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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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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연락 임무라도…”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1980년 5월 20일 신군부는 임시국회 개원일에 맞춰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신민당 황낙주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이에 항의하다 계엄군에 의해 의사당 정문 밖으로 밀려났다. [동아일보]

한편 서울 거여동 특전사령부에는 정적이 흘렀다. 예하 여단이 광주 등 예하 부대로 작전 배속된 후 사령부에는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보안반장(필자) 등 일부 지원부서가 남아 있었다. 상황실에는 예하 여단의 일일 상황보고만 있을 뿐 작전 상황은 결과만 보고됐다.

5월 18일 아침 상황실에 “어젯밤 행방불명된 병사의 시체가 인근 하수도에서 발견됐는데,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러한 인사 사고는 작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정호용 사령관이 대처해야 했다. 필자는 “이 사건은 광주사태 수습과 부대 사기를 위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급부대 지휘관(중대장, 대대장)이 상급부대(여단장, 사단장, 지역관할 계엄사령관) 지휘관의 승낙을 받아 병사 개개인의 생명보호 차원에서 실탄을 지급했고, 군인들은 실탄 지급을 발포 명령으로 인식해 5·18의 희생이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앞서 5월 10일 특전사 작전참모 장세동 대령과 작전과장 박중환 중령 등 작전팀이 광주로 떠나고, 5월 16일 예하 모든 여단이 타 부대로 작전 배속되자 정호용 사령관은 아무 임무 없이 특전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병사 실종 사건’ 발생 3~4일이 지난 시점에 ‘북한의 광주 사건에 관한 방송을 보고 유무선이 감청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겼다.

필자는 정호용 사령관에게 육군의 유무선 통신을 억제하고, 광주에 연락 임무를 띠고 헬기로 현장을 다녀와서 계엄사령관과 보안사령관에게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권을 잡는 것이 사실상 확정된 데다, 정 사령관은 1979년 12·12 때도 이렇다 할 역할이 없었으며, 광주 사건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역할 없이 사무실을 지켰다가는 후일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침 북한군의 보안 감청이 우려됐기에 정 사령관이 군의 유무선 통신을 중단시키고 광주 현장과 계엄사·보안사 간에 연락 임무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정 사령관은 육군항공대에서 헬기 2대를 지원받아 광주를 다니면서 연락 업무를 하게 됐다.

그런데 사건 발생 8년 후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기에 국회에서 광주 청문회가 열리자 5·18의 책임자로 정호용 장군이 지목됐다. 이후 그는 ‘발포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하지만 그는 5·18 당시 작전 지휘를 할 자격과 권한도 없었을 뿐 아니라 광주 현장에 머물지 않고 헬기로 광주 현장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호용 사령관은 당시 31사단장이던 정웅 소장의 증언에 의해 광주 사건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대권 물려받을 수도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매우 밀접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군인 시절 노태우 장군은 전두환 장군의 책사(策士) 노릇을 했고, 1978년 노 장군이 전 장군의 뒤를 이어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물려받았으며, 12·12 때 협력했고, 1980년 8월 후임 보안사령관, 1988년엔 후임 대통령이 돼 정권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들은 내면적으론 불편한 관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특히 노태우 장군이 대통령이 된 뒤부터 적대적 관계로 변했다. ‘신동아’ 6월호에 실린 전두환·이순자 인터뷰에 따르면 이순자 여사는 “대통령직을 마친 후 백담사로 들어갈 때는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고 한다. 전-노의 사이가 실제로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두환은 단순하면서 외향적이고 선이 굵은 보스 기질로 신의를 중시하는 반면, 노태우 장군은 두뇌가 비상한 조조 같은 인물이었다. 이기적이고 내성적인 성품으로 명예욕과 시기, 질투심이 강해 손위처남인 육사 동기 김복동 장군에게도 경쟁의식을 가졌다. 이에 대해서는 전두환뿐 아니라 동기생 손영길, 정호용 장군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김복동 장군 가족 역시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최근에 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 6월 중순 전두환 장군은 후임 보안사령관 자리를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제안을 받은 정 사령관은 “노태우가 있지 않으냐”며 사양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대권을 이어받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호용 사령관은 이 제안을 받은 후 고심하면서 필자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정 사령관은 노태우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군인의 길이 아닌 옆길(정보부대)로 나가지 않겠다는 소신이 있었다. 필자는 “의리보다는 국가 장래를 생각해 더 중요한 보직을 맡아 헌신하는 게 바람직하고, 보안사령관이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자리가 아니다”고 설득했다. 한 번은 작심하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이댔다.

“정 사령관이 이 자리를 거절하면 보안사령관이 된 노태우는 앞으로 당신의 앞길을 막으면서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거다. 계속 당신을 견제할 것이다. 이건 생사가 달린 결정이고 이 자리가 다음 대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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