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론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갈라진 나라

  • 윤평중 |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2/3

정치의 사법화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버스 위로 올라가고 있다. [동아일보]

우리는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 탄핵 인용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 파면을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뉜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조차 유혈사태를 겪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합리적 절차로 풀어가는 역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을 광복 직후의 좌우대립이나 내전 상태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건 일종의 과잉 해석이다. 2017년의 탄핵은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원칙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사태인 것이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제도정치권이 정치 고유의 조정 능력을 잃어버린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회 내에서 풀어가야 할 정치권은 이번에도 문제 해결을 광장과 사법기관에 넘겨버렸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 즉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에다가 중대 정치 이슈에 대한 최종 심판자 역할을 떠넘겨버리는 한국 정치의 무능은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헌재 심판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를 규정한 헌법이 박제화된 문서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의 실생활에서 실천되고 구체적인 정치제도로 실행되어야 함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모든 헌법 교과서 제일 앞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국가기관과 권력기관이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해온 현실 때문에 때로 공허하게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은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최고 최대의 원칙임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헌재 자체가 1987년 시민항쟁의 성과물인 데다 탄핵 심판은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에 불가결한 요소임을 시민교육 차원에서도 확고하게 입증했다.

촛불이든 맞불이든 박 전 대통령이든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저항권의 이름 아래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헌재 결정을 뒤엎겠다는 과격한 주장은 헌정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헌재 심판에 따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헌재가 신성불가침은 아니지만…

헌재가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여서가 결코 아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헌법기관이 헌법재판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통합의 형성과 유지 및 법질서의 창설과 유지’를 맡은 헌법을 수호하는 뼈대가 헌재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흔들리면 법치도 흔들린다. 법치가 흔들리면 시민적 자유가 파괴되고 대한민국이 흔들리게 된다. 헌법재판소를 최초로 신설한 6공화국 자체가 오랜 군사권위주의 체제를 혁파한 87년 시민항쟁의 산물이다. 우리 스스로가 피와 땀으로 일군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성과를 형상화한 정치제도가 오늘의 헌정 질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전 세계 96개국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헌재는 모범적 기구로 잘 기능해왔다. 헌재 결정을 거부하는 건 우리 자신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다. 헌재는 법의 지배를 상징하는 기관이며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크게 보아 법치주의는 시민적 기본권 보장과 법 앞의 만민 평등을 지향한다.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중요한 것은 통치자와 지배층이 법 ‘위’에 군림하는 걸 금지해야 법치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사회여야 시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사는 법 위에 서려고 하는 통치자와 지배층을 법 ‘아래’ 놓는 고투(苦鬪) 과정이나 다름없다. 법을 초월하려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속성과 지배층의 유전무죄 관행이 법치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동아시아 전래 문명 속의 한반도에서는 법이 권력자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통치자를 비롯한 지배층이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 사회문화적 맥락이다. 법률가이기는커녕 한낱 법기술자에 불과한 김기춘·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출세하고 재벌과 유력자들이 법망을 희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3
윤평중 |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목록 닫기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