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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 임지현 | 서강대 사학과 교수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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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전제로 한 복지 국수주의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네덜란드 극 우정당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 프랑스 극우 국민 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폴란드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미국의 도 널드 트럼프. [뉴시스]

그러나 일부의 주장처럼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고용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고 해서 글로벌 트럼프주의 혹은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이 진보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잘 지적했듯이, 21세기의 정치지형에서 보수정당 특히 유럽의 보수정당은 19세기 후반 이래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실업보험, 연금제도, 의료보험, 8시간 노동일, 집회와 결사의 자유, 유년노동 금지, 여성 노동자의 출산휴가 등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당 강령 차원에서 이미 뚜렷이 명시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더 이상 노동과 자본의 이분법으로 구분되기보다는 여성, 동성애자, 이민노동자 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 낙태와 피임의 자유화 같은 사소해 보이는 이슈로 갈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파 정당들의 노동자 배려 정책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얼핏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백인 저학력 노동자 배려 정책이나 유럽 우익 포퓰리즘 정당의 자국 노동자 우대 정책은 ‘복지 국수주의(welfare chauvinism)’의 발로인 것이다. 일국적 차원이나 주류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책들도 비주류 유색 노동자나 이민 노동자, 혹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트럼프주의나 우익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는 이들 신정치세력이 내건 ‘복지 국수주의’가 신자유주의와 국제경쟁에서 밀리는 자국의 주류 노동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지 국수주의’는 다시 문화적인 측면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손쉽게 결합한다. 트럼프의 이민자 배제 정책이나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 계획, 브렉시트 선거 이후 폴란드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린치와 폭력,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는 이민자 및 난민 배척 시위에서 보듯이, ‘복지 국수주의’는 타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다문화주의나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와 난민도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한다. 문화적 민족주의는 같은 민족인 ‘우리끼리’ 누리는 시민적 권리와 복지의 혜택을 타자와 공유할 수 없다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컨대 나치의 ‘민족동지’는 문화적 코드와 혈통을 공유하는 아리안 민족 성원만이 ‘제3제국’이 제공하는 시민적 권리와 복지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히틀러와 트럼프의 공통점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대중민주주의 체제와 정당정치가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민중에게 정치적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절차와 문법을 무시하는 듯한 트럼프와 같은 이단아나 우익 포퓰리즘에 대해 대중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기존 정당과 정치체제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반영한다. 글로벌 트럼프주의나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국민과 직접 대화하고 국민투표 등을 통해 대중이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기층민중의 정치적 소외감을 파고들기 위한 정치적 전술인 것이다.



이는 다시 1930년대 파시즘 정권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추려고 노력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파시즘은 반자유주의적이지만 반드시 반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는 나치의 이데올로그 카를 슈미트의 선언적 명구는 글로벌 트럼프주의 진영에서도 깊은 울림을 가질 것이다.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과 21세기 글로벌 트럼프주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상당히 확보하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한다. 히틀러는 ‘독일 주민 대다수로부터 괄목할 만한 정도의 인기’와 ‘대중적 지지 기반’을 누렸고, ‘국민투표를 통해 체제를 정당화하는 높은 수준의 갈채’를 받았다. ‘독일 소녀단’의 광신적 멤버들 사이에서 히틀러가 누린 인기는 아이돌 가수 뺨치는 수준이었다. 독일의 노동자 계급은 나치즘에 완강하게 저항하리라는 좌파의 기대를 배반했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체제에 대한 일종의 동의가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망명 사회민주당의 한 비밀보고서는 노동자들의 동정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치는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많은 부문의 노동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으며……특히 히틀러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나치의 노동정책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뇌물공여’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양보를 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치에 대한 노동대중의 동의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소수자 민주주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불평불만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일상에서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체제 전체에 대해 동의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아래로부터의 독재’는 일차적으로 사회보장정책이나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한 실업의 축소, 실질임금의 증대 등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공적 진전이라는 물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1929~34년 이탈리아인들이 경제적 안정성 때문에 파시즘을 지지했으며, 일자리를 제공하고 가난을 퇴치하겠다는 나치의 약속이 가난한 농민에게도 큰 호소력을 지녔던 것은 분명하다.

나치 시기를 실업의 감소와 경제 호황, 질서로 상징되는 ‘정상적 시기’로 이해하는 독일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숙청으로 인한 사회적 이동의 증대와 공공영역 일자리 창출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낸 스탈린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 억압 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업전사’로 동원돼 고도성장이 제공한 일자리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남한의 노동자들이 박정희 개발독재에 보낸 일정한 지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노동자의 인격을 인정한다는 슬로건 아래 노사관계를 인간관계로 환원시키고, 생계를 보장하는 ‘생활급체계’를 정착시킨 일본의 전시동원체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발견된다.

1930년대 유럽을 풍미한 파시즘의 경험과 21세기의 정치 신드롬으로서의 글로벌 트럼프주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대중민주주의와 대중독재를 나누어 보는 우리의 상식에 도전한다. 독재는 민주주의의 반의어인가. 국민의 다수가 ‘독재’의 지배방식을 지지한다면, 그 독재 체제는 독재인가 민주주의인가. 다수에 반하여 소수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 밑으로부터 ‘국민’ 다수의 동의 아래 소수를 타자화하고 억압하는 다수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를 통한 전제’의 징후를 포착하고 또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인 ‘국민주권론’에서 전체주의의 기운을 감지한 알렉시스 토크빌의 진단은 글로벌 트럼프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한 사상적 자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노래하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 광장의 목소리에 고무되면서도 일말의 불편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수파 민주주의의 문제를 직시하고 18세기 자코뱅주의의 국민주권론을 넘어서서 소수자와 타자를 포용하는 소수자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상을 21세기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트럼프주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닌가 한다.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임 지 현

● 1959년 서울 출생
● 서강대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폴란드 바르샤바대 초빙교수,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 저서 :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대중독재‘ ’적대적 공범자들‘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신동아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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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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