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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에베레스트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우수작

  • 김명준

나의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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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없는 팀(Team No Limits)

사람은 어떤 만남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것이 설사 작은 계기라도 운명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나는 2002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 봉을 오를 때 미국 산악인 한 명을 만났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더그 투미넬로다.

더그는 지금 우리 팀 리더다.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장교로 한국에서 근무하다 변호사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그는 등반 잘하는 변호사로 미국에서 잘 알려진 산악인이다. 그런 더그와 나는 같은 날 함께 정상에 올랐다. 더그 역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등반은 무상의 행위다. 산에서는 경쟁이 없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서로 동지애마저 느낀다. 매킨리 등반은 힘들었다. 나는 빙하가 갈라진 크레바스에 빠졌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 고산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처음으로 엿본 때가 바로 이때였다. 우리 둘은 거기서 허물없이 친해졌고, 일상으로 복귀한 뒤로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 더그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에베레스트에 가자고.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만들었는데, 나도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더그가 만든 원정대 이름이 재미있었다. ‘제한 없는 팀(Team No Limits).’ 제한이 없다는 것은 극한의 모험과 등반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자기 능력껏 해보라는 뜻도 내포돼 있었다. 능력이 있어 정상을 올라야겠다면 도전하는 것이고, 한계치까지 노력하다 안 되면 그만둬도 좋다는 팀. 흥미로웠다.



LA에서 내가 소속된 재미한인산악회도 오래전부터 에베레스트 원정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나는 2001년 에베레스트 근처에 있는 해발 6201m의 아일랜드 피크에 올랐다. 그리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정찰했다. 히말라야 원정은 등반보다 오히려 그 준비 과정과 행정처리가 더 힘들다는 걸 그때 알았다.

원정 경비도 문제였다. 에베레스트 입산료는 원정대당 5만 달러였고, 대원 수는 5명으로 제한됐다. 1명이 추가되면 1만 달러를 더 내야 한다. 나 혼자 등반해도 팀으로 간주돼 5만 달러를 내야 한다. 세계 산악인들은 폭리에 가까운 입산료에 항의했지만 네팔 정부는 꿈쩍도 안 했다. 비싼 입산료 때문에 에베레스트를 찾는 산악인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제3의 극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더그도 경제적인 점에 착안해 콜로라도 산악인 3명과 함께 팀을 꾸려 나를 부른 것이다. 경제적으로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를 받고, 셰르파나 주방장 같은 고용인 경비는 공동으로 부담하자는 제안이었다. 또한 변호사답게 행정처리도 대행해주겠다고 했다. 이미 덴마크인 두 명과 캐나다인 한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나는 같은 산악회원이자 오랜 친구인 정현과 상의했다. 정현은 에베레스트는 너무 높으니 자신은 세계 4위봉 로체봉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직선거리가 3km밖에 안 된다. 3캠프까지 등반 루트도 같다. 나는 더그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제한 없는 팀’ 원정대에 행정상 합류는 하되, ‘재미한인산악회 원정대’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더그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5년 10월, LA에서 열린 산악회 정기총회에서 2006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파견을 결의했다. 그리하여 미주 한인 산악인들이 해외동포 최초로 단일팀을 만들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게 됐다.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 3월 원정대 발대식이 열렸다. 대장은 내가 맡았다. 대원은 총 9명. 나와 정현이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반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5300m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만 오르고 하산하기로 했다. 발대식장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해외교민 사회에서 처음 시도되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축하했다.

그리고 같은 달 28일 우리는 LA를 떠나 네팔로 향했다. 이제 대장정의 시작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우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제한 없는 팀’ 대원들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서울과 홍콩을 경유해 3월 30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들 때문에 도시는 계엄 상황에 있었고, 산발적인 데모가 그치지 않았다. 상가도 철시되고 생필품 품귀 현상도 나타났다. 도로 곳곳에는 군경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도 보였다. 그러나 관광이 주 수입원인 까닭에 정부군도, ‘마오바디’라 불리는 반군도 외국인들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다.

다시 찾은 카트만두

혼란스러운 카트만두를 빨리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국 산악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를 사고, 재래시장에서 쌀과 채소, 그릇을 구입했다. 경비행기로 쿰부 계곡 들머리 루크라까지 이동했다. 40분간 낡은 비행기 창밖으로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을 보았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에베레스트를, 나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은 양쪽에서 달려와 에베레스트를 정점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저 산이 세븐 서밋의 마지막 봉우리라고 생각하니 투지가 솟아올랐다.

경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루크라에 착륙했다. 히말라야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두드코시 강이 보였다. 깊은 계곡 분지에 자리한 루크라는 해발고도가 높아 벌써 서늘했다. 우리는 쿰부 히말라야를 관통하는 두드코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카라반에 나섰다. 이 강은 우리가 가야 할 에베레스트 쿰부 빙하에서 발원하니, 강이 시작되는 곳에 베이스캠프가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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