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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통령을 파면하다

기각 믿고 ‘8월 下野’ 검토 ‘수사 담담히 응해야’ 번민

朴의 내밀한 근황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기각 믿고 ‘8월 下野’ 검토 ‘수사 담담히 응해야’ 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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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3월 10일 오전 11시부터 TV로 생중계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장면을 청와대 관저에서 지켜봤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1시 21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었다. 박 전 대통령은 믿기지 않았다. 몇몇 참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각된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일이죠?”



“적어도 세 군데에서 보고”

박 전 대통령은 TV로 선고 장면을 본 뒤에도 참모들에게 재차 확인했다고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한 관계자는 “적어도 세 군데에서 이런 기각 또는 각하 보고를 올려 박 전 대통령이 아마 직무 복귀를 확신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을 낼 재판관들의 이름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다.

“소추 사실을 뜯어보면 인용 사유가 차고 넘친다”는 견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친박근혜계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자에게 “대통령께서 기각될 걸로 기대를 많이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주변에서 그 쪽으로 보고를 많이 했으니…”라고 했다.  

법조인들 사이에선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되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대구 출신 원로 법조인 A씨는 “국회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헌법 위반 5가지, 법률 위반 8가지엔 애매한 부분이 많다. 대통령을 파면시키려면 이유가 딱 떨어져야지 애매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통령 대리인단과 핵심 참모들도 같은 시각이었다. 여기다 자신의 기대까지 보태졌다.  희망의 끈을 더 부여잡게 된 계기는 뒤늦게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의 ‘각하’론이었다. 그전까지 ‘기각’ 논리만 생각했지 ‘각하’ 논리는 배제됐다. 김 변호사는 국회가 13가지 탄핵 사유를 일일이 표결하지 않고 ‘섞어찌개’ 식으로 일괄 처리했기에 절차적으로 무효라고 했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청와대 주변에선 대통령 직무복귀를 전제로 다양한 방안이 나돌았다. 내각 개편과 청와대 비서진 교체 같은 국정쇄신책까지 구상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청와대 측이 법무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공석인 자리의 인선을 검토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정치권 인사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직무 복귀 후 국민통합의 한 방안으로 ‘8월 자진사퇴-10월 조기대선’ 이 검토돼왔다”고 했다. 방송인 김어준은 “헌재 심판 전날 청와대 주방에서 자축하는 5단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그 정도로 믿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탄핵 사유 해외에선 수긍 안 될 것”

물론, 헌재의 심리가 진행 중일 때 파면에 대비한 선제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박 전 대통령에게 올라갔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한 언론인을 비롯한 몇몇 원로는 관저에 칩거 중인 박 전 대통령에게 “여론 움직임이나 헌재 분위기로 볼 때 기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 ‘국론통합’을 명분으로 하야(下野) 선언을 하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낫다”고 진언했다고 한다.

이 무렵 정치권에서도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하야’론이 제기됐다. 박 전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던 걸로 알려진다.

박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법리적으론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헌재의 정치적 판단을 차단하기 위해 여론전에 돌입했다. 광장에서 태극기가 촛불에 수적으로 우위에 서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정규재TV 인터뷰에서 “태극기집회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고, 3·1절 총궐기를 앞둔 시점에 ‘박사모’ 측에 감사 메시지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헌재가 심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헌법 수호 의지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실을 숨기며 부인했고 언론의 의혹 제기를 비난한 점,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한 점, 대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도 탄핵 사유라고 명시했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동의하기 힘든 사유였다고 한다. 한 친박계 인사의 말이다.

“예를 들어, 박 전 대통령이 검찰·특검 대면조사에 불응한 것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일 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위를 했는데 왜 이게 탄핵 사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헌재는 검찰·특검과 대통령 사이에서 대면조사 조율이 안 된 것에 대해 대통령에게만 도덕적 책임을 전가했다. 이 역시 부당하다. 특검은 청와대와의 약속을 어기고 조사 시점을 언론에 공개했고 대통령의 반대에도 강제 조항이 아닌 영상 촬영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은 것도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한 것일 뿐이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압수수색 불응도 탄핵사유가 될 순 없다. 또한 헌재는 특검이 요구한 압수수색범위가 과도한 점은 무시한 채 박 전 대통령에게만 도의적 책임을 물었다.

이 탄핵 결정문은 해외에선 보편적으로 수긍하기 힘든 ‘논거가 빈약한 논술’이다. 우리나라 기업인과 과학자는 세계 일류지만 법조인은 아니다. 우리 판·검사가 개인적 이념, 여론, 심지어 전관예우에 따라 결정하는 일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재판관보다는 정유라 구금을 연장하는 덴마크 지방법원 판사의 신중함에 더 신뢰가 간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헌재의 파면 사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스트레스 받아 발 부어

박 전 대통령은 ‘자기최면’을 걸면서 탄핵안이 기각될 걸로 철석같이 믿고 직무 복귀 준비를 해왔지만 결국은 짐을 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탄핵안이 100% 기각된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막상 파면 선고를 받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 선고 이후 이틀 동안 청와대에 머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979년 10·26 사태로 부친을 잃은 뒤 한 달 만에 청와대를 떠날 때의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괴로웠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또 “직계가족도 없는 처지에서 유일한 위안인 명예를 잃었으니 한동안 신체적 통증까지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3월 13일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조원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다리를 다쳐 힘들어했으며 몸이 안 좋아 보였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관저를 떠나면서 발목을 접질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 부위가 자주 부어오른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터진 시점에 발이 부어 구두에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샌들을 신은 채 청와대 공식회의를 주재했다는 목격담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금 심경은 어떨까. 박 전 대통령은 사저에 온 측근 인사들의 위로를 듣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와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기에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발표한 네 문장 메시지에서 박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읽을 수 있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야권과 몇몇 언론은 이를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으로 해석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몇몇 인사는 “모든 결과에 대해 제가 안고 가겠다”는 표현 등을 근거로 “불복으로 읽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퇴거해 자연인으로 돌아간 행위 자체가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아니냐.”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헌재가 적시한 죄를 인정하라는 것은 박근혜 개인의 방어권과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다중(多衆)의 횡포 아니냐.”    

친박 핵심이 삼성동 사저 보좌진을 꾸리기로 했다는 말이 나왔다. 최경환 의원은 “대통령이 탄핵됐다 해서 인간적 의리를 끊으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전직 대통령들도 퇴임 후 측근들과 교류했지 않았느냐”고 했다. 반면, 조원진 의원은 “사저 보좌진 이야기는 잘못 전해졌다. 각자가 박 전 대통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파면된 대통령에 낙인까지…”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한 달여간 사저 주변에서 집회한다고 신고했다. 검찰이 혹시 박 전 대통령을 체포하러 오면 이들이 막아설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사저에 성벽을 쌓고 장수와 병사들과 함께 진지전 태세에 돌입한 것일까. 박 전 대통령 측과 가까운 Q씨는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바깥의 ‘불복’ 비난에도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사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체포하려는 검찰을 막아서 몸싸움이 벌어진다고 치자. 이 장면이 국민에게 중계될 것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누가 이 장면을 가장 원하겠는가. 야권 유력 대선주자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완전히 엮였다’고 생각해 자신에 대한 혐의에 억울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항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박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달래고 수사에 담담히 응해야 한다는 번민도 하는 듯하다. 파면된 대통령에게 성급하게 ‘불복’ 낙인까지 찍지는 말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Q씨)

박 전 대통령은 헌재 최후진술에서 “어떤 상황이 오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Q씨는 이 약속이 아직 깨진 게 아니라고 전한다.





신동아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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