 아래로 팔아야 할 테니까요. 공략 방법을 찾아야죠. 북한 시장 진출? 잘해낼 것 같아요. 연구해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하겠단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한반도 동해 위쪽에서 러시아산 명태가 굉장히 많이 잡힙니다. 좋은 어묵 원료 중 손꼽히는 게 명태거든요. 함경북도에 어묵 공장을 만들면 세계로 나아가는 전초기지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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