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드로 알모도바르(왼쪽)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상실과 종종 성과 없이 끝나는 탐색의 서사 구조에서 인물들의 공허한 내면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나 음악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벤더스가 보여준 ‘새로운 감성’(Neue Sensibility)이란 황량한 탐색의 내러티브가 대단히 감각적으로 선택된 이미지, 그리고 음악과 만나 빚어진 것이라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 조화가 잘 이뤄졌을 때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나 ‘베를린 천사의 시’(1987)처럼 굉장히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는 반대로, 벤더스가 묘사 혹은 이미지 메이킹에만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우리를 실망시킬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키치적 세계를 원숙의 단계로 끌어올린 거장
벤더스의 ‘새로운 감성’이 고독한 여정을 차분하고 낭만적인 시선으로 포착한 화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라면, 1980년대 유럽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유의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영화감독 하나가 등장한다. 감정 표현이나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과잉이라 생각될 만큼 허구적인 세계를 천연덕스럽게 제시하는 그는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1951~ )다.
그의 영화 세계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오히려 정상으로 간주되며 통상적인 것들은 극단적으로 과장되거나 가차없이 버려진다. 알모도바르는 그런 이단적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거침없이 펼쳐보임으로써 어떤 이들을 감동시켰고 또 어떤 이들로부터는 저속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프랑코 독재정권 치하에서 꽤 오랫동안 억눌린 채 살았다. 프랑코 시절 스페인 영화 역시 창작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그 족쇄가 풀어진 후 스페인의 새로운 멘탈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알모도바르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내 영화는 1975년 프랑코가 죽은 이후, 특히 1977년 이후 스페인에서 생겨난 새로운 멘털리티를 재현한다. 사람들은 스페인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 영화에서 그런 변화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이제 내 영화에서 스페인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본다. 왜냐하면 이제 ‘욕망의 법칙’(1987)과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알모도바르(와 그의 영화)에게 새로운 스페인 사회란 무엇보다 욕망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사회다. 알모도바르가 쓴 글의 한 부분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자칭 국제적 포르노스타인 주인공 패티 디푸사는 젊은 청년을 유혹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 잘 들어보세요. 스페인의 민주정치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이 말은 당신과 내가 아무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금기에 개의치 않고 쾌락을 두려워하지 않은 인물들은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비밀습관’(1984)은 수녀들에 대한 영화인데, 여기서 수녀들은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고 창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신부와 사랑에 빠지고 타락한 여성들에 대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스페인 사회에서 1980년대는 젊은이들이 영화·음악·패션잡지 등 온갖 대중문화에 심취한 시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여러 대중문화 양식들에 열광한 알모도바르는 그 시대 대중문화의 파편들을 모아 영화 속 이곳저곳에 박아넣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는 그 자체로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인용과 발췌가 가득하다. 그의 영화는 잡종의 영화이며 또 그런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 혹은 문화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가장 확연히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그만의 독특한 원색주의다. 원색주의자라는 명칭이 존재한다면 아무래도 그건 알모도바르를 위한 것일 텐데, 그는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알록달록한 색깔을 통해 삶의 변덕스러움을 고스란히 자기 영화 속에 담아냈다. 그는 이같은 색채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 믿는다. 평생 검은 옷에 짓눌려 살았던 어머니의 의지가 자신에게 투사돼 행복한 원색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